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

당신

by 꿈꾸는 momo

그가 쓴 글을 나에게 건넸다. 감동이랄 것도 없이 가슴 한쪽이 아려와 바람처럼 그의 글을 훑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멍하게, 그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시간에 겹쳐 있는 그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해한다는 말보다 더, 잔인했던 우리의 현실이 영화처럼 지나갔고 장담할 수 없지만 약속으로 얽혀있는 우리의 관계를 다시 곱씹어 보는 것이었다. 나의 곁, 나의 사람, 나의 사랑을...




내 나이, 만 40세. 이 나이를 지난 많은 형님 누나들이 그렇겠지만 너무도 순식간에 들어선 것 같아.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40세가 되었던 이들의 간단한 소감들이 들렸던 것이 생각나는 것 보면 40세라는 나이의 의미가 다들 하나씩 있었겠지... 내 나이 사십,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 기관지에 이게 뭐지?" 호야를 진료한 의사가 동료 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보이며 의견을 물었을 때, 그리고 다시 촬영한 후 결과를 살펴보기로 했을 때, 어떤 생각도 섣불리 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촬영 각도가 안 좋아서 그렇게 보인 것 같다며 안도하듯 말했지만 한껏 긴장했던 마음은 어쩌고? 뒤이어 폐렴으로 입원해야겠다고 할 때는 오히려 다행이라 느껴지더라. 잠깐이었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심호흡하며 기다리게 됐던 것은 휼이 때의 무거운 기억이 작동했던 것 같아.
"이건 거의 암입니다. 수술 날짜 잡을게요." 쌍둥이를 출산하며 알게 된 폐결절이 거의 암이라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그 기억은 더욱 무거웠지. ‘거의’라고 했으니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잖아 하며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결국 암. 초기 암이라 제거만 하면 괜찮을 거라 안심했지만 죽음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하기도 했어. 그러다가 때로는 아주 담담해지기도 하고... 그런데 수술 후 나온 당신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사진을 찍었었다. 그때 나도 무슨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웃었는지 모르겠어. 큰 수술 후 살아 나온 당신을 보며 긴장이 풀려서 그랬을까? 아니면 너무나 아파하는 당신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서였을까? 잘 모르겠다. 가끔 휴대폰 사진첩을 넘기다 그때 사진이 보일 때면 이제야 펑펑 눈물을 쏟는다. 이 시기에,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지나갔었어.
스스로 이해할 수 없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된 것은 단연 육아휴직이 아니었나 싶다.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동경도 있었지만 쉴 새 없이 달려온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싶은 게 사실은 선택의 큰 이유였던 것 같아. 그러나 끊임없이 울어대고 먹이고 재우는 일상들의 반복이었지. 곧, 자는 것과 깨어있는 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지쳐갔어. 특히, 아기의 우는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견디기 힘들었어.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면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에 머리에 쥐가 난 것처럼 찌릿했고 그 울음이 지속되면 가슴통증과 함께 솟구치는 분노가 터져 나오곤 했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써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것이 힘들었어. 정말, 어떻게 살. 아. 야... 무겁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더 이상 출퇴근하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낯설게 보며 느끼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오물처럼 솟구쳐 올라 내 밑바닥을 확인하는 자리는 더욱 싫다. 그 자리는 매번 감당할 때마다 낯설고 두렵고 또 너무 아픈 거야. 다시, 이 연약함의 자리에서 내가 구하고 물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읊조려 보는 거야.


어느 날, 아파트 구석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비 피우는 한 남자의 어깨와 눈빛에서, 퇴근길 주차장에서 마주한 한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과 걸음에서 남편이 떠올라 멈칫했다. 근래, 확실히 그의 어깨는 무겁게 쳐져 있다. 힘 있고 예리하던 그의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 예전보다 머리숱도 적어지고 머리칼도 하얗게 센 것 같다.

내가 다니는 길목에 미리 도착해 낯 간지러운 플래카드를 들고 섰던 그. 내가 지독히도 싫어했던 오글거림의 낭만을 실천하던 연애시절의 그가 생각난다. 그러다가도 어떤 주제 앞에 세상 진지해지던 그였다. 때론 오만하다 생각할 만큼 불편했던 그의 질문들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의 질문은 내 삶과 사고의 우물에 파장을 만들었다. 그의 지적이 불편함을 넘어 궁금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다 하나가 되었다. 서로의 다름이 새로움과 기쁨이었는데, 한 순간에 벽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3년 전, 호기롭게 육아휴직을 선언하던 남편이었다. 어떤 이는 그의 용기를 지지하며 칭찬했고 어떤 이는 오히려 베이비시터를 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을 했다. 아프게 컸던 첫째의 경험이 있기에 육아의 흐름을 앎에도 쌍둥이 육아는 역시 생소했다. 긴장된 마음이 일었다. 세 개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특별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몇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따져 묻기를 반복했다. 남편과의 동반휴직으로 기울어졌다. 같이 휴직을 한다는 것이 가정경제에 어마한 손실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해서였다. 부부가 같이 육아를 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 멋졌다. 정작 우리의 삶은 숨 막힐 듯 치열했다.


어떤 주말이었다. 아직은 이 날 이후로 더 심각한 날은 없었으니 생애 최악의 날이라 기억된다. ‘최악’의 미세 먼지 경보가 뜬 날이기도 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오는 길, 세 아들이 모두 카시트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별거 아닌 일로 서로에게 예민해져 있던 우리는 대화도 없이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깼고, 우리는 쌍둥이 중 한 명씩을 안아야 했다. 잠이 덜 깨 칭얼대는 다섯 살 첫째는 어쩔 수 없이 울며 따라왔다. 차분하게 달래면 그만 이었겠으나 울음소리에 극도로 예민해진 남편은 한 명을 안고 달래다 결국, 공황 상태가 되어버렸다. 남편은 죽을 듯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져버렸고 아빠 품에서 떨어진 아이는 다시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징징대는 큰 아이는 방치, 내 품에 있던 아기를 내려놓고 우는 아기를 달래니 내려놓은 아기가 다시 울었다. 울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해가 지려는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누구도 거실의 불을 켜지 않았다. 아니, 켤 수 없었다. 남편은 거실에 기절하듯 쓰러져 머리끝까지 이불을 둘러쓰고 잠들어 버렸다. 순간, 네 남자를 두고 나가버리면 어떨까 했다. 세 아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따라 흐르다 마음을 흔들었다. 사랑, 저 반대편의 감정으로 가득한 채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지금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우는 아기를 동시에 안고, 업어 달랜 후 차례로 목욕을 시켰다.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고, 수유했다. 기분이 좋아진 아기를 토닥거려 눕혔지만 한 녀석은 누워서 잘 생각이 없다. 이러다 둘 다 울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한 녀석에겐 젖을 물린 채, 한 녀석은 다른 한 손으로 토닥거리며 자장가를 불렀다. 제발, 울지 말고 잠들어다오. 다행히, 누웠던 아이가 스르르 잠이 든다. 두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자는 아빠 옆에서 첫째가 동영상을 보며 날 기다리고 있다. 인제 그만 끄자. 부엌으로 데리고 가 김에 싸서 밥을 먹였다. 배가 고팠는지 더 달란다. 아이를 씻기고 같이 누웠다. 아이는 재잘거리다 곧 잠이 든다. 네 남자가 잠든 밤, 나는 몹시 외로웠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아는 남편에게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해결되면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에게 육아는 어울리지 않았다. 계획대로 돌아가는 육아 시간표가 있다면, 어느 구간을 뚝 떼서 맡겨버리겠지만 육아가 감히 그렇던가. 틈만 나면 기저귀를 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끝나지 않는 이 과업에 남편은 급기야 휴직 3일 만에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며 나가떨어졌다. 결국, 남편은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며 힘들어했고 우리는 아기 돌보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 시간이 벌써 3년 전이다. 서로가 벽이 되어 아파했던 시간. 남편은 주위의 누군가가 자기처럼 휴직을 할라치면 잘 생각해 보라고 권고한다. 하하. 나도 동반휴직은 말리고 싶다.


여름밤의 잠은 원래도 깊을 수 없다. 열대야가 계속되는 밤, 밤새 돌아가는 에어컨 밑에서도 숙면은 어렵다. 맨살에 닿는 냉기에 스산하여 깨면 이불도 덮지 않고 자는 애들을 한 번 추슬러보고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게 된다. 조각 잠의 꿈은 퍼즐처럼 이어지기도 한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애써 무시하다 끊어질 기미가 없어 결국 몸을 일으킨다. 그는 침대 위에서 엎드려 자고 있다. 보기에도 불편한 자세다. 지금 이 순간, 꿈속을 거닐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바른 자세로 눕게 하고 싶지만 깨우면 안 될 것 같다. 엎드려 자면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가는데. 자는 얼굴을 들여다본다. 고되어 보이는 얼굴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 얼굴이 안 되게 느껴진다. 내가 당신을 보듯 내가 볼 수 없는 '나'를 더 많이 본 사람이 당신이란 걸 안다. 그래서 늘 당신의 말에 생각이 많아진다. 속상한 마음 이전에, 당신의 말이 비집어 어떤 '나'를 들추어내니 옴짝 달짝 못한 채 입을 닫게 되는 것을. 그래서 때로는 그 잘난 당신의 입을 막거나 때리고 싶은 충동을 상상 속에서 실현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까.

아이가 없을 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우리의 화법과 성향과 태도가 틈만 나면 꼬이고 꼬여 서로를 숨 막히게 하니 과연, 육아는 대단한 인생 과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결국은 바닥난 나의 한계와 철저하게 벗겨진 나의 민낯을 당신을 보며 아프게 발견해가고 있는 건지도.

그러니까, 당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늘 어렵고 흔들리는 일이다. 당신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은 너무 순식간에 바뀌어서 글을 쓰는 순간의 감정에 좌지우지되기도 하기에 최대한 침착한 상태에서 글을 써야 한다. 일단 지금의 상태는 so so. 세 아이를 챙기며 집안일을 정리하는 나의 분주함을 읽어주지 못하고 쉬고 있던 당신에게 잠깐 골이 났다. 몇 번 잔소리 같은 소리를 했겠다. 다행히 누워있던 자리를 훅 떨쳐내고 아이들과 나에게 장난을 거는 당신의 에너지에 서운함이 새처럼 날아가 버린다.

참 이상한 관계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나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고 내 서랍 속에 정리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 대단한 일이 가벼이 넘겨질 때도 있고 사소한 일로 마음이 어렵기도 하다. 그러다가 언제 또 그랬냐는 듯, 말 한마디에 잊히기도 하며 물처럼 흘러가는 우리 관계는 때로 신비롭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끝이 온 듯 맹렬했다가 때론 비둘기처럼 슬피 울었다가, 어느새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낯을 부빈다. 어느 때가 제일 행복했냐고 물어본다면 답할 수는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본다면 싫다. 내가 알지 못했던 당신의 모습, 그리고 당신을 통해 보는 나의 모습 또한 또 다른 진실이고 거울이니까. 그렇게 아파하며 함께한 만큼 더 애틋하다고 말해도 될런지.

이제는 석양이 어울리는 당신의 배경. 어쩌면 함께 가는 나의 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나의 배경으로 이해했을 어떤 순간들이 당신에게 얼마나 무겁고 혹독했을까도 한 번 생각해본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세 아이의 아빠로 생을 응시하고 있는 당신. 여전히 흔들리고 깎이며, 그러나 때로는 고집스럽게 걸어가는 그 길을 내가 얼마나 지지하며 이해할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며, 나 역시 함께 가야 할 길임은 알겠다. 하지만 그 길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과 오래된 컵은 좀 치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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