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울려퍼지는 악기와 무기의 변주곡에 대해

[북 리뷰] 현의 노래

by 변민욱

1. 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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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guri007, 출처 Pixabay


들어라. 금이 갖추어지면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만들어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는가.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
「현의 노래」 p. 17

문득 떠오른 이 생각을 붙들며 이 소설을 읽었다. 사람은 본디 자연의 소리를 빌려서 소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말과 빗소리가 다르고 사천이 다르면 소리도 제각각인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인간의 악기일 것이다.
악기 그 자체는 자연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지만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악기가 마치 몸의 일부처럼 보인다. 악기를 통해 인간은 세상에 없던 소리를 빚어낸다. 한 음이 떨리며 세상에 나갈 때마다 현이 닳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 번 세상에 나온 소리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소리다. 이런 소리를 내며 가야금은 우리 곁에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우륵과 함께 가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고, 후대에 그 신라조차 망하는 것을 보며 여전히 우리 역사 속에서 숨 쉬고 있다.

갈 곳은 아직 모르오. 허나 가야는 이제 곧 결딴이 날 곳이오.
-소리가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상관이 없다 해도 살아야 소리를 내는 것이오. 목숨은 소리와 다르지 않소
「현의 노래」 p. 155
그래, 네가 나에게서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나를 그저 내버려 두시오. 신라가 가야를 멸하더라도, 신라의 땅에서 가야의 금을 뜯을 수 있게 해주시오.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주시오.
「현의 노래」 p. 289

소리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인간을 소리를 자연으로부터 빌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 '마의태자'의 선택과 이 우륵의 선택을 비교하며 옳고 그름을 토론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또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옳음을 판단할 수 있었던 문제였는지 의문이 든다. 우륵은 그저 살아서 소리를 지키기 위해 투항했다. 어떤 힘의 논리에 따라서도 아니었고 이념과 가치 판단도 없었다. 소리를 지키며 현의 인생을 살았던 그의 선택에 우리가 옳고 그름을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너는 이제 낭성을 떠나서 국원으로 가라. 국원은 새로 차지한 고을로 지금은 어수선하나 삼한의 중심이다. 내 거기 소경을 열고 백성들을 이주시켜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한다. 너를 위해 국원에 거쳐를 마련해주마. 너는 국원에 살면서 너의 소리를 과인의 나라의 소리로 키워라.
우륵은 대답하지 않았다
······ 소리는 스스로 스러지는 것이옵니다······
우륵은 말을 몸 안으로 눌러 넣었다 「현의 노래」 p. 307

왕의 소리와 우륵의 소리가 소리 없이 부딪힌다. 언어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왕은 소리를 가지런히 하고
통치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륵의 언어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리를 단순한 소리일 뿐이다.
스스로 스러지는 소리는 키우거나 다스린다는 등의 논리가 개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우륵의 말은 왕에게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2. 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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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보병의 시체는 땅에 들러붙어 한 걸음씩 걸어 다니는 자의 굼뜸을 드러내 보였고 죽은 기병의 시체는 빠르고 가벼운 자들의 의지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죽은 보병의 시체는 한 걸음씩 다가와서 들러붙은 자들의, 그 피할 수 없는 엉킴을 보여주었고, 죽은 기병의 시체는 휘두르는 반경의 큰 자들의 넓이와 가파름을 보여주었다. 야로는 앉은뱅이걸음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벌판의 끝까지 나아갔다.
······ 쇠의 바다는 넓고 또 깊어서 끝이 없구나······
시체를 뒤적이면서 이따금씩 야로는 심한 구역질을 했다. 그가 등을 구부리고 먹은 것을 토해낼 때, 늙고 마른 등뼈가 옷 위로 드러났다.
「현의 노래」 p. 38

야로는 병사들의 시체를 눈으로 해부한다. 쓸만한 쇠를 수거하는 동시에 자기가 만든 쇠에 대한 일종의 피드백이었을 것이다. 쇠의 바닷속에서 부르는 쇠의 노래가 그의 생(生)이자 사(死)였다.
이 문장에서 구역질은 죽음의 세계에서 야로를 끄집어내면서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환기시킨다. 김훈에게 죽음은 감각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김훈에게 죽음은 감각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을 자세히 묘사하며 죽음과 삶의 명암을 대비시킨다.

-쇠붙이는 주인이 따로 없다. 쇠붙이는 지닌 자의 것이다.
-말들이 어지럽사옵니다
-주인이 따로 없어, 쇠의 나라는 번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다 설명하기 어렵다. 술을 들여라
「현의 노래」 p. 130

쇠들이 부딪쳐서 고을이 무너지고 또 정돈될 것이며, 왕의 시신은 녹스는 덩이쇠 위에서 썩어갈 것이다. 야로는 세상의 단순성과 세상의 복잡성 사이에서 어지러웠고 피곤했다. 야로는 세상이 자신의 피로 속에 녹아드는 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쇠의 노래는 복잡한 듯 보이면서도 간단한 순리를 따른다. 약육강식에 따른 힘의 공백(power vacuum)을 메워왔던 역사다. 신라는 그 흐름대로 가야로 흘러들어왔으며 그 공백을 메웠다. 야로가 신라에게 무기를 바치고 투항한 것-투항 후에 죽은 것은 차지하더라도-도 비난할 수 없다. 그는 평생을 바친 쇠의 냉혹한 노래를 따라 살았다.

그렇겠구나. 세상에 온당하기란 쉽지가 않구나. 내 풍편에 들었다. 너의 소리가 그리도 절묘하냐?
-나의 소리가 아니라, 본래 스스로 흘러가는 소리요
-소리는 주인이 없는 것이냐?
-아마도 그러할 것이오
-너희 나라 대장장이 야로를 아느냐?
-가야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소
-그 늙은 대장장이가 말하기를,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 하였다.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이냐?
-소리는 없는 세상을 열어내는 것인데. 그 세상은 본래 있는 세상인 것이오. 병장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병부령께서 더 잘 아시리이다.
이사부는 숙사 아래쪽 들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구덩이는 흙으로 덮여졌고, 보졸들이 그 아래쪽으로 배수로를 파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소리는 병장기와 같은 것인 모양이로구나.
「현의 노래」 p. 287

읽으며 야로의 투항은 비난하면서 우륵의 선택에는 수긍하는 나의 이중성을 발견했다. 무기는 추악하고 냉엄하며 무기는 고고하고 아름답기 때문인가. 그러나 무기와 악기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다워 보이는 금에도 피는 묻어있고 숱한 죽음을 보면서 그 소리를 냈으며 무기는 그 소리를 들으며 피를 흘렸을 것이다. 그런 역사 속에서 내가 이중적 잣대를 들이댔던 것처럼 무기와 악기도 서로 그렇게 생각하고 한 편으론 서로를 동경했을 것이다.

3. 자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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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keflynt, 출처 Unsplash

이사부의 시체는 진중에서 화장되었다. 군사들이 강가에서 장작을 열 척으로 쌓아 올렸다.
······ 중략······
강 건너 개포 나루 쪽 산맥 너머에서는 가야의 대궐과 여러 고을들을 태우는 연기가 닷새째 피어올랐다. 연기는 넓게 퍼졌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가야를 태우는 연기가 강 건너로 밀려왔다. 연기에 덮여 건너편 산맥이 흐려졌다. 이사부를 태우는 연기가 가야를 태우는 연기와 섞이면서 넓게 퍼졌다. 강에 안개가 걷히고, 바람은 하류 쪽으로 불어갔다. 연기는 강을 따라 길게 흐르면서 물굽이를 돌아갔다.
「현의 노래」 p. 314-315

결국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공적을 쌓은 이사부도 죽는다. 인간이 쏜 화살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이미 죽음을 향해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 하나의 인간으로서 죽는다. 그리고 그가 불태웠던 가야의 연기와 합쳐지며 하류로 흐른다. 거기에는 원한도 복수도 없다.

우륵은 가을에 죽었다
「현의 노래」 p. 329

그런 뒤 우륵도 죽는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 문장이 아닐까. '가을에 우륵은 죽었다.'와는 사뭇 다른 문장이다. 가운데서 '가을에'는 문장 전체를 삼키며 주어처럼 보인다. 우륵은 사계절이 돌아오듯, 가을에 죽었을 뿐이다. 이처럼 이사부도 죽고 우륵도 죽는다.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이며 비장함도 고고함도 느껴지지 않는 죽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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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나아가면 '엎어진 시체의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틈으로 본풀이 돋아올라 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들은 바람에 흔들렸다.'일 것이다. 이사부, 우륵 심지어 나의 죽음 후에도 꽃은 피어나며 바람에 흔들릴 것이다. 김훈의 소설에는 영웅이 없다. 이처럼 단지 한 사람의 죽었을 뿐이라고 쓰며 작가는 혹자들이 그의 소설을 영웅주의 소설이라 하는 비난을 배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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