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요술 테이프를 쥐고 있었다.
"엄마, 나 내일이 너무 기대가 돼요!"
일주일 전부터 기다리던 여행이었다. 3월 들어 부쩍 의기소침해지고 동생들보다 엄마를 심하게 찾는 아이와 따로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어 계획한 일이다. 여행이라지만 동생들이 어린이집에 맡겨진 시간 안에서 가능했고 버스로 이동하기엔 번거롭다 싶은 찰나에 아이가 고모라고 호칭하는, 고모보다 가까운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좀 어때요?"
서로의 상황을 아는 우리의 첫마디. 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좀 더 오래,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은 언니의 마음이지만 점점 아이같이 떼를 쓰며 언니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를 꾸역꾸역 참아내는 게 현실이었다. 당신이 했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해 반복하는 것은 차치하고 하루에도 극과 극을 오가는 어머니의 감정을 관찰하며 받아내기란 말이라도 쉽지 않다. 그냥, 언니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언니를 걱정할라치면 언니는 내 몸과 육아의 고단함을 걱정하며 자신의 힘듦을 육아에 비교하곤 하지만 어디, 육아에 비할바일까. 자식은 받아져도 부모는 쉬이 그렇지 못하다는 걸 빤히 안다. 게다가 아무리 힘들어도 목련꽃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서 다시 힘을 얻는 육아와 어디 맞먹을 수가 있을까. 어쨌든 언니는 나를, 나는 언니를 생각하면 애석함이 차올라 한숨을 쉰다.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고작 한숨 쉬는 것뿐이라 한숨이 참 무겁다.
그나마, 일상이 흔들리던 고비는 넘긴 우리들이었기에 조만간 제주에라도 같이 여행을 가면 어떨까 이야기도 나눴고, 아무래도 변수가 많아 안 되겠지 하고 1박이라도 여행을 가자 했던 참이다. 그러다 1박도 욕심, 꽃 피면 꽃이라도 보러 가자 했었다. 그 약속을 지금 이행하자 물었고 흔쾌히 그러자 하여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여섯 살 아들이, 언니에게는 칠순이 넘은 어머니가 함께인 채로 말이다. 여러 장소를 고민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곧 있으면 벚꽃 축제가 한창일 진해로 결정했다. 우리 집에서 30분 되는 거리다. 아이가 보고 싶다는 바다도 보고 해사하게 피었을 벚꽃도 보자니 나도 웬일로 소풍 가는 기분에 오랜만에 살짝 설레었다.
아이는 여행을 가자고 한 날부터 몇 밤이 남아 있는지를 꼬박꼬박 묻는가 싶더니 여행 전날 밤에는 한껏 들떠 자기 장난감을 뺏는 동생도 사랑스러운 모양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저녁이라니! 아이는 멘 지 한참 오래 전인 토마스 가방을 어디서 꺼내와서는 내일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을 넣기 시작했다. 오늘의 애장품 토끼 인형과 고양이, 그리고 함께 먹을 소시지와 망원경까지 챙겨 넣고 흐뭇해했다. 이제 그만 자야 하는 시간이라고, 잘 자야 내일 즐겁게 다녀올 수 있는 거라고 미리 입막음하자 그러면 그림책 하나만 읽고 자자한다. 들뜬 기분이 쉬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좋다. 오늘은 아무도 엄마에게 붙어 보채지 않으니 그림책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아이가 혼자였을 때 늘 읽고 자던 그림책이었지만 동생들이 태어난 후로는 거의 불가능해진 일이었다. 아이가 꺼내 온 책은 아주 어릴 때 읽고 한참을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이었다. 재미있게 읽고 나니 다시 한번만 더 읽어달란다. 안된다며 덮으니 맨 뒷 장에 꽂혀있던 뭔가가 툭 떨어진다. 책 속의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붙여주던 만능 요술 테이프가 사은품으로 들어있었던 거다. 고장 난 장난감도, 힘들고 속상한 마음도 할아버지의 요술 테이프 하나로 다 해결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신기한 요술 테이프가 들어있다니, 아이는 "아! 엄마, 내일 다칠 수도 있으니 가방에 넣어가는 건 어때요? 내가 붙여줄게요." 한다. 다음 날, 아이가 가방을 열어 확인하는데 그 테이프가 얼핏 보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가움에 길고 긴 인사를 했다. 지난번에 뵌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맞아주는 어머니 또한 아이와 나에게 질문을 번갈아 하며 뒷좌석으로 계속 눈길을 주셨다. 이상하게도 다른 애들은 기억을 못 하는데 출생부터 어려운 과정이었던 걸 지켜봐서 그런지 아이를 잊지는 않으신다 한다. 하나도 벅찬데 애 셋 키우느라 네가 너무 고생이 많다는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날이 좀 흐렸다. 벚꽃이 아직은 드문 드문이다. 그래도 활짝 핀 개나리가 넘실거렸고 축제 전의 한산함이 오히려 좋다 생각했다. 바닷가가 아이와 어머니에게 추울 것 같아 유람선을 타는 건 어떤가고 언니가 물었다. 아이가 난생처음 타보는 배였다. 아이는 반달눈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족함을 표했다. 1시간 30분 동안 항해하는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표를 끊는데 어머니를 연신 살폈다. 배를 안 타고 싶다며 몇 번을 거절하셨지만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는 언니와 나의 말에 이내 조용하셨다. 아마 출발 시간이 남았는데도 당장 배를 타는 줄 알고 설레발치는 아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유람선을 타는 건 나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우리를 뒤로, 한 무리의 관광객이 탔고 유람선 안의 트로트 메들리가 쿵짝쿵짝 한층 고조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검푸른 바다, 날아오르는 한 두 마리의 갈매기, 지나가는 어선이 만드는 파도에 울렁이는 배와 우리, 그리고 낮술을 하신 듯 달아오르신 아저씨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줌마들의 춤, 그분들이 한 움큼 쥐어주시는 사탕과 땅콩 같은 안주... 1시간 30분의 흔들거리는 낯선 공간을 머물다 다시 땅을 디뎠다. 하얗게 일다 사라지는 포말처럼 쿵짝이던 노랫소리도, 바다도 시선에서 멀어질 즈음 어머니가 화장실을 다녀온다 하셨고 토하기 시작하셨다. 등을 두드려가며 한 두 번 토하시고 진정되나 싶었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다시 차를 탔는데 어머니가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 번 또 게워내시더니 다시 차를 타고 얼마지 않아 또 내리셨을 땐, 좀 쉬다가 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필이면 근처에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차량이 많고 붐벼 주차를 할 곳이 없었다. 언니는 어디론가 주차를 하러 가고 해변데크와 인도 사이의 풀밭에 주저앉은 어머니의 등을 나는 계속 쓸어내렸다. 너무 여러 차례 토하신 탓인지 노오란 액을 쏟아내시는데,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물티슈나 물을 드려가며 안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누워야겠다 하시며 아이를 데리고 다른 데로 가라 하실 때부터 심상찮다 느껴졌다. 혹시나 바닷바람에 체온이 내려갈까 등을 쓸어내리는데 당신은 흠뻑 진땀이 나신 듯했다. 그래서 목덜미며 등이며 근육을 풀어드리려고 꾹꾹 만지는데 어머니는 신음을 토하시며 그냥 내버려두라 했다. 내 무릎도 안 되는 키의 관목들로 둘러싸인 풀밭은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훤히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그중 구석진 곳을 기다시피 찾아가 엎드리시는 어머니를, 그리고 풀밭 사이에서 찾아낸 비비탄 알을 보이며 총총거리는 아이를 곁에 두고 마음이 동동거렸다. 이제는 안정이 되었겠거니 하고 주차할 곳이 없어 되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하는 언니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어머니께선 급기야 바지를 내리시고 당신의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에 울음 같은 신음을 쏟아내는 중이셨다. 통화를 하는데 우르르 행인들이 지나간다. 다들 흘끔흘끔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한 어르신께서, 나이 든 사람이 저러는 거 너무 꼴 보기 싫다며 길을 재촉하신다. 같은 노인을 보고 꼴 보기 싫다고 하는 건 당신도 그런 짐이 될까 두려워서 그런 거라, 나의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인을 보면 곧잘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 이해하기로 했지만 젊은 사람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따라가 한 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화가 났다. 언니가 비상등을 켜고 내려 헐레벌떡 왔을 때쯤, 나는 어머니의 바지를 올려드리지도 못하고 윗옷으로 덮기만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꼴이었다. 그 옆으로 촐랑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아이가 있었고... 우리는 결국 119를 불렀다. 어머니는 구급대원들이 오자마자 자신을 병원에 좀 데려가 달라, 죽을 것 같다라며 소리치셨다. 역시, 아이가 곁에 있던 내게는 부끄럼에서인지 미안함에서인지, 자신의 온몸을 뒤틀어가며 신음할 때조차 절제하시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다. 구급대원들이 어머니를 들것에 싣는 모습에 갑자기 찡 눈물이 났다. 뱃멀미처럼 땅이 흔들거리며 하늘이 노랗게 온 몸이 풀어지는 그 느낌을, 그렇게 땅에 엎드려져 손에 닿는 풀과 흙을 흩트려가며 정신을 차려보려 해도 속에서 어지럽게 나오는 것들을 통제할 수 없는 그 상태를, 고개를 들면 우르르 당신 옆으로 지나치는 행인들의 걸음과 시선을,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감당하는 그 끔찍한 시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언니가 급히 구급차에 타기 전에 쥐어준 차키를 들고 아이와 언니 차로 향했다. 이동한 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로비로 나온 언니에게 차키를 전해준 뒤 우리는 걱정 말라며 나왔다. 어머니의 안녕을 기도하며 택시를 타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엄마, 이거..." 아이의 손에는 요술 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아! 요술 테이프. 아이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폴짝거리며 우릴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정말은 힘들어하는 할머니에게 요술 테이프를 붙여주고 싶었던 거다. 언제 붙여드릴까, 언제 건네드릴까 계속 손에 쥐고 갈팡질팡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게다. 웬일인지 병원에 도착하자 할머니가 누워있는 곳으로 가자하더니... 로비에서 응급실로 들어가던 고모를 계속 뒤돌아보더니... 요술 테이프를 주러 다시 갈 수는 없지만 아마 너의 그 마음이 전해져서 괜찮아지실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너무 엉망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모처럼의 여행 소감을 택시 안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재미있었어요."
"뭐가?"
"배 탄 거요. 하지만 다시 배는 안 타고 싶어요."
재미있다는 말과 다시는 배를 안 타고 싶다는 말이 어울리는 건가 생각을 하며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피곤했는지 아이는 곧 내 무릎에 쓰러져 잠이 든다. 아이의 손에서 건네받은 요술 테이프를 보니 아이의 여행을 망친건 아닌가 미안했던 마음도, 동동거려 피곤했던 마음도 요술처럼 사라지는 것 같다.
다행히 어머니는 좀 안정이 되었는데 약간 장염증상이 보인다고 했다. 아이 말처럼 어머니도 나도 언니도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배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