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化粧)과 화장(火葬) 사이의 삶

[북리뷰] 화장을 읽고

by 변민욱

0. 글을 시작하며

여자인 당신의 모든 생물학적 조건들 속에 깃드는 잠과 당신이 잠드는 동안 당신의 몸속에서 작동하고 있을 허파와 심장들과 장기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속 살 핏줄 속을 흐르는 피의 온도와 당신의 체액에 젖는 살들의 질감을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당신의 살들은 속으로 만질 수 없는 풍문과도 같았습니다. 「화장」 p.29


김훈은 이 책에서 똥, 오줌 신체기관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뇌종양에 걸린 늙은 아내의 죽음과 젊은 신입사원 추은주의 생명성에 대해 말한다. 기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읽은 김훈의 책 중에서 가장 난해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소설에서 역사를 지우고, 짧게 응축시킨다면 이 소설과 같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 타자와 고통의 유물론



movie_image (2).jpg 영화 화장 中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512 )


소설 속 나의 아내는 뇌종양에 걸려 고통스러워한다. 아내를 통해 김훈은 타자와 고통이 말하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시작한다.


숨이 끝나는 순간, 아내의 몸속에 통증이 있었다 해도 이미 기진한 아내가 아픔을 느낄 수 없었고 아픔에 반응할 수 없었다면 아내의 마지막이 편안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 p.20

병은 개인에게도 개별적이고도 고유한 징후이지요. 의사가 종양을 들어낼 수는 있어도, 종양을 빚어내고 키우는 환자의 생명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화장」 p.37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에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다. 둘은 하나로 합일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병과 죽음 같은 고통의 순간, '나는 너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는 원리로 고통의 순간 나와 너는 또다시 분리된다. 흔히 말하는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라는 표현은 그 반증이다.


"어째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이 그토록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요." 그는 고통스러워한다. 그에겐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다. 하지만 그런 아내조차 '타자'다. 타자는 존재론적으로는 확실하지만 인식론적으로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그는 그녀와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고통에 다가갈 수 없다. 이 건너갈 수 없음이 바로 삶이고 생명현상이다.


뇌수는 아무런 형태감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안개나 바람 같은, 스쳐 지나가는 기류처럼 보였다. 살아 있다는 사태의 온갖 느낌을 감지하고 갈무리하는 신체기관이라고 하기에는 그곳은 꺼질 듯이 위태로웠고, 그 안에서 시간이나 말이 발생하지 않은 어둠에 잠겨있는데, 점점 흩어져서 반짝이는 종양의 불빛들은 저녁 무렵인 듯싶었다. 「화장」 p.36


너를 의심했던 김훈은 이제 나를 의심한다. 나의 뇌와 감각은 믿을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인지혁명에서 봤듯, 뇌는 우리 신체에서 감각과 인지의 핵심기관이다. 그러나 뇌조차 타자처럼 희미한 존재다. 오히려 뇌를 죽이는 종양만이 뇌에서 반짝거린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평소에도 항상 생각을 한다. 뇌가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항상 느끼며 살진 않는다. 이러한 인식을 느낌이 앞서는 순간은 고통의 순간이다. 독한 술을 마실 때 식도가 타들어가며 느껴지듯, 두통의 순간 우리는 뇌의 존재를 가장 명료하게 감각한다. 고통의 유물론이다.


종양이 뇌 속의 후각중착를 잠식하면 냄새를 맡는 신경이 교란되고 이 증세가 미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신경조직 속에서 후각과 미각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아이스크림에서 구린내가 나요."라고 아내는 울먹였다. 「화장」 p.39


그렇다면 이런 감각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일까. 김훈은 감각조차 의심한다. 미각과 후각이다. 뇌수술로 시신경이 다친 아내는 이내 후각과 미각까지 왜곡된다. "아이스크림에서 구린내가 나요." 짤막한 말이지만 끔찍하다. 인간의 존엄이 끝이 난다. 아내의 죽음으로 그의 의심은 종료된다. 무엇이 남아있을까. 타자의 고통도, 타자 그 자체도 나의 감각마저도 의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은 오로지 나의 고통뿐이다. 고통만이 그에게는 말하여질 수 있는 진리였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화장」 p.25


아내가 고통스러워하고, 그조차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타자를 욕망한다. 요구로 욕구를 채우지 못해 생긴 욕망이다. 욕망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다.





2. 요구와 욕망 사이에서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3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널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은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기일 것입니다. 아니면 눈보라나 저녁놀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생일테지요 「화장」 p.26


욕구와 욕망은 다르다. 욕구는 식욕, 성욕처럼 가장 일차원적인 충동이다. 만족을 추구해 그걸 충족시켜 줄 대상을 찾는다. 이에 반해 요구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욕구의 표현이다. 요구는 사회적 테두리 내에서만 나타난다. 욕구는 요구를 통해서 충족돼야 하므로 그 충족은 늘 불확실하다. 욕구와 요구 그 사이에 메워질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해서 욕망이 탄생한다.


조직 내의 모든 신생물이 종양이다. 종양은 어떤 신체조직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종양이 발생하게 되는 환경과 조건은 알 수 없다. 종양은 생명 속에서만 발생하는 또 다른 생명이다. 죽은 조직 안에서 종양은 발생하지 않는다. 종양의 발생과 팽창은 생명현상이다. 생명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하고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이 현상은 생명 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종양과 생명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화장」 p.15


추은주는 그에게 종양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그의 아내에 부재한 여성성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어떤 사람에게도 생길 수 있고 환경과 조건은 알 수 없는 욕망, 그에게 추은주는 그런 욕망의 대상이다. 이는 생명현상이다. 살아있는 한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단순한 연애의 감정이 아니다. 그는 추은주를 "지층 밑에 묻혀버린 고대 국가"라고 표현한다. '고대국가'는 역사소설을 쓰는 김훈에게도, 우리에게도 존재론적으로는 확실하지만 인식론적으론는 모호하다. 바로 타자성의 은유다. 김훈은 남성에게 가장 아득한 타자인 여성을 대상화한다. 그는 "수 많은 질들의 개별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녀를 그렇게 실제같이 욕망하지만 타자와 나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없다.


movie_image.jpg 영화 화장 中 추은주 (출처: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512)


엎드린 추인주의 등과 엉덩이는 완연한 몸이었다. 세상 속으로 밀치고 나오는 듯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몸은 스스로 자족해보였다. 추은주가 결혼하던 날, 만경강 개펄 가의 여관방에서 보낸 밤이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서 생각을 떨쳐냈다. 생각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영정 속에서 아내는 엷게 웃고 있었다. 「화장」 p.32


그리고 그 욕망은 라캉의 욕망이다. 라캉의 욕망은 생물학적 충족욕구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한느 욕망이다. 다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욕망'이다. 남자에게는 남근이다. 그가 '전립선염'에 걸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남성성은 붕괴되고 있었다. 그래서 요구로 나아가지 못하고 욕망에 그친다. 또한 사회의 중역으로 활동하는 그에게는 도의적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그러한 욕구는 욕망으로만 남아 용납되지 못하고 꺾인다. 그래서 욕망의 환유가 그의 무의식을 장악한다.


당신께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한다고. 시급히 자백하지 않으면 아내와 저와 그리고 이 병원과 울트라 마린블루의 화장품과 이미지들이 모두 일시에 증발해버리고 말 것 같은 조바심으로 저는 발을 구르고 싶었습니다. 「화장」 p.45


그녀는 회사를 다니는 5년 동안 시집을 갔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를 보면서 그는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는 고백이 아닌 자백이다. 자신의 세계가 모두 증발할 것 같이 욕망은 실제이며 강렬했다.


아내의 몸이 소각되는 것을 보며 그의 욕망도 소멸했다. 추은주는 부인의 화장이 끝남과 동시에 회사를 떠난다. 더 이상 추은주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사무적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근무성적을 물어보고 퇴직금을 결산한다. 한때 그렇게 강렬했던 욕망의 대상마저도 하나의 타자에 불과한 대상이 된다.


뼛조각들은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를 알아볼 수 없이 흩어져있었다. 대퇴부인지 두개골인지 알 수 없이 흩뿔진 조각들이었다. 희고, 가벼워 보였다. 아내의 뇌수 속에서 반짝이던 종양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화장」 p.47


결국 한 줌의 재로 화장이 화장된다. 고통도 원한도 없다. "희고, 가벼워 보였다." 잔인하리만치 그는 끝까지 타자와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고통이 없어지면서 생명도 함께 긑난다. 죽음은 자신의 고통마저 타자화 되는 시점이다. 그날 밤, 그는 모처럼 깊이 잠이 든다. "모든 의식이 허물어져 내리고 증발해 버리는 , 깊고 깊은 잠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잠이다.



3. 글을 마치며



이 소설 어디에도 연애소설과 같은 부분은 없다. 해부학에 가까울 정도로 객관적인 묘사만이 존재한다.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통념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가능하다. 김훈은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소설 속 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의 욕망은 비윤리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나에게는 개인의 솔직한 감정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도덕적 의무감으로 거짓된 감정을 말하는 것이 김훈의 철학 속에서는 비윤리적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소설 속 그를 개인에 국한하지 않으면, 추은주를 사랑한 남편이 아니라 ‘죽음’을 곁에 두고 ‘생명’을 사랑한 한 인간일 뿐이다.


이 소설을 읽으니 김훈이 왜 역사소설을 적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역사는 갇혀있다. 시작과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시공간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반면 현대는 열려있으므로 그 열려있음으로 인하여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여러 담론들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그는 과거로 향했다. 역사에서 특정한 시점을 선택해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기가 더 용이했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진상을 파헤치거나, 미래를 예견하지 않는다. 그에게 '역사'란 과거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도구이다.


형식이 역사라면, 내용은 세계가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화장'의 끝에서, 그는 고통받는 인간의 범위를 확장한다. 고통은 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내가 소각되는 것을 기다며 보는 TV에서 미군의 이라크 폭격에 관한 보도가 나온다. 그 반대편에서는 이라크 군인들이 미군에게 이라크 군인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심문한다. 끊임없이 인간은 서로 고통을 주고받고 있다. 고통의 절대성만이 그가 회의주의에 빠지기 직전 찾아낸 유일한 진리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이다." 그의 소설은 좌우 어느 이념에도 기대지 못하고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선 인간의 통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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