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더운 날이 왔다
얼었던 땅을 기어이 뚫고 피워낸 봄꽃이 경이롭다면 봄의 동력을 받고 피어난 여름 꽃의 자태는 화려하다. 들에는 금계국이 지고 수국과 개망초가 한창이다. 가을의 꽃으로 외던 코스모스에도 벌들이 분주히 날아 앉는다. 패랭이꽃과 괭이밥, 토끼풀과 민들레 씨가 한들거린다.
공기에 물기가 붙는다. 후덥지근한 여름을 맞이한다. 물먹은 헝겊인형처럼 눅눅하고 무거운 몸이 된다. 장맛비가 요란하다 싶더니 폭염주의보가 발령된다. 이제 한동안은 완전히 더운 날이 계속될 것이다.
요란하게 옥수숫대를 넘기며 태풍이 지나간 사이 호박잎은 한 뼘 더 커지고 쭉쭉 뻗은 넝쿨 사이로 주먹만 한 호박이 보이기 시작했다. 풋고추들도 하나 둘 발갛게 익어가고 오이와 가지는 매일매일 마중을 나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자연이 주는 소산을 얻기 위해 시골 농부들은 잡초와 싸우며 땀으로 온몸을 적신다. 성충이 된 벌레들과 풀밭에 앵앵대는 모기, 습한 건물 구석구석 생기는 곰팡이와도 싸워야 한다. 며칠간 잡초와 씨름하던 엄마는 끝내 몸살이 나셨다.
이렇게 수고로운 여름을 지나면 달게 익은 곡식들이 밥상을 풍성하게 해 주겠지만 한낮의 여름 볕은 고통스럽다. 매미만 실컷 울어대는 한낮의 뜨거운 길을 지나며 자연의 섭리 앞에 나약한 인간을 본다.
더위에도 아랑곳없는 아이들은 드러난 살들을 까맣게 태우며 이 여름을 지나고 있다. 태풍이 쓸고 지나가듯 곳곳에 흔적을 남기는 21개월 아들 둥이들은 장맛비가 지나고 한 뼘 쑥 큰 작물들처럼 어느새 훌쩍 자라 있고 또 한 번 고열로 여름밤을 앓는 큰 아이는 성장통을 하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단단하게 여물어지고 채워질 아이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땀을 쏟는다. 비록 내 수고가 고작 잡초를 없애는 일 정도라 하더라도 내게 허락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