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북리뷰] 흑산

by 변민욱

0. 글을 시작하며

131910019886_20111021.JPG 출처: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663.html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흑산」p.386)


김훈은 작가 후기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에 이렇게 적었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은 조선 말기이다. 밖에선 천주교가 들어오고 있었고 안에선 백성들이 삼정의 문란으로 유리걸식(流離乞食)하고 있었다. 조선은 안팎을 가리지 않고 부는 바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1. 언문 기도문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매 맞아 죽은 우리 아비의 육신을 우리 아들이 거두옵니다
주여,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당신의 주검을 거두신 모친의 마음이 어떠했으리까.
하오니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어비 자식이 한 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의 죄를 묻지 마옵시고 다만 사하여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흑산」p.59)


아, 황사영은 기도하는 자세로 꿇어앉았다. 육손이가 놀라서 상전을 바라보았다. 황사영의 마음속에서, 들판과 산골의 구석구석이 펼쳐졌다. 땡볕 아래 먼지 나는 황톳길로 유리걸식하는 백성들과 허연 수염에 실눈을 뜨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지방 수령들과 담장이 무너지고 기왓장이 떨어져 내린 관아들과 송덕비가 늘어선 거리들이 흘러갔다. 그 들판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소는 보이지 않았다. (「흑산」 p.106)


백성들의 바람이 적힌 기도문이다. 황사영*(황사영과 황사영 백서 사건 참고)은 이 기도문을 듣고 기도하는 자세로 꿇어앉는다. 당대 지식인 중 한 명으로서 백성들의 바람의 단순함에 놀랍고 두려웠을 것이다. 백성들의 기도문 속 천주는 살아 있는 육체와 같았다. 아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매 맞은 아비의 주검을 지게 싣고 가고 뒤이어 아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 때, 부모가 노비여서 이리저리 팔려 다녀 부모의 얼굴조차 보지 못함을 서러워하며 눈물을 흘릴 때 천주는 실존했다.


저것들은 대체 누구인가. 저것들은 왜 저러는가. 왜 죽여도 또 번지는가. 저것들은 어째서 삶을 하찮게 여기고 한사코 죽을 자리로 나아가는가. ······ 임금은 그것을 물었으나 신료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받지 못한 의문은 두려움이 되어 번져나갔다. (「흑산」p.97)


조정은 이를 이해하지 못해 두려워한다. 세수가 줄어들었다. 이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수령은 세금을 올린다. 내지 못한 백성들은 매를 맞아 죽거나 터를 버렸다. '굶주림' 속에서 이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백성이 올렸던 장계에 적힌 "무슨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슨 덕을 칭송해야 하는지는 무식한 소인들이 알 바는 아니오나·····백성들이 떠난 마을에서 신관 사또는 송덕비를 상대로 수령 노릇을 하시렵니까"(「흑산」 p.22)에 현실은 적혀있었으나 조정에 닿지 못한다. 그 속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 자와 눈과 귀를 닫은 자로 나뉘었다. 신료와 왕후의 눈에는 순교자들의 피가 조선 팔도를 물들이는 듯 박해가 심해질수록 요언(妖言)은 더 빨리 퍼졌다.


백성들은 부를 수 있는 제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웠다. 황사영의 '배서'에서도 나와있듯 그들은 조선에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길 바랐다. 백성들은 그들의 이웃, 생애 동안 보지 못한 부모와 심지어 배교(背敎)했던 자매들과 함께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생애에서 삶이 추구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죽음을 통해서 삶을 모색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나아갔다. '요한 마노리'가 그러했고 육손이가 그러했으며 정약종과 황사영이 그러했다.





2. 살아남은 자들의 삶


바다는 땅 위에서 벌어진 모든 환란과 관련이 없이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으로 펼쳐져 있었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에서, 움트는 시간의 새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너머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흑산도였다. ······죽지 않기를 잘했구나······저렇게 새로운 시간이 산 더미로 밀려오고 있으니 ······. (「흑산」 p.19)


살아서 다시 세상에 나온 정약전에게는 새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정약전과 세상을 분리시킨다. 하나 빼고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이한다. 그 하나는 바로 황사영이었다. "사람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닮을 수가 있구나. 맑음의 바탕은 같은 것이로구나, 아마도 대학은 그런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흑산」 p.113) 그곳에서 정약전은 황사영을 빼닮은 창대를 만난다. 창대를 보며 정약전은 서울을 그린다. 정약전에게도 세상을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세상과 아무 관련 없어 보였던 흑산에도 수탈은 계속되었다. 흑산에 사는 백성들은 각종 세금에 유배 온 사람까지 모셔야 했다. 육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세상이었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김훈은 정약전을 통해 소망에 대한 불씨를 놓지 않는다. 흑산에서 정약전은 물고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쓰려 노력한다. 정약전은 어떤 것이 말하여질 수 있는지, 옳은 것인지 해석될 수 없었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해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흑산어보'가 아닌 '자산어보'이다. 정약전에게 흑산(黑山)과 자산(玆山)은 달랐다. 흑산이 그가 끌려온 세상이었다면 자산은 그 속에서 그가 써 내려간 세상이었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흑산 작가후기」 p.387)


이후 수탈을 자행하던 수군 별장은 흑산을 떠나며 50냥을 건넨다. 그는 평생 관직에 머물러도 오를 수 없는 정 오품의 정약전과 그 사이에 하나의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주는 돈을 한사코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받은 정약전은 흑산에 서당을 세운다. 김훈의 여타 인물들처럼 주어진 생애에 충실하는 모습이다. "배가 선착장에 닿자 징소리가 높아졌다. 문풍세의 수탉이 마을 쪽을 향해 길게 울었다."(「흑산」 p.383 흑산 마지막 문장) 정약전에게도 흑산에서의 새로운 아침이 온다. 그는 순리에 따라 삶에 충실하며 작은 희망을 세상에 전한다.






3. 글을 마치며

미쳐 쓰지 못한 '요한 마노리'의 삶이 눈에 밟힌다. 소설 속 요한의 뜻은 멀리 가는 자이다. 북경에서 세례를 받으며 받은 세례명인데 마노리만의 것이 아닌 조선 모든 신자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세례명처럼 들렸다. 신유박해 이후에도 천주교가 인정받기 전까지 수많은 생애가 형장에서 순교했다. 조선에서 그를 기다리던 황사영을 비롯 조선의 모든 신자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주막을 차리며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마노리의 삶을 뜻한다면? 평범하게 살려면 미친듯이 노력해야한다는 요즘 "마노리야, 너에게 부탁했던 그 먼 길을 이제 내가 가야겠구나. 마노리야, 이제는 내가 요한 마노리다······."(「흑산」 p.377) 라고 했던 황사영이 떠오른다. 세상은 아직도 '요한 마노리'로 가득차 있었다. 나도 그이며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가 못 다 걸은 길을 걷고 있다. 김훈은 소설은 소설로만 읽혀지길 원했겠지만 책을 닫으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우연하게 들은 한 노래가 소설에 겹쳐 소개해드린다.

(이은미 - 주여, 이제는 여기에 : http://tv.naver.com/v/1356599)







*황사영의 삶: 관련 자료
황사영과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은 1791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정조는 그를 친히 궁으로 불러 손목을 어루만지며 치하했고 황사영은 어수가 닿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사영은 당대의 석학들을 만나 학문을 넓히던 중 다산 정약용 일가를 만나고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가 된다. 처가인 마재 정씨 집안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해 전해 들은 황사영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조선 천주교회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고난의 길을 걷는다.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을 빠져나와 충청도 제천 산골 배론으로 숨어든다. 교도들에 대한 탄압과 주문모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그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하지만 백서(비단에 쓰였기에 ‘백서帛書’로 불린다)를 품고 북경으로 향하던 황심이 붙잡히고 황사영도 대역 죄인으로 능지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이때가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 사건으로 그의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 정명련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된다.
백서의 원본은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백서는 하얀 비단에 가로 62센티미터, 세로 38센티미터 크기이며, 122줄 13,384자가 극세 필로 깨알처럼 작고 단정하게 쓰였다. 그 내용은 대략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당시의 천주교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활동, 신유박해 사실과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사실, 끝으로 당시 조선 국내의 실정과 이후 포교하는 데 필요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황사영 백서’는 민족 감정에서 나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한편 교회의 평등주의라는 원칙과 당시 조선사회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출처: 네이버 책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48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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