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건강하면 좋겠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를 졸라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리 오래 다닐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1년을 배웠나, 나는 체르니 30번을 다 못 끝내고 그만둬야 했다. 아마 그때 이후로 피아노를 칠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쯤 손가락은 다 굳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행운이었는지 몰라도 갑자기 반주자가 없던 이유로 다니던 교회 주일학교 반주를 내가 맡아했다. 적을 때는 고작 10명 남짓 모이는 작은 시골교회였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코드표 하나 모르던 나는 대예배 반주를 맡은 언니 어깨너머로 코드를 배워가며 어설프게 교회음악 반주를 익혔다. 그냥 딱, 노래 부르기엔 불편함이 없는 그 정도. 그러다 복잡한 악보와 코드가 눈 앞에 보이면 건반 위의 손가락은 갈 길을 헤매기도 했다. 아예 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하는' 축에 속하겠지만 웬만큼 배운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운 수준인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항상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피아노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항상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조용했다. 언제나 얼굴이 붉었다. 친구들이나 선생님, 주위의 어른들은 언제나 잘한다고 칭찬했다. 공부도 잘, 음악도 잘, 그림도 잘... 하지만 그게 정말 그렇지 않은 것을 나 스스로 너무 잘 알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주위의 칭찬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1등을 하고, 어쩌다 상을 받은 것 같은데 주위 사람들에겐 그것이 내 실력으로 인정되니 더욱 불안해지는 심리. 누군가에게 그런 내 마음을 말하기라도 하면 잘난 체 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진심으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그랬다. 우물을 떠나 큰 강으로 영역을 넓혔을 때 그 불안했던 사실이 진실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자유롭기보다 더 어렵고 낮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얼굴은 더 붉어졌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첫째는 이런 나를 참 많이도 닮았다. 해보면 잘하면서도 나서길 주저하고 늘 못한다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울상이 된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못하니까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거라고,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라고 응원한다. 그러니 요즘은 뭘 하나 만들었다 하면 이렇게 질문한다. "엄마, 내가 우리 집에서 최고예요?" "엄마, 나 정말 잘해요?" 혹시나 과한 칭찬이 잘못된 자아상을 만들까 싶어 다르게 대답해준다. "혼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멋진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 대단해." "네가 만족스러워하니까 엄마도 기뻐. 훌륭해." 하고 말이다.
마흔이나 나이가 먹고야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스스로가 기대하거나 남이 바라보는 나를 벗어나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 말이다. 여전히, 좀 더 잘해서 인정받고 싶거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조차 내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겁게 하면 그만이다. 이 순간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잘 못하면 잘할 때까지 하든지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 된다. 중요한 것만 잃지 않고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