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시 학교

계획서

계획은 참 멋집니다

by 꿈꾸는 momo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만들어낸 어떤 훌륭한 양식들은 점점 살이 붙어 거대해지고 너무나 그럴싸해진다. 이 계획서들은 하나 둘 종류도 다양해져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매우 피곤하다. 실행을 위한 고민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런저런 계획서를 완성하느라 보낸다.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 줄 알기에 생각하면서 일하지 않는다. 생각하면서 창조적으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면 몇 일로 끝이 나지 않을 양이다. 그저 작년 것과 조금은 다르게 바꾸기 위해 다른 자료에서 복사, 붙이기를 하거나 오리고 지우며 노련한 문서 편집 기술에 기댄다.


시대가 바뀌었다 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형식적인 업무들은 그대로인지(아니 양은 더욱 늘어나고 말은 더욱 세련되었다) 3일만 출근했을 뿐인데 매우 피곤하다. 컴퓨터 앞에서 혹사되는 눈과 구부정한 자세와 수없는 마우스 클릭에 마비될 것 같은 손가락. 자료를 요청하고, 제출하고, 의논하고, 질문하는 메신저는 띠링띠링 컴퓨터 앞을 떠날 수가 없게 만든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아이들의 이름을 훑어 부르고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까,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시간은 정녕 사치인가. 그나마 개학하고 몰아치듯 정신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답답하고 씁쓸한 일이다.


단축키를 잘못 눌러 한글에서 영어로 변환되어 버리는 순간마저 울컥 사소한 짜증이 밀려드는 피로감 속에서 내 자식과 집안일은 도무지 생각할 틈이 없다는 건 다행인 걸까. 어쨌든 난 3일 만에 학교라는 공간에 다 적응된 거 같다. 참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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