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공터에서
"내 당대 얘기를 하나 쓰려고 그래요. 기자 노릇을 한 삼십 년 가까이하면서 본, 내가 느끼고 관찰했던 당대의 수많은 꼬락서니들이 있어요. 뒤죽박죽과 그럴 수밖에 없는 좌충우돌, 시행착오와 거듭된 실패, 그런 속에서 우리들의 희망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지, 희망을 건설하면서 살고 있는 건지 욕망을 또 희망이라고 말하는 건 아닌지 과장 없이 이 비겁하고 소심한 자의 시선으로, 일체 영웅주의를 빼버리고 한 번 써볼까 싶어요"
「현의 노래」中 대담 379쪽
"이 작은 소성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사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내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채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나갔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
「공터에서」中 작가 후기 352-353쪽
이 책에는 김훈의 삶이 녹아있었다. 「라면을 끓이며」에서 적었던 그의 삶이 마차세의 삶과 겹쳤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죽음이 이끄는 썰물에 실려서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갔다가 다시 밀물에 얹혀서 이승의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를 세 번 거듭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혼백이 먼저 육신을 떠나서 멀어졌고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시간의 파도에 실려서,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세 번째 썰물에 실려서 저편으로 아주 건너갔고, 다리가 오그라졌다."
「공터에서」 10쪽
죽음은 그 시기가 다가오면 의식을 거둔다. 의식은 그 너울에 휩쓸려갔다 밀려왔다를 반복하며 점점 멀어진다. 마동수에게는 죽음 초자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마차세의 말처럼 생은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스스로 끝나는 것 같았다. 생의 과정 중 기억은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힌다.
"이도순의 병은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종말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도순은 기억을 거의 상실해 갔는데, 생애의 가장 고통스러운 대목들만을 챙겨서, 더욱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망각의 시간들 사이사이에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때마다 이도순은 연극배우처럼 과거를 재현해 냈다. 마음의 먼 변방에서 흐린 호롱불로 가물거리던 기억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고, 이도순은 몸의 동작으로 그 기억들을 되살렸다. 기억이 되살아나서 몸으로 들어날 때, 이도순은 다리의 통증을 잊어버리는지 방 안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이도순의 기억상실은 잊혀지지 않는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잊고 싶은 것들만 되살려내는 기억 회생의 병증인 것처럼 보였다"
「공터에서」238쪽
읽고 넘어진 문장이었다. 넘어져 내 기억들 중에선 어떤 기억이 마지막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려웠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 삶은 헤쳐나간다. 하지만 생의 때때로 그 기억이란 칼은 방향을 돌려 나를 향한다. 그렇게 기억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 기억 속의 비애는 죽음의 그 순간까지도 내가 길들일 수는 없는 영역일 것이다.
"요즘 벚꽃 핀 벚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그림 속에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가 힘들어. 핀 꽃이 아니라 피어오는 꽃, 피어있는 꽃을 그리고 싶어"
「공터에서」55쪽
"니가 그리고 싶은 것이 뭔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게 그려질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어 ······ 너를 얕보는 게 아니고, 사람이 그릴 수 있는 한계를 말해 보려는 것이야 ······"
「공터에서」56쪽
전에 읽은 내 젊은 날의 숲이 떠올랐다. 두 작품에서 모두 그녀들은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려 한다. 여기서 박상희는 피어오는 꽃, 피어있는 꽃, 즉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싶어 한다. 인간이 그런 질감까지 그릴 수 있을까. 불가의(不可) 영역이다. 너(박상희)여서 못 그리는 게 아니다. 네가 사람이기 때문에 못 그린다. 김훈은 가능과 불가의 경계를 확실히 구획한다. 그는 첫 소설에서부터 말해왔다. "철민아 본래 대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결국 대답할 수 없다 (동저자,「빗살무늬 토기의 추억」,문학동네,1995, 120쪽) 말할 수 없는 것이 그릴 수 없는 것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선생님은 손으로 만져본 느낌을 그릴 수가 있나요?
라고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물었다.
-그릴 수 없어도, 그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라고 박상희는 대답해주었지만, 전달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박상희는 아이들이 종이나 캔버스에 선을 긋고 물감을 칠할 때 그 종이나 캔버스를 빈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으나 그 바람 또한 이해받기는 어려웠다."
「공터에서」208쪽
"선생님은 손으로 만져본 느낌을 그릴 수 있나요?"는 "선생님은 질감을 그릴 수 있나요?"라는 물음이다. 연필, 펜, 콩테.. 인간은 그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도구와 기법들을 발전시킨 것만 같았다. 박상희는 아이들이 캔버스를 세상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캔버스가 세앙이 된다면 캔버스를 채우는 그림은 삶에 대응되며 손은 살아가는 주체가 된다. 그렇다면 위 물음은 이렇게 바뀐다. "선생님은 생의 질감을 삶에 투영시킬 수 있나요?" 그렇다면 박상희의 대답도 이렇게 변한다. "그럴 수 없어도 그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생을 살아갈 수 있다."
"배고프다던 형의 목소리가 자리에 누워서 마지막 며칠을 견디는 마동수의 뿌연 의식 속에 떠올랐다. 그 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기억은 바래어져서 아무런 현실감이 없었지만, 임박한 죽음보다 더 절박하게 마동수를 옥죄었다. 비닐 장판에 누워서 마동수는 그날의 새벽을 응시했다. 세상은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공터에서」65쪽
비록 마동수가 어두컴컴한 단칸방에 홀로 있더라도 세상은 그를 놔주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세상에 기억을 사용하고 기억은 대가를 받아낸다. 죽음보다 강렬하다. 대게와 인간 모두에게 세상은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동저자, 「라면을 끓이며」) 인간도 비애로만 가득 찬 공허한 삶에서 허공을 긁어댈 뿐 뒤집어 일어나지 못한다. 뒤집지도 못하고 뒤집는다 해도 세상에서 도망치지도 못한다. 퇴로가 없는 숙명이다. 숙명에는 기쁨이란 단어가 없지만 이것을 인식해야 삶이 시작된다.
"서울 남부 순환도로에서 동부순환 도로로, 외각도로에서 중앙도로로 하루종일 달렸다."
「공터에서」마지막 문장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나는 서울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내 젊은 날의 숲」마지막 문장
마지막 문장들이다. 모두 세상(서울)으로 향한다. '순환도로'라는 단어는 순환적 이미지까지 준다. 허무주의와 무상함 뒤에 생의 긍정이 숨어있었다. 벤야민은 일전에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라고 말했다. 김훈의 인물들은 영웅이 되려 하기보다는 제작각의 생애에 충실할 뿐이다. 마동석을 그의 동지를은 아나키로 평가했다. 이렇듯 김훈의 인물들은 좌우에 기대지 않는다. 기댈 곳 없는 그들은 각자 생애의 이념에 입각해서 삶을 살아간다.
박상희가 말했다.
-당신 형님, 당신이랑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어.
-형제니까 닮은 거지. 그게 이상해?
-이상한 건 아니지만, 왠지 무서웠어
-무섭다고? 나도 그게 무서워. 무서웠는데, 그걸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게 왜 무서운 거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 무서운 거겠지. 우리 형제는 모두 아버지를 닮았어. 형은 아버지의 흔적이 싫어서 한국에 안 오는 거야. 또 베트남에서 군 복무할 때 말 못 할 일을 저지른 모양이야
「공터에서」183-184쪽
"마차세는 멀리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어느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지, 두어 달 만에 한 번 씩, 겨울이면 새벽에 기침을 쿨럭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장세의 걸음에 옮겨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
「공터에서」342쪽
형제는 아버지와 닮음으로 그 피의 인연을 나타내는 징표를 나눠갖는다. 마장세는 평생 피하려던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운명은 피할수록 점점 더 그의 괴물이 되어간다. 베트남전, 괌 그에게 운명의 도피처가 되어주었던 곳은 되려 그 운명이 실현되는 곳이었다. 공터(空地)의 정의는 집이나 밭 따위가 없는 비어 있는 땅이다. 다시 한번 세상은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도망치기보다 바람에 날려와서 연고 없는 땅에 떨어져 겨울을 맞는 홀씨와 같다.
마장세의 삶을 보며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운명을 피해서 도망친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되고 결국 근친상간에 이르게 된다. 그의 비극이 안타까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날 화장대에 놓인 거울을 봤을 때 세상 가장 친숙한 오이디푸스에 페르소나를씌우는 것이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