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운 질문이 가장 차가운 소설을 만들어 낸다

[북리뷰] 내 젊은 날의 숲

by 변민욱
"때로는 가장 뜨거운 질문이 가장 차가운 소설을 만들어 낸다 김훈의 소설이 그렇게 씌어지는 것 같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p.44


이 책의 주인공은 광고 기획사에서 홍보용 그림을 그리다 민통선 부근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오게 된 조연주이다. 그녀는 민통선 부근의 연구원에서 식물들의 극사실화를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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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kepetrucci, 출처 Unsplash



그녀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만연해 있던 구조적인 갈취형 상납 비리로 인해서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가족들의 생리적인 삶만이 아버지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돈은 삶의 생리를 보호해주고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방편이며 조건이자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렇게 영위되는 삶은 허위나 가식이 아니고, 영광이나 수치가 아니고, 선악미추의 분간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받아내고
견뎌내야 할, 빼도 박도 못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숲」 p. 49

아버지의 삶은 하루하루 스스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견뎌내며 살아내야만 했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돈'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 화폐가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잘 버텨내고 있다고 위안을 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갇히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오더라도 갈라서겠다고 말하며 인연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 그녀(조연주)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면서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곧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집에서 몰아낼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와 식구들의 삶 속으로 이미 흘러들어와서 생애가 되어버린 모멸을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결핍으로 결핍을 덮어줄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숲」p.199

나에게는 생에가 흘러간다는 묘사는 그녀가 재직했던 연구소 숲의 해설가였던 이나모가 말했던 나무에 대한 해설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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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sango, 출처 Pixabay

나무의 중심부는 죽어있는데,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 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내 젊은 날의 숲」 p.215

아버지가 저렇게 상납 비리로 벌어들인 돈은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가정을 유지하는 데 지불되고 탄생까지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그 후에는 또 그녀를 지탱하고 성장시키는 데 쓰엿을 것이다. 그녀조차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생에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 돈으로 대표되는 아버지의 생애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렇게 벌어들인 돈에 의해서 성장했으며, 그 돈은 죽었지만 그녀를 버티게 하며 그 바깥층에서 그녀는 또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나무와 인간의 시간은 다르다고. 내용이 다르고 진행 방향이 다르다고. 그렇다면 왜 그는 이와 같이 적었을까? 그 대답은 그녀가 연구원에서 만난 인연이었던 안실장에게서 들을 수 있다.


텅빈 말로 안실장은 나무의 운명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탯줄이 아니라 씨앗으로 태어나서 비바람 속에서 빛과 더불어 자고 깨는 나무 안쪽에 안실장은 말을 걸고 있었다. 혈육이 없어서 인륜이 없고 탯줄이 없어서 젖을 빨지 않은 것이 나무의 복이라고 안실장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의 씨앗과 풀들의 씨앗이 바람에 퍼져 온 산맥을 뒤덮어도 살아서 숲을 이룬다는 것은 가을의 서어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나무와 잎으로 가득 차서 서걱이지만 숲에는 피의 인연이 없다. 가을에 나는 그걸 알았다.
「내 젊은 날의 숲」 p.264


나무와 인간은 다르게 태어난다.
탄생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방향은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탯줄로 이어져 태어난 인간은 평생을 이로 말미암은 '피의 인연'의 굴레 내에 살아간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 속에서 탯줄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나무의 탄생에는 이런 '피의 인연'이 없다. 씨앗은 젖을 빨지도 않으며 그 탄생과 동시에 분리돼 개별적인 생물체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이 모인 '사회'와 나무들이 모인 '숲'은 어떤점이 다를까? 모습으로만 보면 숲도 인간사회와 같이 동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인간의 관점이다. 김훈의 말에 따르면 숲은 그 집단성 보다 더 강한 개별성을 띤다고 한다. 나는 그 나무들을 인간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구획을 설정해 '숲'이라 집단처럼 획일화하여 부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숲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소설에서 자연은 늘 배경처럼 등장하지만 사실은 주인공 보다 더 존재감 있는 배경이다. 서양의 문명에서 우리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개척해나가며 역사를 써내려간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역사 속에서도 항상 자연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은 늘 그대로 있고 인간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그의 다른 작품 속에서는 남한산성의 투쟁도, 이순신의 위대한 공적도 역사 속 공허한 외침이고 그들도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러한 김훈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영속성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무상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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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fuller, 출처 Unsplash

그녀와 나무의 이야기는 안실장의 가족에게도 그 뿌리를 이어간다. 그의 아들 신우는 유전으로 인해 자폐증을 앓는다. '유전' 이라는 단어는 위에서 보여준 인간의 피의 인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어다. 이처럼 안실장의 가족에게도 이어진 이 '피의 인연'은 그녀의 가족에게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품 내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신우도 그가 아이를 낳고 조연주도 그의 아이를 낳는다면, 그들의 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흐르는 그들은 보지 못한 아버지의 피가 그들의 몸속에 흐를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서 남쪽으로 간 신우가 너무 커서 나를 낯설어 하기 전에 너무 커서 안요한 실장만큼 커지기 전에 신우를 안아주고 싶었다.···
「내 젊은 날의 숲」마지막 페이지


책의 마지막에서 나(조연주)는 어머니를 따라간 신우를 안아주고 싶어 한다. 자가는 왜 이 부분으로 끝부분에 넣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작품 속 신우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아이를, 아이였던 사람들을 뜻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탄생 이전부터 시작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과 이에서 유래된 아픔과 눈물을 위로해줄 다른 방도가 없어서 안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관재자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세음보살께서 깊은 지혜를 실천하실 적에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빈 것임을 환히 꿰뚫어 보시고 드넓은 고해를 건너가시더라
「내 젊은 날의 숲」p.333



글을 마치며...

산천을 떠돌면서 , 그런 생각을 했는데 산천은 나의 질문을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래서 나의 글들은 세상으로부터 되돌아온 내 질문의 기록이다.
「내 젊은 날의 숲」작가의 말

다시 처음 신형철님의 평론으로 돌아가 보자. 가장 뜨거운 질문은 가장 차가운 소설을 만들어 낸다. 그럼 왜 질문인가... 김훈은 왜 질문을 했고 산천은 왜 질문을 되돌려 주었는가. 질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산천이 질문을 되돌려 준 이유는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어서 였나보다. 비슈겐슈타인은 '말 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훈의 질문에 산천은 대답을 해 줄 수 없어서 그에게 고스란히 질문을 되돌려 주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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