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악당이 될 수 있다
엄마 나와 놀이해요. 나는 로봇이에요. 엄마는 악당이에요.
아이는 언제부턴가 로봇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더니 틈만 나면 로봇이 나오는 영상을 보려고 한다. 그건 대부분 선과 악의 대결 구조로, 악당들이 꾸며낸 음모에 위기를 겪는 주인공을 정의로운 로봇들이 구해주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언제나 로봇이 이긴다. 악당은 험상궂은 눈과 말투, 음산한 분위기로 자신의 파괴력을 과시하지만 번번이 로봇들과의 싸움에서 실패한다. 아이는 필연적으로 악당이 아닌, 정의의 이름으로 싸우는 로봇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리라.
이 얼마나 통쾌한 구조인가. 위기가 오기는 하지만 결국은 선이 승리하는 결말! 반면 악당으로 구분되는 순간 악당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마음은 왜 그렇게 황폐해졌는지 알아볼 이유나 여유가 없다. 그를 향한 어떠한 공격도 용인된다.
그래. 때때로 우리는 그렇게 쉽게 자기를 착한 사람의 범주에 넣어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설정한 '착함'의 범주에 벗어난 사람을 편견으로 바라보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착하게 산 결과가 승리와는 무관하여 혼란을 겪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에서 본 구조처럼 단순하고 명쾌한 게 인생이라면 인생이 한결 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걸, 상황에 따라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살면서 뼈아프게 감각하며 자란다. 세상을 보며 마냥 즐거울 수 있는 지금 시기를 벗어나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걸어갈 아이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까 미리 짠하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삶을 어떤 무성한 말로 판단해 버리고 평가절하하는 이 사회, 대중이라는 힘으로 무섭게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모습이 자못 위태롭게 보인다. 너무 많은 말과 흥분으로 한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일에 쉽게 끼어들지 말기를 아들에게 바라본다.
대중이라는 무게에 의지하여 우리 안에 있는 '선'이 영롱하게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 무게로 우리 안에 있던 '악'이 잔인하고 무서우리만큼 무언가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아무도 완전히 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