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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y Byun May 15. 2021

남미 효과

세 번째 이야기. Salento? Coffee!

살렌토! 이름만으로 설레 이는 그 곳. 호세아저씨와 마리아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 가족들의 애정을 듬뿍 받고 정이 흠뻑 들었던 나는.. 참으로도 옮기기 힘든 발걸음을 힘겹게 움직였다. 나는 떠나야만 되는 여행자였기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아쉬운 만남을 기약하고 메데진에서 살렌토로 이동했다.


아직도 호세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이 내게 보여준 따스함과 그로인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사실.. 떠나오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불행 한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급급했었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막연히 있었을 뿐, 무엇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떠나오고 난 뒤에야 조금은 깨달았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좋은 날씨조차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당연하다 여겨 왔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들이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떠나온 다음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버스는 마을이 보이고도 조금 더 달리고 나서야, 나는 살렌토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이 작은 마을을 정말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살렌토로 오는 버스 안에 와이파이가 터졌다는 사실과 마음이 따스해지는 사람들을 (또!) 만났고, 도시 전체에 풍기는 커피향이 그랬고, 아기자기한 작은 도시의 모습이 그랬으며, 무엇보다도..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빨래방"이 그랬다! 

지금봐도 나를 설레이게 하는 알록달록 Launderia의 간판들

남미를 여행 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점 중에 하나가 빨래를 몰아서 해야 했었는데 빨래를 맡기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근데 살렌토는 거의 한 집 건너 한집이 바로 이 "Laundry shop"이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빨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사실.. 내가 살렌토에 머물고자 한 이유는 간단했다.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였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아니 절박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나는 혼자 웃었고, 심각해졌다가 우울해지고 또 그러다가 마구마구 행복해졌다가-기복이 말이 아니었다. 

고이고이 접어놓았던 마음을 풀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에는 늘 문제가 따르는 법. 


그렇다. 준비성이 단 일도 없던 나는 숙소 예약을 전~혀 하고 오지 않았고, 지금 이곳은 콜롬비아의 최대 명절인 "Semena Santa"기간이었다. 


Semena Santa는 부활절기간을 뜻하는데 아마 남미에서 가장 큰 명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살렌토는 콜롬비아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휴양지 중 하나였는데 그 말인 즉, 이 곳에 과연 빈 숙소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아니 나의 두 발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30키로가 넘는 가방의 무게도 자칫하면 길바닥에서 잘 수도 있겠다는 나의 두려움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3군데나 넘는 숙소를 들락날락했지만 대답은 모두 "No Room"이었다.  


하.. 정말 이대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되나.. 라는 걱정과 동시에 살렌토 라면 왠지 노숙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또한 피어났다. 난 아마 이때부터 살렌토를 가슴 깊이 사랑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유 없는 긍정 파워로 걷고 또 걸었을 무렵, 나는 한 숙소 앞에 멈추었다. 나는 한 눈에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숙소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묵고 말리라!


사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일일이 다 기억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나는 준비성이 바닥인 사람이라서 숙소에 대한 정보는 일도 찾아보지 않고 여행을 떠나온 무대포 여행자였고, 더군다나 나중에는 어떤 계기로 숙소의 대부분을 에어비앤비라던지 아니면 걷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무작정 들어가거나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남미의 몇 안 되는 숙소들 중에 한 곳 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외관이, 특히 벽아 심플하지만 남미 특유 느낌의 부드러운 갈색이었고, 투박한 나무 기둥도 좋았고, 무엇보다 이 곳은 커피 향이 가득했다. 물론 살렌토 마을 자체가 커피 향이 아낌없이 풍기는 마을이기도 하였지만, 이곳은 그곳 특유의 분위기 덕인지 커피 향이 더 짙게 풍겨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외관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The Plantation house, 내가 묵은 별채는 뒤로 보이는 이층 건물!


일단 리셉션에 들어가 방이 있나 확인해 보니, 이곳은 나와 인연이 있을 곳이었나보다. 다행히도 방이 있었고, 2인 실이었는데, 다른 게스트가 이 방을 예약 하기 전까지는 이 2인실을 나 혼자 써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로또를 맞았다한들 오늘 내 이 기분만큼 날아가진 못했을 거다. 나는 연신 땡큐! 를 외치며 살렌토에 온 것은 내 남미 여행의 신의 한수였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며 안내해 준 방으로 두둥실 날아가 듯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대충 풀고 천천히 숙소를 둘러보았다. 내가 묵은 방은 별채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살렌토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거기다가 해먹이 비치되어 있어서 아침이며 저녁이며 그곳에서 노을을 감상하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사치까지 부릴 수 있었다. 1층에는 공동 식당이 있었고 그곳에서 음식을 해먹거나 잡담을 나눌 수 있도록 커다란 식탁과 아무렇게나 놓인 다양한 모양의 의자를 두었는데 그것 또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완벽한 숙소에도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돌 침대에서 자는 착각이 들게 했던 딱딱한 매트리스의 감촉이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는 나조차.. 한밤중에 몇 번씩이나 깨기가 일수 였다. 하지만, 이것도 밤공기의 차가운 고독을 느끼게 해 주는 살렌토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이 마을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사랑은 이토록 위험하지만, 위대한 것인가 보다. 단점 또한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걸 보니..

완벽한 숙소도 찾았으니 이제 남은 일은 마을을 둘러보는 것. 


나는 밀린 빨래도 맡길 겸, 서둘러 빨래가 필요한 옷가지들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이 숙소는 메인 센터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조금 많이 걸어야 했는데 워낙에 걷기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나는 이 사소한 불편함마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세탁소(Laundry shop)에 도착했는데 이게 왠걸.. CLOSED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보았다.


음... 이상하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가게 마다 쉬는 날은 다를 수 있으니.. 하며 다른 세탁소를 찾아 나섰는데 그 다음 세탁소도, 그 다음, 또 그 다음 세탁소도 닫은 것이 아닌가.. 슬슬 열이 받아 오를 찰라, 지나가는 착한 언니가 지금은 Semena Santa기간이라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고 살짝 귀띔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 기껏 들고 온 빨랫감들을 다시 숙소로 가져다 놓기 위해 나는 왔던 길을 낑낑대며 돌아갔다. 


한바탕 허탕을 치고 다시 메인 센터로 나가려는데, 아주 귀여운 친구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냐옹아, 안녕? 여기 살아?"


흰색과 검은색이 아주 적절히 섞인 인간인 내가 봤을 때도(?) 아주 예쁜 고양이였다. 냐옹이는 아주 새침하게 하지만 적당한 애교로 내 앞을 알짱거렸다. 나는 이 귀여운 생명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옆에 앉아 쓰다듬어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내 손길을 두려워하거나 어색해 하지 않았다. 콜롬비아는 고양이조차 이렇게나 친절하고 친근하구나.. 다시 한번 콜롬비아라는 나라에 감동을 하고 나는 다시 만나자는 의미 없는(?) 약속을 냐옹이에게 건네고 메인 센터로 향했다.

안녕, 냐옹아! :)

역시나.. 홀리데이 기간은 기간인 듯 했다. 메인 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내가 블로그에서 어렴풋이 봤을 때는 남미 여행 하면서 다른 한국 사람들도 꽤 많이들 만난다고 하는데, 남미에 도착한 이후로 그 뭐시냐.. 지나가는 청년 이후로는 난 한국 사람들은 일절 보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워낙 남미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상태였고, 또 사실 나는 한국말로 수다도 좀 떨고 싶었다. (비록 그 수다를 고양이에게 떨 예정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많은 사람들 조차 대부분이 콜롬비아 사람들 이거나, 아니면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었다.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뭐 언젠가는 마주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는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커피 수확량 중에 거의 4/1정도의 커피가 이 곳 살렌토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블로그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고 작은 마을에 Handcraft shops과 무수히 많은 커피숍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살렌토에 머무는 동안 절대 똑같은 커피 집은 가지 않고 매일 다른 곳들을 다 들려서 꼭 살렌토의 모든 커피 샵의 커피를 맛보고 가리라 라는 장대한(?)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절대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지 않았다. 왜냐, 여행할 때 세우는 계획은 대부분 뜻대로 될 확률이 거의 희박 했기 때문에. 특히나 이 남미에서는 더욱더). 


이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이유는..

너무나 마음에 쏙 드는 커피숍을 단 하루 만에 그것도 첫 날 찾았기 때문이었다. 커피 맛도 정말 일품이지만, 무엇보다도 음식의 질 또한 단연 최고였다. 나는 이 커피숍 겸 레스토랑에 반해 살렌토에 묵는 10일 내내,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늘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어떤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내내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책을 가져와 읽기도 했고, 가끔은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내내 즐거운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 따스한 햇살이 좋았고, 사람들의 미소가 좋았다. 가끔은 커피 향과 섞여 은은히 나는 세탁소의 냄새도 매력 있었으며, 숙소에 돌아와 느끼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도 좋았다.

내 마음에 쏘옥 들었던 살렌토의 카페
커피를 내리기 전, 미리 원두를 가지고와 향을 맡을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눈앞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중
지금도 느껴지는 잔잔한 살렌토의 커피향
정~말 맛있있던 커피를 갈아 넣은 스테이크
샐러드도 냠냠

살렌토에서는 정말 특별한 어떤 걸 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여행이라고 하면, 꼭 특별한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어떤 것을 보아야하고, 눈에 담아야 할 것만 같았는데 살렌토에서는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을, 이 감정을 그냥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맞는 햇살도, 코끝으로 미친 듯이 풍기는 내가 사랑하는 커피 향도, 길고양이의 친근함도, 돌 침대의 딱딱함도, 그리고 해먹에서 맞는 밤공기의 서글픔도.


살렌토에서 머무른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나는 슬슬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들 다 한다는 살렌토 투어 한 두가지 정도는 해야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살렌토는 역시나 커피 투어가 유명했고, 그 다음으로는 코코팜 투어 (코코라벨리 트렉킹)가 유명하다고 나와 있었다. 커피 투어는 두말 할 것 없이 그 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 이유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바로 커피 투어로 유명한 곳 중에 하나였는데 (역시나 커피 향이 예사롭지 않았는데..)숙소에 3일 이상 묵는 투숙객들에게는 무료로 투어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잘 고른 숙소, 열 호텔 안 부럽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으쓱댔다. 


콜롬비아의 커피 투어는 일단 그룹 자체에 많은 사람들을 채워 넣지 않았다. 내가 투어를 했을 때는 고작 10명이 채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투어는 커피나무가 심어져 있는 커피 농장을 걷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커피 열매들
우리의 투어에 동참했던 귀요미들
살렌토의 전경
오잉... 어딘가 낯있다 했더니... 내가 묵었던 숙소였다! 하하하하 역시 난 행운아였어!
수확한 커피 열매들
무료로 나눠주었던 바나나 (여기저기 널린 게 바나나였다...헷)
각기 다른 종류의 커피 열매들
로스팅하기 전의 커피

"Tim"아저씨는 호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커피로 유명한 남미의 몇몇 곳을 여행하시다가 이곳 살렌토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셨고 그러다 아저씨도 모르게 살렌토와 사랑에 빠져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나의 미래를 보게 된 듯하여... 하하하하 팀 아저씨가 호주에서 왔다고 하셔서 그런지 나는 아저씨에게 더 정감이 갔다. 


아저씨에게 나 또한 호주에서 살고 있고 지금 남미 여행을 하고 있는데, 지금 살렌토의 이 위험한 매력에 미친 듯이 빠져 들고 있다고 했더니 "Be very careful!"이라며 나에게 장난 어린 경고(?)도 해 주셨다. 


커피 농장을 걸으며 아저씨는 살렌토가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의 거의 30% 넘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좋은 커피를 고르는 법, 커피나무의 나이를 추측하는 법 등 커피에 관한 지식을 공유해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3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오잉?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아닌가! 


그렇다. 이 커피 투어의 로스팅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내가 묵고 있는 별채의 1층 이었다. 내가 맡은 예사롭지 않은 커피 향은, 바로 커피 로스팅을 이 곳에서 하기 때문에 더 구수하게 향이 퍼졌던 거였다. 나는 직접 커피 로스팅을 할 영광(?)을 거머쥐게 되었고, 내가 로스팅한 커피를 직접 갈아서 바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살렌토는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두 시간 조금 넘지 않는 커피 투어를 마치고 나는 내가 내린 커피를 들고 바로 이층으로 올라와 해먹에 걸터앉았다.

껍질을 까는 중
껍질과 원두를 분리 하는 중
아직도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행해지는 살렌토의 로스팅과정
달궈진 팬에 껍질을 제거한 원두를 투하!
하.... 커피향.... 너무 좋다ㅠㅠ
20%정도 로스팅이 되었을 때
70%정도 로스팅
90%정도의 로스팅
쨔잔! 로스팅이 완성되었습니당
그라운딩 하는 중..
뜨거운물을 졸졸졸 붓고...
향긋한 커피향....
잊지 못할 살렌토의 콜롬비아 커피

5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 해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지고 있었다. 주황색과 노랑빛을 오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황홀한 석양과, 너무 기분 좋은 커피 향, 알맞은 바람, 적당한 빛, 그리고 나 혼자 맞이하는 눈물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순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이라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 더 자연이 내게 주는 조건없는 이 선물을, 이 사치를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남미로 여행을 떠난 올해는 내가 호주 나이로 딱 30살이 되는 해였다. 나는 20살 때부터 쭉 호주에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의 친구들이 모두 우리는 30대라고 구박을 할 때에도 꿋꿋이 아직 나는 20대라며 오기 아닌 오기를 부렸었는데 이젠 정말 만 나이조차 30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30살.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숫자를 다시금 곱씹어봤다.


20살의 나는, 30살의 나는 굉장히 뭔가 다른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뭔가 더 단단하고, 대단한 것을 이뤘으며, 남다른 사랑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20대에 두려워하던 것들도 30대가 되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도 완전히 독립을 할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완벽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이번 년도가, 완벽한 30대가 되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정말로 30살이 되어버린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고, 작은 일에 상처받고 있으며, 사랑에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어리석은 생각들로 시간을 낭비할 때도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않고 흘려보내 후회도 하고 있으며,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가 라며 사색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아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곳, 살렌토에 있자니, 이 부족한 나도, 한심한 나도, 소심한 나도, 다 괜찮았다. 그냥 이 그대로의 내가 좋았다. 아니, 실로 오랜만에 나를 천천히 마주할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노력했던 나를, 혼란스러워 했지만 정답을 찾아가려고 했던 나를, 한심 했지만 어리석진 않았던 나를, 소심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나를.


이 모든 모습도 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늘 무심히 지나쳐 보내야 했던 사실을 나는 오늘에야 다시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니 보였다. 이 모든 고민 속에 내가 진짜로 찾고자 했던 건 그냥 행복한 나 자신을 보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유명한 탤런트가 되길 바라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나를 연기 학원에 데려가 주셨고, 나는 사실 연기하는 걸 퍽이나 좋아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나는 그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잘하고 있음에도 늘 나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한번도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으셨고 늘 잘하고 있다고 말해 줬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내가 예쁘지 않아서 오디션에 뽑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나의 성적은 늘 애매하게 나를 평가의 기준대에 올려 놓았다. 고등학교의 진로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애매한 나의 성적은 나를 용두사미의 기로에 놓이게 했고, 언니들의 인문계 진학의 역사에(?)따라 나 또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문계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나를 소위 말하는 "깔아주는 학생" 즉 뱀의 머리가 아닌 용의 꼬리로 만들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특별할 것 없는 나였지만, 단 하나. 그나마 내가 나를 달리 보는 건 나는 딱히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호주로 떠나야겠다 고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오디션에 합격하지 않은 것에, 인문계에서 소위 "깔아주는 학생"이었다는 것에, 그리고 내가 포기 할 것이 없는, 소위 말해 가진 것이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가진 것, 누린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다 버리고 훌훌 떠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그때와 똑같은 기분이,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비록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볼 일 없는 나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늘 나에게, 내 인생에서만큼은 별 볼일이 있는 사람 이어야한다고. ☺ 

아침마다 백억짜리 뷰와 진한 커피를 향을 안겨주었던 나의 best of best숙소!


코코팜 투어를 가려면 아침 일찍부터 Jeep car를 타고 출발해야 된다는 블로그의 충고에 따라 나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했다지만, 커피는 게으른 나의 발을 춤추게 했다. 


살렌토에 있는 동안에는 조금 귀찮아도 모닝커피만큼은 꼭 아주 전통적인 방식대로 내려 마시겠다고 나 자신에게 약속을 한 터라 30년 평생 아침 형 인간이기를 부정했던 나였지만, 살렌토 에서만큼은 아침 형 인간이 되기를 자처했다. 이 힘든 "아침에 눈 뜨기"도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힘듦을 배로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마치 우리가 늘 사표를 던지길 꿈꾸면서도 월급의 달콤함에 속아 다시금 직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모습이랄까.


어쨌든, 모닝커피까지 클리어한 나는 블로그에서 본 정보를 대충 캡쳐를 한 다음 서둘러 블로그에서 말한 마을 센터 옆에 있다는 Jeep Car 픽업 장소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왜 내 인생은 대체 왜 쉽게 풀리는 걸 허락하지 않는 걸까. 블로그에서 나와 있던 그 장소에 도착하니 Semena Santa기간이라서 픽업 기간이 바뀌었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아주.. 복잡한 지도와 함께.


고백하지만, 나는 길치 중의 길치였지만, 또한 지도를 읽을 줄 모르는 아주 뇌가 예쁜 여자 중의 한 명이었다. 지도를 보면 왠지 더 길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아예 지도 보기를 포기하고 살았는데.. 오늘같은 일이 있을 줄이야.. 나는 어리석은 나를 원망할 새도 없이 Semena Santa기간에는 단 두대만이 운행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9시에 출발하는 Jeep Car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9시까지는 고작 30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고 길치 인 내가.. 과연 30분 안에 바뀐 픽업 장소를 찾는다는 보장 또한 없었다.


역시나.. 돌고, 돌고 또 돈 나는 아주 내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왜 그 길이 그 길 같고.. 마치 나는 지도에서는 나와 있지도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거의 포기를 하고 있을 무렵 만난 나의 구세주가 "Amit"이었다.


"너.. 괜찮니? 뭐 잃어버렸어?"

"길...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친절한 Amit은 내가 어디로 갈 건지 물어보고는 이내 우리가 같은 곳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아밋은 3년이 넘는 군대 생활을 마치고 1년 정도 남미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지도를 들고도 길을 헤 메고 있었다는 내 모습에 Amit은 적잖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는 15분안에 Jeep Car 픽업 장소를 찾아야 했기에 바삐 움직였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0분 만에 바뀐 픽업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길을 빨리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비밀.

드디어 찾은 젠장할 지프카

지프차를 타고 20분을 달렸을까.. 드넓은 초원 위에 뻣뻣이 서있는 길고 가는 야자수 나무들이 보이는 근사한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내리자마자 여러 투어 회사에서의 호객 행위가 시작되었는데 코코라 벨리 산은 말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과, 트랙킹으로 올라가는 방법 등이 있었다. 나는 사실 말도 타고 싶었는데 아밋이 걸어올라 갈 거라는 말에 왠지 길 찾는 것도 도와준 그를 혼자 걸어가게 하기에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지도를 받아 들고는(읽지도 못하는 지도는 왜 자꾸 줘..)올라가는 데 2시간 내려오는데 또 2시간, 총 합이 4시간정도가 걸릴 거라는 Amit의 얘기에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지 않았던 코코아 벨리산은 걸어가기에 꽤나 운치 있는 곳이었다. 가는 곳곳이 예쁜 액자가 걸려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 였으니.

삐쭉 솓아난 코코팜 트리들

한참을 걷다보니 아밋이 내게 물었다.


"혹시, 혼자 여행하는 거야?"

"응. 너는?"

"나도. 근데 대단하다. 여자 혼자 여행이라니. 얼마나?"

"지금은 6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연장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너도 혼자 여행 중이라면서 내가 뭐가 대단해? 우린 같은 처진데. 하하하."

"아 맞네. 미안! 이거 남녀차별 발언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도 군대에 갈 만큼 남녀평등을 중시한다고!."


아밋과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다 보니 우리는 어느 덧 지도에서 보이는 첫번째 뷰 포인트에 도착한 듯했다. 그곳에서 조금 앉아 쉬기로 한 우리는 말없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기분 좋은 적당한 바람과, 내리쬐는 조금은 과분한 햇볕조차 감사한 순간이었다. 


"여행은 왜 하는거야?" 그는 굉장히 궁금한 얼굴을 하며 내게 물었다.


"음.. 그러게.. 내가 여행을 왜 할까.. 그냥.. 떠나고 싶었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 엄청 지쳐있었다고 해야되나.. 뭔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지금. 이런 이유들 때문에. 조금 뭔가 복잡한 여자같아 보이지?"


"응. 아주 많이."


장난끼가 아주 많았던 아밋은 너는 굉장히 복잡한 사람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내 이야기에 경청해 주었고 또 공감이 들때에는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곧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장난끼 가득했던 아밋


"근데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사는 이스라엘도, 니가 살고 있는 호주도, 혹은 니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며 살고 있고, 지나간 과거에 한두가지 정도는 후회를 하며 살잖아. 중요한 건 혼란스러운 지금이지. 왜 혼란스러운데?“


아밋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이유를 모르겠어.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근데 이게 과연 행복한 걸까, 나는 행복한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냥 살기위해 살아간다는 느낌..?"


"살아가기 위해 살아간다라.. 근데 그게 정답아닐까? 인생이 꼭 행복해야만 되는거야? 늘 특별해야만 되는거구?"


"그건 아니지만.. 그냥.. 모르겠어. 가끔은 "


"이봐, 동양인 아가씨. 잘 생각해 보라고. 인생은 늘 똑같을 수 있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다른 일분 일초를 살고 있는 거라고. 늘 먹는 아침조차 매일 매일 메뉴가 다르듯이, 매일 올라타는 버스의 기사님이 늘 다르듯이, 모두가 똑같은 하루는 없다고 생각해. 내가 군대 생활을 했을때 우리는 늘 반복적인 일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보냈거든. 근데 어느 날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은 날이 있고, 또 어떤날은 반복되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넌덜머리가 날 때도 있더라고. 심지어 같은 날들의 연속이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거야. 그 선택은 니가, 우리만이 할 수 있는거고. 본인의 선택에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봐도 좋아.“

 

아밋은 마치 나의 오랜 친구가 된 것 마냥 나의 고민에 진지한 답변들을 늘어놓아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수다를 떨며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인 "Acami"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허기가 지긴 시작한 나는 "Amit..배 안고파?"하고 물으니 Amit은 지도를 보니 한 20분정도에 카페같은 것이 있다는 희소식을 내게 안겨 주었다. 역시 목표가 생기면 없던 힘도 생긴다는 걸, 사람은 정말이지 생각보다 강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여행하며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렇게 다다른 카페 안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메뉴판을 보려는데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던 아밋이 "여기엔 메뉴가 한가지 밖에 없대."라고 말했다. 


이미 허기가 진 상태인 나는 무슨 메뉴인지 조차 물어보지 않고 "응. 나 시켜줘" 라며 아밋에게 10,000패소를 쥐어준 채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운이 좋게 자리를 찾은 나는 아밋에게 손짓으로 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알려준 뒤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온 그는 거스름돈을 내게 돌려주며 "무슨 음식인지 안 궁금해?"라며 내게 물었다.


"응. 전혀. 나 지금 돌도 먹을 수 있을 것같아. 설마 레스토랑에서 돌을 팔진 않을 거 아냐."


그가 "넌 이럴 땐 진짜 단순한데 아깐 너무 심오했어.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이야?" 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나는 곁눈질을 살짝 흘려주고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아밋에게 보냈다. 혼자 올 줄 알았던 코코아밸리 투어에 아밋같은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다니. 살렌토가 무척이나 좋았지만, 그래서 더 좋아하는 일은 있을 리 없을 줄 알았는데 난 지금 막, 그 감정이 어떤 기분인지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는데 이 카페에서 판다는 그 한가지의 음식은 바로 설탕수수 차에 치즈를 곁들여 먹는 "Agua Panela"라는 콜롬비아 전통 간식정도의 음식이었다. 맛은 사실 의외로 굉장히 맛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는데, 사탕수수차의 달짝지근한 맛과, 고무 질감의 치즈의 쫄깃함이 일품인 그런 맛이었다. 

돌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던 (?) 아구아 파넬라 
치즈를 퐁당


"돌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맛있게 Agua Panela를 싹 비운 나는 잘했다고 아밋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밋은 장난 하냐며 핀잔을 줬지만, 아무렴 어때.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트렉킹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부지런히 걷는 우리 앞에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는데 그것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 산 끝자락에 하얀 빛의 백마들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떨어지진 않을까 하며 걱정을 했는데 완벽한 절벽이 아니라 조금 경사가 깊어 보이는 것이 절벽처럼 보인 것이었다.


"저기 너무 이뿌다. 하늘이랑, 구름이랑, 백마까지. 완벽해." 상기된 표정으로 나는 셔터를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이 기분을, 감정을, 공기를 영원히 담고 싶었다.

안녕 백마님들아(?)


곳곳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에 취한 덕분인지 우리의 트렉킹은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는 중간중간 멈춰 서서 한동안 자연이 주는 이 장대한 선물을 맘껏 누리기도 하였고, 가끔은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아 주저리주저리 한참을 떠들어 대기도 했었다.


"여행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어?"


"나는 호텔에서 일을 했었어. 호주에서 공부를 다른 쪽으로 하긴 했는데 그 분야가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했지. 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그러는 게 좋거든."


"너랑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같아. 넌 굉장히 밝고 친절하것 같아. 잘 웃기도하고 재미도 있고, 거기다가 너의 당당한 모습이 굉장히 매력있어"


"고마워! 그치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구! 난 사실 굉장히 소심해.. 그 소심함을 감추려고 당당한 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때도 있어" 


"뭐라고?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너라면 늘 감사하며 살 거야. 예쁜 얼굴도, 밝은 성격도, 그리고 당당할 수 있는 내 자신한테도! 넌 좀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아밋은 참으로 고맙게도 한 동안 집 나가있던 나의 자존감을 다시 찾아준 듯한 착각이 들만큼 긍정적이었고, 따뜻한 친구였다. 그래서 였는지 나는 더 나를 솔직하게 보여줬던 것 같다. 무언가 "척"하는 내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그렇게 힘이 들면 쉬었다가 올라가고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우리는 우리가 예정한 Acami에 도착할 수 있었다. Acami는 여러 종류의 Micro birds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거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곳이라서 그런지 그곳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5000페소의 입장료에는 차 한 잔과 그리고 화장실 사용료가 포함이 되어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서라도 이 아름다운 풍경에 비하면 그깟 5000패소는 정말 껌값(?)처럼 느껴졌다.

고요하고 신비로웠던 Acami
작고 작았던 C. Chillon
이곳에 찾아오는 새들을 기록한 안내판?
호박꽃이라 추정(?)만했던 꽃..
목을 축이고 있는 마이크로버드
고요한 이곳
새들과 함깨하는 Acami


그렇게 코코라밸리의 아름다움을 흠뻑 만끽한 우리는 이제 서서히 하산할 준비를 했다. 햇빛이 더 강렬해져 가고 있었고, 나는 사실 오전부터 감기기운이 좀 있었던 터라 컨디션이 계속 해서 다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되돌아온 길을 내려가는데 Amit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내려갈 때는 다른 길을 찾아서 내려가 보자."

"그럴 수 있어? 우린 길도 모르자나."

"지도가 있잖아. 지도를 보니까 내려가는 다른 길도 있을 것 같던데?"

"지도.. 못 본다고 말했자나. 내가 알리가 있니.."

"하하하 맞다. 너 지도 장님이었지."


나를 놀리는 재미에 맛이 들린 아밋은 역시나 지도를 못 보는 나를 핀잔을 줬고, 우리는 그의 제안대로 올라 올 때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찾아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코코라밸리는 정말 여태까지 내가 봐 온 그 어떤 풍경보다 신비로웠다. 가늘게 뻗은 야자수 나무는 굉장히 연약해 보였지만, 그 의외로 꽤나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산을 하고 있는데, 그가 또 물었다.


"남자 친구는?"

"있....없어. 근데 얼마전까진 있었어. 호주에."

"꽤나 복잡한 대답인데.. 얼마나 만났어?"

"6년.. 조금 안됏나.. 오래 만났어."

"와우. 진짜네. 결혼 할 뻔 했어?"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답대신 나는 다른 질문을 하나 했다.

"있지.. 만약에.. 어떤 사람이 굉장히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아.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하고 너 또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근데 어느 날인가부터 너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지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다면.. 너는 그 사람을 놓아 줄꺼야, 아니면.."

"아니면 뭐? 그냥 그 감정을 무시하고 그 사람 옆에 있겠냐고?"

"어?...응..."

"아니. 그건 너를 위해서도 그 사람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그건 언젠간 그 사람이나 너나 서로가 서로보다 서로를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빼앗는 거라구. 니 말대로 하루하루가 행복한 걸까 라고 고민을 하는 사람이, 사랑하는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사람 옆에 있는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그치만.. 아주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 좋은 사람의 행복 할 권리를 빼앗지마."


아밋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사람의 행복할 권리라..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터벅터벅 아름다운 이 곳 코코라 밸리를 내려오는 일에만 집중했을 뿐.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가 타고 왔던 지프차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꽤 빨리 내려 왔는걸." 아까의 단호한 아밋은 어디갔는지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타고왔던 지프차에 올라탔고 나는 아름다운 코코라밸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좋은 사람의 행복한 권리를 빼앗지마."라는 아밋의 말을 곱씹었다.


시티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아밋은 나에게 같이 점심을 먹을 것을 제안했지만, 아까 산을 내려올 때부터 몸이 계속 안 좋았던 터라 나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노라 말하였고, 그는 그럼 쉬다가 컨디션이 어떤지 알려달라고 했다. 


"나 내일 Medellin으로 떠나거든. 그래서 오늘 너랑 만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아. 숙소에서 좀 쉬다가 몸이 좀 괜찮아지면 꼭 말해줘. 기다리고 있을게."


만나자 마자 헤어짐이라니..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에게는 익숙해져 야 될 단어인 "헤어짐".. 


나는 알겠노라 대답을 하고는 아밋과 번호를 교환하고서는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늘만큼은 이 딱딱한 돌침대 조차 푹신한 침대로 느껴질 만큼 몸을 누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다.


눈을 떳을때는 이미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폰을 집어들고 아밋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그와 8시까지 메인 광장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괜히 나 때문에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미안했다.

8시보다 조금 이른 시간 나는 미안한 마음을 사죄라도 하듯 조금 일찍 광장에 나가 그를 기다렸다. 멀리서 그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와 있던 거야? 몸은 좀 괜찮아?"

"응. 낮잠은 만병통치 약인 거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나 때문에 저녁 안 먹고 기다린 거야??" 


내말에 아밋은 대답대신 특유의 웃음을 대신했다. 


"내가 엊그제 간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 진짜 좋더라. 라이브 음악도 있고, 원한다면 니가 연주를 해 볼 수도 있어.“


뭔가 자유분방한 남미의 분위기가 풍길 것만 같은 그의 추천에 나는 흔쾌히 그곳으로 가보자고 오케이를 했고, 도착한 레스토랑은 역시나 예상대로 분위기가 최고였다. 뭐랄까.. 낭만과 자유가 넘치는 곳이랄까.

자리에 앉은 우리는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에 잠시 우리를 맡겼다. 잘 모르는 멜로디였지만, 왠지 이 음악을 오래전에 들은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럼 내일 Medellin으로 가는거야? 그 다음엔?"

"응. Medellin에서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쿠바로 갈 계획이야, 그리고 그곳이 내 마지막 여행지가 될것 같아.“


나는 Amit과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예전부터 알았던 오래된 친구가 떠난다는 말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왠지 모르게 울적했다.


"말도 안돼.. 나 두고 가는거야?" 장난섞인 내 말투와 우는 표정을 짓는 내 얼굴에 아밋은 마치 답변이라도 하듯,


"좋은 사람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은 대가야"라며 내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분명 장난이었지만, 뼈있는 그의 농담에 나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

"미안. 우울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알겠어, 조금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지만, 너랑 했던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봤어. 넌 내 친구니까."

"응.. 그래서? 그 생각의 결과는?"

"난..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야. 하지만, 니가 어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을 이미 하고 있다면 너는 이미 충분히 그 답을 알고 있을거야.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두려워서 그 말을 꺼내고 있지 않고 있다 뿐이지."

"너.. 진짜 연애 박사구나?"

"하하 넌 플레이어고, 나는 감독인 셈이지. 답을 알고 있다면, 조금 아프더라도 너가 정한 답에 자신감을 가져봐. 상처는 분명 아프지만, 언젠가는 아물거야. 그건 너도, 나도 그리고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난 그 사람을 상처 주는 게 두려워. 내가 받을 상처도 두렵고.."

"그 사람의 상처는 니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그 사람 나름대로 그 상처를 돌보고 아무는 방법을 찾을거고. 사람은 생각보다 꽤 강한 존재니까. 오히려 솔직해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니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거 아닐까.. 용기를 가져. 우리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오늘 처음 Amit은 오래 된 친구가 그립지 않을 만큼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었다. 나는 내가 왜 아밋에게 이런 고민을, 나를 솔직히 꺼내 보여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곳 Salento가 내가 온전히 행복해 지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누군가에만큼은 솔직해 질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아주 오래도록 음악에 취했고,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지금 이 순간을 간직하기로 약속했다. 누군가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행복할 권리를 빼앗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어제 마신 와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제 오른 트렉킹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꽤 늦은 시간 힘겹게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밋에게는 3통의 문자 메세지가 와 있었다.


"일어났어? 커피 마시러 안 갈래?"

"아직도 자는 거야? 일어나라 이 게으름뱅이야!"

"아직도 몸이 아픈건가.. 일어나면 연락 줘. 나는 메인 광장에 있을 예정이야"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뭔가가 또 미안해 졌다. 내 고민을 같이 진지하게 고민해준 그에 대한 고마움과, 너무 내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미안함에서였으리라.


"아밋 미안해. 나 이제 일어났어. 아직도 메인 광장이야? 오늘 몇 시 버스로 떠난다고 했지?"


다행히도 그는 아직도 Salento에 있었다. 오후 버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샤워를 하고 허겁지겁 메인 광장으로 나갔다. 특별한 것을 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메인 광장의 작은 까페들을 둘러보았고, 기념품을 사는 그의 쇼핑을 도와주었으며, 그에게 내가 찾은 근사한 나만의 아지트였던 카페에 데리고 가 맛있는 커피를 사주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어느 덧 그가 떠날 시간이 오고 말았다.


"아밋 있잖아.. 너무너무 고마워. 길을 찾아줬던 것, 내 얘기를 정성껏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준것도 너무너무 고마웠어. 너를 만나기 전에도 Salento가 너무 좋았는데 너를 만나고 나서는 Salento를 더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 남은 여행 조심해서 했음 좋겠어. 쿠바에서 개똥 조심해. 나도 많이 밟았거든..“


뭔가 코 끝이 찡해 지는 기분이 들어 나는 끝에 시시콜콜한 농담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하 알겠어. 좋은 정보 고마워. 나 또한 마찬가지야. 나 사실 Salento는 굉장히 지루한 도시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너를 만나서 나 또한 너무 즐거웠어. 너도 남은 여행 조심해서 하길 바라고, 니가 무슨 결정을 내리던 난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잊지마. 인생은 늘 설렐 필요가 있다고!"


마지막까지 유쾌하고 친절했던 아밋은 그렇게 Salento를 떠났다. 나는 아밋이 떠난 버스 정류장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여행 기간 한 번도 느껴보진 못한 감정과 마주했다. 지독한 고독함이었다.


사실 이번 남미 여행을 하면서 이런 감정을 겪으리라고는 한 번도 예상한 적이 없었다. 분명 혼자 떠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떠날 때마다 늘 새로운 것들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가끔은 그것들로부터 위로받기도하고, 놀라기도 했으며, 때로는 슬퍼지기까지 했다. 나는 분명 혼자 여행을 떠나왔는데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이 센치한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잠시 해먹에 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끼니때가 되어간다는 걸 깨닫고는 허기도 채울 겸 광장으로 다시 나가기로 했다. 계속 이런 기분을 가지고 있다가는 처음에 내가 사랑에 빠져버린 Salento에 대한 감정 또한 변질 될 것만 같아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1층으로 내려온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또 한번 찾아왔다. 그녀는 바로 첫날 아침에 만났던 냐옹이. 냐옹이는 특유의 그 애교와 친근감으로 나를 위로라도 하듯 내 주위를 맴돌았다. 딱히 서두를 이유도 없던 터라 나는 한참동안이나 냐옹이와 함께 앉아 시간을 보냈다. 거짓말같이 들리겠지만, 냐옹이가 다 괜찮을 거다, 더 좋은 사람들을 여행하는 내내 무궁무진하게 만날거야. 하고 말해주는 듯 했다.

'다 괜찮을거야' 라고 말해주는 듯 했던 고냥미


광장에 나가 두리번거리던 나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햄버거 가게를 선택했는데, 늘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이 인 상깊어서 Salento를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맛보겠노라 하고 마음을 먹은 곳이었다. 낮에 보다는 그래도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치즈가 두 장이나 들어간 햄버거를 주문하고 가격을 지불했는데, 가격은 단돈 3000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었다. 콜롬비아를 여행 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돈을 아무리 써도 걱정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워낙에 저렴한 물가 탓이기도 했거니와, 가격에 비해 푸짐하게 나오는 음식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천원 남짓한 이 햄버거만 해도, 호주의 웬만한 고급 햄버거와 견주어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크기며, 그 안에 푸짐하게 들어간 재료들이며, 맛 또한 일품이었다. 왠지 우울한 내 기분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했다.

나의 공허함을 가득 채워준 단돈 1000원짜리 햄버거!! 맛이 환상이었닷!!!

배가 든든해지니, 나의 고독함과 외로움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다. 참으로 일차원적이고, 단순하게 들리겠지만 이상하게 남미에서는 그랬다. 모든 게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다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상한 효과 같은 것들이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뿌려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남미효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잔향이 오래 남을 것만 같은 그런..


나의 최고로 애정하는 장소인 해먹에 무심히 앉아 일정을 한번 보기로 했다. 나는 콜롬비아 보고타를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었는데, 딱히 지역이나 기간 따위는 정해 놓지 않고 그냥 마음에 드는 곳에는 오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짧게 이런 식이었다.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을 뒤져봐서 사진을 검색하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그래 이곳 하면서 장소도 꽤나 즉흥적으로 결정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Salento에서 Cali라는 곳으로 이동하는 듯 했고, 그래서 깔리라는 곳을 검색해보니, 깔리가 바로 콜롬비아 탱고의 본고장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나는 Salento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깊은 사랑이 끝이 났을 때는 울적해진 기분을 달랠 장소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Salento를 나의 고독으로 기억할 수 없어 과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살렌토에 머무른 지 무려 12일 만의 결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카운터에 맡긴 뒤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메인광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메인 광장으로 간 나는 제일 먼저 열흘 내내 나의 최애 공간이었던 이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더 시켜 마셨고, 그곳에서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가 나의 여행을 응원해 주었고, 나중에는 꼭 좋은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덕담 또한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리고는 꼭 먹어보고 싶었던 뜨루차(생선을 뛰긴 콜롬비아 대표 음식)를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어보았다. 가격은 7000패소로 우리나라 가격으로 3천원이 약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콜롬비아는, 살렌토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단돈 3천원에 스프까지 나왔다
3천원의 행복
3천원의 행복을 선사해 주었던 곳! 살렌토의 숨은 맛집!!

3천원의 만찬을 즐긴 나는 마지막으로 살렌토의 이 행복을 나만 느낄 수 없어 가족들을 위한 선물도 잊지 않았다. 커피를 유독 좋아하는 엄마에게 살렌토의 커피 맛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여러가지 커피를 테이스팅한 후에, 뒤끝이 떫지 않은 그러면서 가볍지 않은 커피를 선택했고, 엄마와 가족들을 위해 커피 두 팩을 구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2팩이 아니라 20팩을 사고 싶었지만, 나는 장기간 여행자라 가방 무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구입한 나는, 첫 만남부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열렬히 사랑했던 살렌토에게 작별을 고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꼭 다시 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한 채.

안녕, 나의 살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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