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문득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
지난주 잠시 이곳을 떠나 바람 쐬러 바깥에 다녀왔습니다. 고마운 분들, 그래서 그리웠던 많은 분들을 뵙고 돌아왔습니다. 제 추억 사진첩 속의 그 모습 그래도 남아계신 분들도 있었고 변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디다스 운동복과 삼선 슬리퍼가 멋들어진 정장으로, 코트가 군복으로, 군복이 패딩으로, 대학 새내기의 어설펐던 화장이 자연스레 변했듯 모두 조금씩은 변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 또한 변해 있었습니다. 변해가는 것들을 보면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특히 오랜만에 부모님을 뵐 때 더욱 그렇습니다. 언제쯤 저는 제 사진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몇 장 앗아가고야 마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멋들어지게 인화시켜준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로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이 내딛는 발걸음이 빠를 뿐 지혜가 이를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한참 또 걸리겠지요.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아이유, 무릎 中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 하나를 우선 띄웁니다. 영화 리뷰를 기대하고 들어오셨을 분들은 실망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노래를 배경으로 조금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힘을 쭉 빼고 말이죠. 아마 대부분의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을 만나기 이전 이야기일 듯합니다. 오래전 열아홉에서 스무 살을 갓 넘기던 전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인생을 찾기 힘들겠지만 그전부터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고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꿈은 저기 멀리서 제게 오라 손짓하는데 이상하게 올라갈수록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제 글의 풍부한 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글의 깊이와 폭은 삶의 그것과 비례하며 그 이상 나올 수 없다 믿습니다. 글은 제 믿음을 투명하게 반사시키는 거울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폭의 그림을 담으면 어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지 않으면서도 절대로 그 이상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적습니다. 제 흉터를 자랑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S대 입시에서 면접까지 갔다가 낙방하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요즘도 그 면접을 보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지금은, 아니 이제야 저는 교수님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듯한데 꿈속 저는 답답한 벙어리입니다. 입조차 떼지 못하는 꿈이 반복되며 여운은 꿈이 끝나도 계속되는 무한입니다. 아직도 미련한 제게는 미련이 남아있나 봅니다. 이 미련이라는 게 모래사장에서 손을 털고 씻기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남아있는 모레 알갱이 같습니다. 그 모레 알갱이가 침대까지 쫓아옵니다. 서걱대며 제 꿈을 방해합니다. 스무 살, 그 시절에는 더 생생하고 처절하게 꿈을 꾸었습니다. 불면증은 제 몸의 당연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친척집에 놀러 가 아파트 난간에 서봤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제 심리에 놀랐습니다. 고소공포증은 대게 잃을 무언가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잃을 게 없는 자는 높은 곳에서 아찔함을 느끼기보다는 쾌감을 느낍니다. 그때 저는 자조(自嘲)라는 단어를 체득했습니다. 남은 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멀리서까지 제게 위로를 가장한 연민(憐憫)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연민의 눈동자는 가끔 시퍼런 칼날보다 사람을 더 후비곤 합니다. '쟤는 이제 어떡하니...'를 듣다가 어쩌긴 '살아남아야겠다.'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곧바로 저는 무작정 통장 하나 들고 남쪽 나라를 떠나 서울 드림을 꿈꾸며 출가이자 가출을 했습니다. 출세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당찬 다짐과 함께요.
대게 꿈이란 현실과 부딪히면 그 특유의 연약함으로 산산조각 나곤 합니다. 당찬 포부를 밝힌 하루 뒤에 정확히 저는 이모네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곧 다행히 과외가 잡혀 과외까지 병행하며 힘겹게 생존비를 벌었습니다. 한 편 힘겨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스무 살의 저는 미친 듯이 이력서라는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보통 한 두 개 쓰고 실패하면 말아야 하는데 실패에 중독돼있던 저는 자학하며 수십 개를 써 내려갔습니다. 자기 계발 책을 보면 보통 이쯤이면 성공하던데. 저는 모조리 떨어졌습니다. 돌아보니 이때를 계기로 이후에는 이런 장르 이야기를 잘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2016 제주 의전팀 PM
국제 전기자동차 엑스포 의전통역
제3차 한-태평양 도서국 고위관리회의 Korea-Pacific Islands Senior Officials' Meeting 의전통역
사단법인 글로벌호프 Global Hope 블로그 기자단
아모레퍼시픽 美에디터
광주유니버시아드 수송팀 인턴
아시안프렌즈(Asian Friends) SNS 서포터스
Harvard World Model United Nations에서 Volunteer Social Worker(으)로 근무했음
굵직한 것만 추린 스무 살 제 기록입니다. 화려해 보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저 정도를 해냈으니까요. 덕분에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걱정 없이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분한 화려함에는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건드리면 안 되었던 것에 손을 뻗고야 맙니다. 바로 '열등감'이란 연료입니다. 처음 써보면 이 연료 대단합니다. 효율성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태우면 됩니다. 나를 태워 나를 피우는 꽃이지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듯 사람은 이 연료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환경오염이 그대로 내게 적용됩니다. 스스로가 오염되갑니다. 더 무서운 건 아시다시피 특이점을 지나치면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꽃은 시들고 달리던 관성만 남습니다.
이때부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속도에 탐닉해 이 무모한 질주를 계속해 나가는 길이 한쪽이요. 이쯤에서 멈추는 길이 또 다른 쪽입니다. 창 밖 미세먼지를 보시면 사람들이 어딜 향해 가는지는 짐작하실 듯합니다. 어느새 마침표는 고사하고 쉼표 찍을 권리조차 박탈당한 체 삶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흔히 돈을 발(發)로 표현하곤 합니다. 만원 단위를 총알에 빗대어 발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 시기 참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굵직한 일이 하나 끝날 때마다 샀던 옷들이 다음 일에서, 면접에서 어린 나이를 은폐하는 전투복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풀이하듯 썼던 돈은 과거와 사회에 대한 불안한 총성이었음을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지금은 독이 묻은 화살을 빼내는 시간입니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고 무슨 독이 묻었고 얼마나 깊이 박혔나 따지기 전에 먼저 빼내야 하는 것입니다. 절에 왔다 생각 말고 부처를 의식하지도 말고 옆의 일에 마음 쓰지도 마십시오. 눕고 싶으면 눕고 먹고 싶으면 가만히 앉았고 그냥 자기를 돌보며 한량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지내십시오. 맹자는 늘 천지가 지금이라 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듯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앞일도 걱정 말고, 지난 일도 떠올리지 마십시오. 폭식이 육체를 해치듯 너무 많은 생각도 정신을 해칩니다. 상처나 나으면 살아갈 용기도 생기니 그저 편히 지내며 세상을 버리려 했던 마음을 돌려 눌을 뜨십시오."
전경린, 「황진이」, 2장, 흐르는 물은 거스르지 않고 中
거의 절박하게 외우다시피 한 문장을 꺼내 놓습니다. 저 스무 살 기억 전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분명 '성공'이란 면에서는 지금껏 가장 근접했던 때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카루스의 날개는 그 성공을 자신하는 순간 떨어지고 맙니다. 떨어질 곳은 다시 미궁 속입니다. 떨어지며 저는 잠시라도 삶이 생동했던 순간을 바라봅니다. 무더웠던 여름 더운 줄도 모르고 체온을 높였던 짧은 사랑의 순간입니다. 종종 사랑에 대해 왜 그리 자주 거의 신성시하느냐고 묻곤 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안타깝지만 감정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 그때뿐이라 그렇습니다. 또 한편에는 만났던 인연의 붉은 실에 느낀 고마움의 순간들이 지나갑니다. 그 사이를 무심코 지나쳤던 충고들이 뼈아프게 지나갑니다. 이러한 순간순간 생긴 조각을 주워 모아 글을 쓰는 듯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래선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미련 없이 사회를 떠나왔습니다. 이 과정 어딘가에서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 만났습니다. 그러다 책을 부여잡고 글을 써 내려가다 또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인연의 끈이 엮지 않았다면 저는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줍게 밝히지만 저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팬입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제 자정능력이 상실하는 데까지 이르진 않았구나 안도했습니다. 조금 나아진 몸으로 이제 다시 사회로 나가려 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世界)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世界)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神)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神)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xas)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투쟁적으로만 보였던 저 문구의 새를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알을 깨며 나오는 새는 매번 새어 들어오는 빛이 강해질수록 불안했을 겁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면서 이를 핑계 삼아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십시오"를 부탁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닉네임이 아닌 본명을 고집스레 쓰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공유합니다. 20대 저 물결 속에서 체감한 진리는 '기회를 부르는 건 재능일지라도 그곳에서 살아남는 건 실력'이었습니다. 급속도로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사는 개인의 삶은 투쟁의 형식을 포기하는 순간 자기합리화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약속드릴 수 있는 유일한 다짐은 사회에서도, 여기에서도 어디에서든 살아 남아 글을 쓰겠다는 것입니다. 생존 방식은 무척이나 달라지겠지만요.
무기여 잘 있거라 나직이 읊조리는 지금. 상처를 드러내며 사회로 나갑니다. 페르소나는 이렇게 벗는 것이겠지요. 가면을 벗은 제 글은 아직 떡잎만 겨우 틔워낸 듯합니다. 그래도 쉬다갈 그늘이 있는지 감사하게도 지나치며 이웃분들이 격려의 말을 해주고 가시곤 합니다. 얼굴 뵈고 감사인사를 드리면 참 좋을 텐데. 몇몇 분들은 얼굴도 잘 모릅니다. 앞으로도 좀 더 머무르실 수 있도록 잘 커나가겠습니다. 이것이 사회로 다시 나가며 제출하는 사직서이자 출사표입니다. 이번 설에 예행연습 삼는 셈치더라도 여름까지 책을 어설프게라도 출판하리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날 바로 좋은 꿈을 꿔서 그런지 몰라도 올해 상반기 내로 어떻게든 글을 엮어서 책을 낳아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회에서의 마지막 글도 비록 여기가 아니더라도. 당신 앞에서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바람을 담아 적습니다. 부디 이곳을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