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 발표를 끝내고
부족한 시를 가지고 세 편이나 글을 쓰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뒤늦게 몇 자 적어봅니다. 이런 글은 힘주고 적거나 손을 볼 수록 자기 자랑이 되는터라 무겁지 않게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적어보려 합니다. 저번 주 금요일 제 첫 시로 발표를 했습니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종의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쓴 글을 독자들 앞에서 직접 발표해보는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 쓰는 작가 분들은 부끄럽거나 두려워하면서도 내심 저런 기회를 꿈꿉니다. 저에게는 그 기회가 조금 이르게 찾아온 듯합니다.
노력하다 보면 꿈을 실현할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그러나 갑자기 찾아오는듯합니다. 그렇다면 늘 문제는 그 '카이로스'를 잡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다가올 때는 잡을 수 있어도 지나간 후에는 잡을 수 없습니다. 앞통수에는 머리숱이 있지만 뒤통수는 대머리 때문입니다. 이런 비유는 늘 들어왔지만 이번을 계기로 깨달은 점은 정말 기회라는 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과 같이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 기회의 속도에 뒤쳐질 정도로 절박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해서도 안될뿐더러 너무 물러나 있거나 주저하면 그는 나를 지나쳐 버릴 뿐입니다.
걱정은 늘 내가 겪게 될 현실보다 과장되기 마련입니다. 발표를 하며 교수님과 학우분들께 시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답변을 하면서 나아지고 새로운 해석도 많이 들으면서 개선해야 될 점도 많이 배웠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가 빨리는 듯한 경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글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써야겠다 다짐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30여분 간의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이 총평을 해주시며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물으시자. 제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었는데 부디 상투적인 인사가 아닌 진실된 감사인사였음이 전달되었기를.
글을 쓰는 취미가 처음에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 생각이 변해갔듯. 다시 돌아온 학교가 꿈꿨던 것처럼 마냥 즐거운 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김애란 작가님의 「비행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p.297)' 이 구절이 타인이 내게 하는 말이 아닌 오늘의 내가 한창 꿈을 그리던 나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는 들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도처에서 다가오는 기회는 감사드리며 절박하게 붙잡아 하루하루는 살아내는 것이 아닌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