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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Nov 11. 2020

[귤로벌스터디] - 경애의 마음, 우리의 마음

잘 지내자 우리

1. 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낱말 같아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경애의 마음』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안녕'이라는 단어의 무게였다. 그러니까 안녕이라는 단어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단어다. 스물다섯의 나에게 안녕은 그만큼의 시간의 무게가, 그만큼의 행운이 작용해서 피했던 불운이 여집합으로 존재하는 단어였다. 너와 나의 만남은 얼마나 감사하고 또 기적 같은 일인가. 매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과 무사히 '안녕'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이 단어의 온도와 무게를 떠올려 봤다. 

 

출입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고 돈 내고 나가라던 사장만 자기가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돈 내고 나가라, 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을 끌어안은 거대한 분노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경애는 도저히 그런 것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잠갔다, 는 것과 돈을 내고 가라, 고 살기 위해 뛰쳐나갔던 아이들을 막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열일곱 이후로는. (64)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 화재사건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같은 사고 현장에서 단 한 명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수가 서로의 연결고리를 모른 채 ‘반도 미싱’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다. 기막힌 우연이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위보다 더 기막힌 인연들도 자주 이어진다. 또한 맺고 끊음도 인연이라는 단어처럼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인연이 더 많다. 천륜이라는 단어를 어찌 가족에게만 붙일까. 


경애와 상수는 드러낼 수 없는 기억을 공유한다. 이 둘에게 '드러낼 수 없다'는 말은 '들어낼 수 없다'라는 단어의 무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비극을 보며 직접적으로는 1999년의 인천 호프집 사건이 떠오르며 기억에 기억을 붙들고 또 다른 사건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을 잠갔다'와 '돈을 내고 가라' 그리고 '아이들을 막은 누군가'라는 비극의 발단과 원인 그리고 주체는 낯설지 않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느 날은 교사가 이런 말을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마치 경애를 겨냥하듯이, 학생들이 비행을 저지르면 다 그런 사고에 엮이는 거야. (중략)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p.71)


지금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놓친 것 중 아나는 슬픔이었다. 어린 시절 슬픔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면 맞이하는 법을 몰랐다. 어쩔 줄 몰랐다가 정확한 묘사 일정도로 어색하게 만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렇게 책을 넘기며 종이에 베이는 상처처럼 슬픔을 다뤘다. 잘 다루지 못한 슬픔은 마음속에 부채감이라는 흉터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의 어른들은 슬픔과 어색해하는 아이를 보며 "어른들도 그렇게 힘든데 의젓하다" 혹은 "대견하다"라는 말을 해줬다. 또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의 사고에 위처럼 그릇된 정당화를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렇게 의젓하거나 대견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슬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던 아이들도 있었다. 


입시는 대단한 것이었다. 학창 시절, 입시의 중요성 앞에서 대부분의 슬픔은 무력했다. 특히나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너희가 뭐 어쩔 수 있냐고 이야기하면서 커서 높은 사람이 돼서 너희들이 그릇된 것들을 바꾸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러한 사고의 피해자가 흔히 말하는 '노는 애'였다면 그 슬픔은 한 없이 초라해졌다. 작가는 그래서 묻는다.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입시에 맞춰진 사회 속에서 성적은 흔히 계급과 유사한 기능을 했다. 





2.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그런데 E는 죽었잖아, 죽을 정도로 아팠다는 거잖아. 선배, 나는 그걸 떠올리면 무언가를 용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대체 내가 뭘 용서할 수 없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뭘 용서해야 하는 거야,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거야, 누가 있는 거야. (p.163)


어린 나이지만 생각해본 적 있다. '용서라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행위일까'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용서'에 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여전히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없고 신의 단어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이 신을 만나는 많은 통로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용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내 자신은 그를 용서하더라도 피해자를 생각했을 때 완전한 용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용서할 수 없는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가 가슴에서 삭혀 슬픔이 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p.176)


글을 쓰면서 느낀다. 문장을 잘 쓰는 작가는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마음에 대해서 쓰기 시작하면 자연히 대단한 문장이 나온다. 김금희라는 작가의 마음학개론을 세 줄로 요약하면 위처럼 된다. 깊은 슬픔에 빠지면 마치 핸드폰 충전기를 콘센트에서 뽑는 것처럼 마음을 몸에서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더욱 심하면 뽑고 싶은 게 마음이 아니라 삶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폐기할 수 없다. 썩은 과일의 일부분을 도려내듯 일부분만을 남길 수도 없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단어로 문장을 잘 꿰어내는 작가의 힘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올 수 있잖습니까.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위 문장이 강한 울림이 있는 이유는 '그냥'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냥'은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에게 들으면 한없이 가벼운 단어지만 몇 겹의 생각을 뚫고 나온 '그냥'은 그보다 무거운 단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울림을 준다.  꿈, 희망, 행복 이런 긍정적이지만 추상적인 목적지로 향하는 매뉴얼은 오히려 단순하다. 말 그대로 그냥 잘 지내면 된다.


경애는 점점 힘을 주어 잡았고 "팀장님,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했다. "이렇게 마무리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268)


경애와 상수가 하던 일이 틀어지지만 경애는 상수에게 위와 같이 말한다. "팀장님, 그래도 우리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게 서로가 손을 잡는다. 이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마무리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서로의 슬픔의 깊이를 알고 전하는 위로는 얕지 않다. 그럴 때 진짜로 서로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고 대견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을 필요도 없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처럼 슬픔도, 행복도 크게 욕심을 내지 말고 나의 몫만 충실히 가져가면 된다.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p.318-9)


슬픔을 겪으며 알게 된다. 슬픔은 잘 맞이해야 하는 손님이다. 잘 맞이 하지 못하면 되려 화를 내기도 하고 아예 내 안에 눌러앉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오래 머무는 손님이다. 그러니 잘 맞이하고 머무를 때도 서로 잘 지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사라지기도 하며 아예 눌러앉지도 않는다. 마음을 호스팅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비단 개인의 마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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