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에서 엄마를 생각하다
엄마 곰국에는 곰이 들어갔을까요? 음, 소고해요(고소하다는 말을 이렇게 뒤집어쓴다. 정정해 줘도 자주 이렇게 튀어나온다)
친정어머니가 싸 주신 곰국을 데워 먹었다. 뭐든 부지런히 먹지 않으면 싸 주신 반찬들이 고스란히 음식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라 조금은 부산을 떨어 저녁상을 차렸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툰 쌍둥이들을 양 옆에 앉혀 먹이고 첫째가 먹으며 하는 이야기에 추임새까지 넣어주는 저녁식사 시간은 분주함을 넘어 정신없는 시간이다.
반찬은 다 먹었나? 너무 힘들면 금요일 짐 싸서 애들 데리고 와. 이 서방도 좀 쉬고...
결국은 사위를 핑계 삼아 딸을 쉬게 하고 싶은 엄마는 오늘도 내 안부만 물으신다. 가끔은 팔다리가 쑤신다느니 올해 농사는 줄여야겠다느니 하는 예사스러운 투정을 딸에게라도 하면 좋으련만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엄마 앞에서 힘들다는 넋두리를 하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기에 통화는 늘 짧다. 조금만 더 인내하자고, 그래도 감사하자고 하는 성경 같은 답을 이야기하실 게 뻔하다. 굳이 내가 세 아들을 데리고 가지 않아도 엄마는 충분히 바쁘고 충분히 피곤할 텐데 싶어 대답을 망설인다. 금요일이 되면 짐을 싸고 있을걸 알면서도...
엄마라는 자리에 있어 보니 엄마가 자주 떠오른다. 늦은 밤 잠에서 깨 우는 아일 달래면서도, 남편에게 맘 상해서 잠 못 드는 밤에도,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후릅후릅 혼자 먹는 밥상 앞에서도 문득문득 엄마가 떠오르며 울컥 목이 메일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엄마가 그때,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창문틀의 먼지는 얼마나 자주 닦아내는지, 냉장고 청소는 얼마 만에 하는지, 이번 달 전기세랑 수도세는 얼마인지, 오늘은 무슨 반찬을 만들지 따위의 걱정, 아니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없던 시절에는 엄마라는 존재가 하는 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엄마는 엄마이기에 나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내 필요에 언제나 반응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떼를 써도 괜찮았다. 엄마니까 그랬다. 자식들 앞에서 큰 소리로 화를 내시거나 불평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살갑게 대하시거나 보듬어주시던 분도 아니셨는데 그저 그 자리에 묵묵히 있어주시는 엄마가 있어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고작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을 세 내어 뜨개질이라는 기술 하나로 누군가의 옷을 떠 주고 돈을 벌기 시작하신 게 언제쯤이었을까. 내 기억의 저 끝에서부터 엄마는 항상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낮이고 밤이고 두 손을 떠나지 않던 그 굵은 바늘과 동그르르 말린 털실. 내가 잠들 무렵에도 사각거리던 엄마의 뜨개질 소리.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했던 가게가 점점 커져 간판을 달고 제법 큰 가게를 운영하시며 20년 가까이를 뜨개질하시던 엄마의 손가락은 쇠꼬챙이처럼 딱딱하다.
우리 삼 남매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를 잡아갈 때쯤 엄마도 가게를 접으셨다. 이제 좀 쉬엄쉬엄 엄마의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다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엄마가 식당을 하신단다. 식당이라곤 처음 해 보시는 일인데 지인이 하겠다고 지은 식당 건물을 고스란히 떠안고 말이다. 뜬금없이 칠면조 육개장이란 메뉴를 걸고 식당을 시작하시는 엄마의 나이 63세. 이제 그만, 편하게 사셨으면 하는데 또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우리 삼 형제는 일의 결정권자였을 아빠를 탓했다. 그러면서도 속상함과 걱정스러움에 식당을 둘러보고 음식을 먹어보는데 계속 화가 나는 건 뭘까.
모른 척할까 하다가도 결국 발길이 자주 닿는다. 새로운 공간에 알맞은 식탁을 사들이고 배치하는 일, 간판과 메뉴판 디자인을 고르고 주문하는 일, 이제는 필요한 거 없나 두리번거리며 챙기고 당신의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가고 반찬도 주섬주섬 싸 몇 번이고 들락거린다. 손님은 많이 왔는지 하루 매출까지 체크하는 건 또 뭔지... 불쑥 찾아가 설거지라도 하고 가는 날이면 무거운 뚝배기에 왼 손목이 시큰한데 괜히 또 엄마 걱정이다. 바쁜 시간에 일손이 되어 드린 것도 식당을 열고 한 두 달 정도, 갑자기 쌍둥이를 둘째로 임신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챙겨야 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우리 동네 세탁소를 지날 때 나던 그 독한 세탁물 냄새에 마스크를 낀 세탁소 아저씨도, 춥든 덥든 헬멧 하나 쓰고 다니는 배달 아저씨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온종일 서서 남의 머리카락 만지는 미용사도, 국밥집 아줌마도 누군가의 엄마였다. 땀 흘리며 일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의 인생, 그리고 또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당연한 고단함을 짊어지고 왔다가는 거였다.
어떤 작가가 그랬다. 밥벌이가 절벽 같다고. 맞다. 우리는 참 절벽 같은 삶을 지난다. 그 절벽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깨달음이 있겠지만 결국 그 길은 아무도 알려주지도 살아주지도 못하는 것인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이제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딸은 바라보는 거다. 나는 괜찮다, 다 괜찮다 또 그러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