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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Jul 17. 2022

0. 깊이라는 전문성

소셜섹터의 주니어가 서류 심사를 하며 느낀점


제주에서 나고 자란지라 제주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나 속해 있는 분야가 분야이다 보니 제주의 어떤 분야의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지 주위에서 많이 묻곤 한다. 오며 가며 듣는 질문도 있겠지만 종종 깊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제주의 사람마다 다 다를 그 대답에 만약 점수를 매겨본다면, '깊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는 답은 아마 C 정도를 받을 것이다. 진부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곧바로 아마 당신이 말하는 '깊이'라는 게 뭐냐는 불평이 나를 향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일을하고 공부를 해나갈 수록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좋은 기업과 이로 구성된 생태계에는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좋은 문학 작품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같다. 또한 작품의 깊이가 내게 작가에 대한 이해의 깊이였던 것처럼 기업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역시 그 조직 내부와 그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였다.  


"모든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김훈, 칼의 노래, p.129)"


그러나 동시에 묻는다. '인간이 무엇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싸움이 개별적이라는 근원에는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다'가 있다. 사회문제 역시 지역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그 싸움의 거칠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매번 싸움을 통해서 무엇을 쌓아가야 할까.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진부해지기는 커녕 날마다 새롭기만 하다. 가끔은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니' 허무를 넘어선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진부한 문제는 있을지라도 진부한 고통은 없으니 해결책도 진부할 수 없다. 최근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서 서류 심사*를 진행하면서 하나의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도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이 존재하는지 새삼스럽게 그리고 감히 동지애가 느껴졌고 감사했다. (*개인적으로 감히 심사라는 단어를 쓰기를 '굉장히' 꺼려한다. 편의상 심사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대표 분들의 고민의 깊이에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  


앞선 감사를 통해 매일 조급함을 지우려 한다. 우리나라에 '비영리'라는 단어가 사용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특히나 '소셜벤처'라는 개념은 정말로 최근에 탄생했다. 변명이 되면 안 되겠으나 앞선 문장에 '정립'이라는 표현이 섣부를 정도로 그 태동이 최근이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듯 소셜벤처에게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의 문제인 금연도 평생 한다고 하는데 사회 문제가 6개월 혹은 1년 만에 해결될 수 있으면, 이곳은 유토피아 혹은 천국일 것이다. 


러나 이곳은 엄연한 '세상'이다. 6개월, 1년 만에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대부분 오랜 기간 수면 아래에서 이슈 레이징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문제이다. 이를 통해서 단단한 지지기반이 만들어졌으며, (대부분) 최종적으로 정책이 통과되며 '해결될 것처럼'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쯤이면 되었지 돌아서는 사람들과 싸움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로 나뉜다. 정책은 시행만큼이나 모니터링과 환류의 과정이 중요하다. 이 짧은 문장이 정말 세대가 넘어갈 정도의 더디고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에게 해결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회문제가 있을까. 그렇기에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버티게 하는 힘은 전략적 의사결정과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차라리 우직한 공감이다. 그렇기에  가장 깊은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깊이 있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이다. 글을 쓰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고통의 공감은 일종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이 어려우며, 그로 인해 좀 더 얕은 동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인간의 한계이며 한계를 넘어 나는 글을 쓰지는 않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을 하면서 수많은 문제와 그 속의 고통을 마주한다. 나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가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이전에 신형철 평론가가 '슬픔에 대한 공부'를 언급했던 것처럼 슬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며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돌고 돌아 다시 서류 심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거의 하루 종일 스타트업 분들이 내주신 서류를 꼼꼼하게 읽었다. 부끄럽게도 제주에 살았지만 제주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를 하지는 않아 많이 찾아보고 물어보며 진행했다. 이러한 부끄러움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도 고통이 더 많은 쪽으로 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살아서 입신출세한 사람은 선망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어도 존경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그 고통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사람, 그 여정을 떠나기 위해 자신의 안락을 포기한 사람을 존경하며 나는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만나온 그러한 분들은 문제에 매달리며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숱한 실패를 거치더라도 반드시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냈다. 그런 '임팩트'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처럼 마치 먼 우주에서 별이 탄생할 때 나오는 빛처럼 온다. 지금 빛나고 있지만 사실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력, 농도 있는 시간의 압축을 통해 발생한 '깊은' 빛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밤하늘의 대부분이 어둠이이지만 우리는 어둠보다는 별에 주목한다. 앞선 공부와 이해는 그 몇 광년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다. 바로 이것이 나의 현재 일의 동기이자 고민이다. 어떻게 몇 광년의 시간을 압축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두 가지 문장이 스쳤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재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60p)


"하지만 진정한 천국이라면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선택이 행해져야 할 것이고, 적어도 어느 땐가는 보다 더 나은 자기 생의 실현을 위해 그 천국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천국이란 실상 그 설계와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여부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더욱 큰 뜻이 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399p)


환상은 없다. 위의 두 가지이자 하나인 천국 사이를 오가며 환상을 없애려 매일 노력한다. '좋은 일을 한다'라는 생각과 '이 사회문제를 이해했다'라는 환상을 가장 경계한다. 자신의 희생을 담보하지 않으며 앞 선 두 문장을 서두에 내세우는 생각만큼 해로운 문장은 없다. 좋은 일과 이해는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빌런은 영화와 달리 대부분 '좋은 일을 한다'라는 생각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확고한 사람들이었다.


더불어, 어떤 한 영역에 대한 집중은 분산이 되고 분산은 집중이 된다. 딜레마이지만 하나의 사회문제가 중요하다고 내가 상정하고 매몰되는 순간 수많은 고통받는 타인들을 놓친다. 동시에 발달 장애인 분들과 함께 했던 경험과 북한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썼던 치열한 경험들은 이해를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되어준다. '사회 혁신', '임팩트', 'ESG' 만큼 모호한 단어도 없지만 들여보면 이보다 구체적인 단어도 없다. 뒤에 사람과 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무상의 이익, 손해가 우리에게는 숫자로 인해서 구체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모호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Liberty in North Korea에서 근무할 때의 글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관련 분야에 대한 문의도 주셨다. 감사했다. 글에 재주는 없으나 언젠가 이 영역에서 함께 할 분들을 위한 편지를 미리 적는다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글을 쓰며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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