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친구는 또다시 길을 바꿔 떠나나. 두 달 간의 개발 회고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묻고 싶었다. 나의 방황을 너무 쉽게 서술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사람들의 방황과 노력을. 어떤 때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앞선 문장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한 분야로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는 작가님, 지인들,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그 이상으로 부러움을 느낀다. 방황을 할 때면 한없이 넓은 바다 위를 간신히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다도 바다마다의 호흡과 색과 농도를 갖듯 글 역시 그려했다. 나는 글을 통해서 사람을 이해하려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굉장히 안 좋은 습관이라고도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성격이기도 하다. 잘 썼고 못썼고의 판단이 아니다. 글을 보면, 단편적이지만 특히나 빠르게 쓴 글이면 이 사람의 습관과 지금 마음의 상태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맞춤법보다도 표현은 어떻게 하는가. 문장의 길이와 그 안의 구조와 구성은 어떤가. 마디마디와 문단 사이의 호흡은 어떤가. 그리고 나는 위의 습관을 무섭도록 스스로에게도 적용한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을 이해한다. 나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가다듬어지기 전의 브런치 초기 글들을 보면 서툴지만 날카로워지려 하는 노력과 그런 과정을 즐기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문장 역시 그러한 문장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시인이 되겠어!라는 낭만적인 꿈을 버리고 글을 좋아하는 취미로 모시게 된 이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프로그래밍이었다! 당시에 많은 문학회의 문우들께서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 시를 쓰는 메커니즘과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지고. 일을 할 때도 몰입을 하면서 나와 우리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작년 한 해는 정말 비영리 분야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연재했던 갱차나요 프로젝트였다.
하나의 프로젝트이고 성과 발표까지 했다면 끝을 외치고 돌아서도 되었다. 그리고 속으로 되었다. 되었다를 되뇌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에 대한 아쉬움과 '아직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다'라는 책임감이 들었다. 그건 약속 때문이었다. 말이나 정형화된 약속은 아니었다. 우리는 약속을 손가락을 걸거나, 서명이나 도장을 통해서 맺곤 하지만 그것은 확인 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 약속은 마음과 말 사이에서 이뤄진다. 어떤 것을 부탁하는 말이 마음에 닿고 그렇게 닿은 마음이 말로 다시 나와 상대에게 이른다. 진실되게 앞선 과정이 이뤄진 약속은 도장, 서명 등보다 그때의 눈 맞춤으로 확인되어 기억된다. 무수했던 인터뷰 사이에 나에게 그러한 약속이 쌓였다.
갱년기 보고서도 그러한 약속으로 인한 무게를 느끼며 쓰고 올렸다. 그러나 매주 받아보는 소셜 섹터의 이슈. 보고서. 사회 문제까지. 비단 약속드렸던 마음이 '이 문제를 해결할게요'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될게요. 아니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될게요. 그렇게 지나치지 않고 머무를게요. 정형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약속들이었으리라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을 어떻게 마음에서 실현의 단계로까지 밀어 올릴 수 있을까. 현실적인 고민의 시작이었다. 메시지의 힘과 필요는 중요해지고 있고 언제나 중요했으나 관심은 영상으로 가거나 조금 더 독자(사용자)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매체로 옮겨가고 있다. 맛집을 검색하려면 인터넷이었다가 인스타그램이었다가 유튜브가 되었으니. 그러나 나는 영상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영상처럼 프로그래밍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참 딱한 사람인 게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그렇게 크거나 위대하지 않다. 그래서 매번 '어떤 계기로~'로 시작하는 질문에 잘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납득될 정도의 계기만 있더라도 잘 해낸다. 그래서 다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드디어 돌아온) 학교에서 이중전공도 바꾸고. 컴퓨터를 전공한 학생들과도 경쟁해보고 있다. 글을 처음 쓸 때 철학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것처럼 단순 구현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받치고 있는 원리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현업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친구와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존경을 곁들여서 부르고 싶은 사람들과 맺었던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혹자들은 개발자 전성시대라고 이야기도 한다. 또한 반대 측에서는 이미 레드 오션이 되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쿠팡에서 (내가 나중에 쿠팡에 가지는 않을 테니까,,) 죽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전에 쓴 글도 반성하고 이와 더불어 사람을 위한 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곳에 일하는 개발자 분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원인은 절-대 아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개발자 분들이시다. 그러나 나는 효율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배민의 CEO님이 개발자를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것처럼. 그리고 언젠가는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 사이의 시간 동안 꾸준하게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다. 비단 비전공자에게만 프로그래밍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사람이 아니라, 공유와 이후의 나눔을 통해서 '저 사람이 어떻게 프로그래밍을 해?'라고 생각이 드는 노인 분들, 장애인 분들, 좁은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많은 분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툴도 만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알려드리고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기술격차와 지식의 격차 역시 좁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엔드 비전이기도 하다. 연봉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다. 원래 사람 자체가 시인을 꿈꿨을 만큼 돈에 큰 미련이나 인연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격차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좁혀가는 개발자가 되는 게 꿈이자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