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남한산성을 읽고
'옛 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에 무참하였다.'
「남한산성」 p.5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임진년과 정유년 두 차례 일본에서 시작된 힘의 도미노는 동북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명이 쇄약 해지자 억눌려 있었던 여진이 자연히 강성해졌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진은 번성하는 세력에 따라 국호를 후금, 청으로 바꿔나가며 중원으로 조선으로 향했다. 화친을 배격하고 대의를 앞세운 조선은 두 번의 왜란에 이은 두 번의 호란을 겪는다. 조선은 또다시 무참히 짓밟힌다.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 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남한산성」 p. 271
인조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각각 김상헌과 최명길이 주장하는 척화와 주화의 길이다. 두 길은 접점을 찾지 못해 평행한 듯 보이다. 대의를 앞세운 척화 가장 앞에는 김상헌이 있다. 앞에선 그는 홀로 척화의 모든 무게를 감내해낸다. 그는 척화가 벼루와 먹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안다. 대장장이 서날쇠에게 병장기를 부탁하고, 임금의 문서를 전하도록 명한다. 백방으로 그는 안팎으로 끊긴 그의 글을 이어보려 노력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 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 주소서" 「남한산성」 p.249
최명길이 말했다.
-상헌은 제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터인데,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
김상헌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소리쳤다.
-전하 명길의 문서는 글이 아니옵고 ······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옵고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야 할 길바닥이옵니다
「남한산성」 p.315
그 반대편에 위악의 길을 걸어가는 주화파 최명길이 있다. 최명길은 김상헌을 백이로 추켜세우면서도 자신 스스로 만고의 역적임을 자처한다. 김상헌이 그랬듯 그도 가장 앞장서서 주화를 향한 모든 욕됨을 기꺼이 감당해낸다. 최명길에게 길은 비록 적 속에 나있더라도 살 수 있는 길이라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오히려 대의에만 의존해 나아갈 수 없는 길은 그에게 길이 아니었다.
인조는 결국 주화파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소설은 정치적 승패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와 대화에 주목한다. "최명길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김상헌이 종헌을 올렸다. 잔을 올리고 물러나 절할 때, 비틀거리는 김상헌을 최명길이 부축했다." (「남한산성」 p.236) 비틀거리는 김상헌을 최명길이 부축하는 모습은 그들이 논박을 주고받을 때 모습과 유사하다. 서로를 향해 날 선 견제와 비판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 대상은 상대가 펼치는 주장에 한정된다. 나라의 존명을 걱정하는 두 신하는 서로가 처한 운명 속에서 강한 비판의 강도만큼이나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한다.
-전하, 신을 적진에 보내시더라도 상헌의 말을 아주 버리지는 마소서. 임금의 얼굴에 웃음기가 스쳤다. -경의 말이 아름답다. 내가 경에게 하고자 했던 말이다. 아마 지금쯤 상헌의 생각도 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그리 짐작한다.
주화와 척화, 두 주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두 사람의 관계와 비슷하다. 극명하게 갈린 듯 보이는 두 주장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했다. 척화론자들이 내세운 주장이 다시 주화론자들의 논거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두 노선 모두 유교에 기반한 청을 인식하는 시선이 동일했다. 다만 원칙적인 대의를 주장할 것인지, 현실적인 방안을 잠시 취할 것인지로 갈린 것뿐이었다. 주화파가 산성 밖에서 화친을 주장할 때, 척화론자들은 산성에서 견디며 청나라에게 조선 사대부가 결코 만만한 상대만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상에 가까웠던 척화와 현실적인 방책이었던 주화는 서로를 보완하며 현실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그 둘이 결국 하나였다는 것은 청이 떠난 후에 조정의 여론이 척화의 명분론으로 회귀함을 통해 드러난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인조가 최명길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작가는 집중받지 못한 김상헌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마지막 장으로 할애하며 균형을 맞춘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관계는 헤어질 때 더 극명히 드러난다. 배웅하러 자신을 따라온 이시백에게 김상헌은 "가서 최명길에게 안부 전하시오"라 말한다. 정적(政敵)이자 동시에 정우(政友)였던 두 사람의 작별이다. 마지막까지 최명길을 생각하는 뒷모습에는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후 소설보다 더 아이러니 한 역사는 그 둘을 모두 삼양으로 부른다. 결국 그 두 길은 사실 이어져있었다.
인조가 걸어가야 했던 길은 외롭고 무거웠다. 수많은 신하가 그의 뒤를 따를 테지만 결국 그 혼자 감내해야 할 길이었다. 죽어서 사는 길을 택하자니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걸려있었다. 반면 살아서 죽자니 종묘와 사직을 모두 끌어안고 '웃으며 곡'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의 비참한 운명은 현세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후세에 그의 이름은 두고두고 어떤 선택을 내리든 입에 오르내릴 것이었다.
-일 배요!
조선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은 먼지심 속 흙냄새를 빨아들였다. 볕에 있는 흙은 향기로웠다. 흙냄새 속에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 (「남한산성」 p.355)
인조는 생(生)을 도모한다. 일 배를 하며 인조는 흙냄새를 맡는다. 흙 속에는 움트린 새싹이 돋아나려는 향이 난다. 치욕의 순간에도 민초(民草)는 돋아난다. 백성들은 봄 농사를 준비하고 새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하며 소설이 끝난다. 굴곡진 역사를 너머 저절로 봄은 오고 있었다.
인조와 달리, 소설 속 이시백은 크게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단순 명료한 면이 김훈과 자주 겹친다. 최명길과 동문수학하며 과거에 급제했지만 그는 무(武)의 길을 향한다. 말(言) 먼지로 혼탁한 세상을 걷어내며 무관의 세계로 나아간다.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최명길의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 ······.
「남한산성」 p.218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남한산성」 p.5)라고 말했던 김훈이 떠오른다. 한 마디의 대답 속에 삶이 모두 담겨있다. 이후 내뱉지 못한 명길의 말은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다만 무인으로서 삶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그가 걸었던 길은, 벼루와 먹으로 성을 쌓고 행하지 못할 말을 쏟아냈던 조선이 걸어가야 했던 길이다.
이시백의 길은 마포나루까지 나있다. 그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조정에 메인 그는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예우를 김상헌에게 다한다. 고향을 향하는 김상헌을 배웅하며 소설 속 역할을 마무리한다.
약소한 조선은 청 앞에 무참히 짓밟힌다. 그러나 패배한 조선도, 승리한 청도 모두 자연 앞에서 무상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훈이 쓴 남한산성은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연사(自然史) 소설이다. 짓밟힌 강토에도 봄에 새싹이 돋았다. 산성을 포위하던 청에게도, 갇힌 조선에게나 봄은 왔다. 소설의 마지막에 백성들이 봄농사를 시작하고 나루가 초경을 시작한다. 전쟁의 상흔과 인조의 치욕마저 봄에 덮인다. 봄이 오는 자연의 순환은 인간사(人間事) 너머에 있었다.
최근 이 소설이 한반도에 얽힌 국제 정세에 무관하지 않아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게 해설될 수도 있다. 글이 한 번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이후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소설을 정치적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작가 본연의 의도에서 벗어나거나 그 깊이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김훈도 최근 인터뷰를 통해 그런 우려를 밝힌다. 간결하고 묵직한 그의 글과 같이 김훈의 소설들은 정치적 이념에 기대지 않는다. 남한산성 속 인물들도 제 삶을 다한다. 그뿐이다. 조선이 세계 악에 짓밟혔을 뿐 인물들 그 속에는 절대적인 악도 선도 없다. 정치를 너머 그 뒤에서 숨 쉬며 항구히 역사의 흐름을 목도하는 자연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