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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Jan 10. 2021

{Li:Fe} i에게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더랬다. 


    형, 요즘 어떻게 지내요? 저는 어제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차츰 녹을 때마다 누군가 꾸고 있을 꿈이 자꾸만 떠올라요. 제가 처음 서울어 왔을 때 이야기했었나요? 서울대가 아니면 서울에 갈 필요가 없다는 부모님의 말 앞에서 저는 무력했어요. 어떻게든 3월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등록금을 벌어야 했죠. 그때부터, 그렇게도 싫었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그렇게 체감이 될 수 없었어요. 이모의 집에서 얹혀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쉴 새 없이 오갔어요. 과외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 맞은편, 교회에 적혀있던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를 최면처럼 되뇌며 버스카드를 찍었어요. 그렇게 겨우 돈을 모아 들어간 대학에서도 방황했어요. 한심하죠. 형도 아시다시피 요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는 것도 비슷해야 하잖아요? 근데 저처럼 사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서울에서의 친구와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서서히 나뉘어갔어요. 



    "서울에서 사는 게 무슨 계급이야?"라고 아버지는 종종 이야기했지만 저는 솔직히 너무 부러웠어요. 과외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를 나가며, 전봇대에 전세와 월세 가격이 붙여져 있는 전단지를 볼 때 마다요. '내가 이런 집을 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해봤고요. 그래서 "중간고사 기간에는 인간적으로 조금 더 와서 봐주세요"하는 말을 듣고 전혀 내게는 인간적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속에서 박탈감으로 인해서 울분이 쌓여 더 이상 과외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경제관념이 없던 거죠. 그만큼 시급을 잘 쳐주는 알바는 택배 상하차와 통역 밖에 없었어요.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일주일도 못 버티고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은 생각에 저는 영어 공부를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어요. 다행스럽게도 대학 덕분에 쉽게 일을 구할 수 있었어요. 꿈이라는 단어가 참 묘해요. 통역을 하면서, 실제로 외교관 분들을 만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그분들은 만찬에 참석하는데 저는 구석 한 켠에서 식은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고등학교 때는 막 설레고 마음을 쥐고 흔들던 꿈이라는 단어가 가슴 한쪽이 싸하고 정말 식어있던 게 느껴졌어요. 



    형이 줬던 시집에 적혀 있던 첫 문장에 저는 시에 완전히 매료됐죠. 맞아요, 그 제가 외우고 다니고 아직도 선물로 가장 먼저 고르는 그 시요.  "요즘도 너는 너하고 서먹하게 지내니"라는 문장이요. 언젠가 이 문장에서 느끼는 제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더 이상 나와 서먹하게 지내는 게 아닐테니까요. 형, 근데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퇴근을 하면서 같이 일했던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남은 도시락을 한두 개 더 챙겨가던 형과 누나들. 통역 아르바이트를 길게 하다 보면, 업체와 주관부처에 따라서 평이 갈려요.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요? 가장 중요한 게 친절하거나 칼퇴 보장 그런 게 아니에요. '도시락이 맛있어요' '야근 수당이 쏠쏠해요'와 같은 것들이에요. 형, 꿈을 그렇게 자꾸만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건가요? '가진 게 꿈 밖에 없다.' 맞아요. 그래도 꿈이라도 있어야 버티지 안 그러면 어떻게 버텨요. 근데 자꾸만 집이 아니라 꿈에도 저당이 잡히고 채무가 쌓여가는 기분은 왜 그런 걸까요? 



출처: 한국경제신문, "1000만 원 다 잃어도 상관없다"…2030 세대 놀라운 투자법



    올해 형도 투자하셨나요? 올해 신규계좌 57%가 2030대였다고 하네요. 몇몇 분들이 유튜브로 청년들의 '단타'와 같은 투자 방식에 쓴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게 투자를 하는 거예요. 지금 청년들은 건강하지 않아요. 아니, 월세를 내고 밥을 먹으려면 그렇게 배당을 받고 진득하게 투자할 여유가 없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게 떠올라요. 한 달에 300만 원 꼬박꼬박 저금해도 10년 모아야 이자 넉넉히 처서 4억 정도라는 말. 그런 현실 속에서, "서울시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이 10억 원을 돌파했다"라는 기사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투자를 해요. 그런데 그게 다 시간과 꿈에 한숨을 빚지는 거거든요. 저도 그랬거든요. 매일 미국 주식시장까지 챙겨보고 밤을 새우고 장 시작하기 전에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긴장을 하고 시간외거래까지 마쳐야 겨우 단잠을 이뤘어요. 그렇게 단잠에서 깨서 그래프를 보고 매일 손익을 기록할 때마다 네 평 남짓한 내 방의 벽에서 커다란 메아리가 환청처럼 들려왔어요. '어떻게 해야 여기를 벗어나지···.' '내가, 무얼, 더 해야···.'  



    형, 시에서 "아직도 무서웠던 것을 무서워하니?"라는 문장도 기억하세요? 어제 학생식당에서 파는 김밥을 먹으면서도 그 문장을 되뇌었어요. 점심으로 1500원 하는 김밥을 먹으면서도 저는 유튜브로 책에 관련한 소개를 해주는 영상을 듣고 있었어요. 친구들도 그렇더라고요. 형, 넷플릭스를 다들 재밌게만 보는 줄 알았지만 저처럼 트렌드에 뒤쳐질까 봐 보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끊임없이 성장을 바라는 친구들이죠. 저도 저번에 회사에서 "다들 퀸스 갬빗 보셨나요?"라고 말하는데 혼자 몰라서 당황했잖아요. 넷플릭스도 그렇고 유튜브 프리미엄, 리디북스 같은 구독 시스템이 거의 '교양 있는 현대인의 필수품'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런데 지하철에서 그런 것을 챙겨보는 젊은 분들을 보며, 왜 저는 서비스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왜 우리의 여가가 제한되어가는 것만 같을까요. 나 자신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데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챙겨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점점 취업이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늘어가는 스펙처럼요. 


   형, 요즘 한파에 방이 너무 추운 것 같아서 창을 유심히 들여봤어요. 그런데 창 자체가 작아서 틈으로 바람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틈으로 보였어요. '대학가'라고 부른 곳에서의 무수히 이렇게 작은 방들이요. '다닥다닥'이라는 단어에서도 틈이 느껴질 정도로 많은 방과 그 밑의 방들. 그 틈에서 조금 더 멀리 보면, 올 한 해에만 2배가 넘게 뛰었다는 아파트가 보여요. 아파트를 보다 보면 중간 즈음에 회사에 로고가 보여요. '아, 저런 곳에 들어가야 저런 곳에 살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게 제주도에서 마치 섬을 바라봤던 것처럼 저는 바라봐요. 그럴 때마다 그런 고층 아파트가 아닌 곳은 물에 잠겨요. 파도가 일렁이며, 가끔 드러나는 곳과 그렇지도 못하는 곳. 심해와 바닥. 바닥이라는 말이 참 신기해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것은 바닥 덕분인데 삶이 바닥이라고 하면 절망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상상이 끝나고 방에서 잠수하듯 숨을 참아봤어요. 맞아요. 저는 지금 바닥이에요. 사람들이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말하잖아요. 숨을 오래 참으면 몸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그래서 저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숨을 오래 참으면. 숨을 오래 참으면···    


    숨을 오래 참고 잠수를 하다 보면 눈을 감게 되요. 그러다 보면, 아무도 보지 못해요. 그러다 숨이 가빠지면 그때서야 눈을 떠요. '살아야겠다'라는 본능 때문에요. 그렇게 몇 번 제가 잠수를 해보니, 숨을 오래 참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조금 읽을 수 있어요. 말속에 호흡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 무뎌져야 할 것들이 자꾸만 무너져 마음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렇게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꿈, 이라고 나직이 이야기하면 눈이 잠수경 바깥으로 흐릿하게 원경이 되는 사람들. 형, 예전에는 저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보며 혼사서라도 섬에 올라가야 할 것만 같았어요. 올라타야만 하는 사다리처럼요. 그런데 도무지 사람들이 잠수를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한둘이 아니에요. 여기는 바다가 아닌데. 맞아요. 여기는 바다가 아니고 이런 이야기가 흔하디 흔해져 버린 세상이에요. 그래서 저는 섬으로 올라가지 않고 여기저기에 부표를 띄워보려 해요. 여기 형의 과거이자, 누군가의 미래가 될 수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요.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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