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따뜻한 힘을 얻는 곳

by 꿈꾸는 momo

아주 어릴 적 외갓집은 하동 최참판댁 같은 대문이 있는 한옥이었다. 아마 그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어도 어린 내 눈에 외갓집은 꽤 멋졌던 것 같다. 배곯고 살던 시절에도 곡식을 재어놓고 살며 머슴들을 부리고 살았다고 하니 부잣집이라 할 만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황톳빛 돌담을 어깨 삼아 떡 하니 서 있던 큰 대문 앞에 다다르면 힘들었던 여정도 잊은 채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넓은 마당과 뽕잎 냄새가 가득했던 누에고치 방, 아랫목에 앉아 빚던 송편과 따끈따끈했던 감자. 무엇보다 살갑게 우리를 반기시고 아끼시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때문에 그곳에서 쌓였던 기억들은 포근하고 알록달록하다.

외갓집 가는 길은 참 구불구불하고 힘들었다. 지금은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그때는 버스를 타고 한나절이나 걸려 갈 수 있었다. 외갓집에 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은 아니어서 가기 전부터 한껏 설레었지만 가는 도중에는 그 마음이 댕강 꺾이곤 했다. 푸른색 완행버스의 덜컹거림과 잦은 정차는 우리를 새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먼 산을 보아도,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이마셔도 시각정보와 다른 평형감각의 작동은 두뇌의 오류를 일으키고 결국은 위장이 신호를 보내왔다. 울렁거리다 싶다가 혀끝에서 귀밑까지 싸해지며 식은땀을 동반하는 이 긴장은 외갓집을 가는 과정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귀밑이 바짝 긴장해 신물을 쏟아내면 나는 잔뜩 목구멍을 눌러 빠르게 침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면 조금 가라앉기도 했지만 가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엄마도 나도 결국은 예비된 비닐봉지를 쓰고 나서야 외갓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서워서라도 오래 머물고 싶은 외갓집.


외갓집 동네는 구석구석 신나는 일들이 가득했다. 여름에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겨울이면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썰매로 얼음을 지쳤다. 여름날 저녁에 평상에 앉아 수박이라도 먹고 나면 외할머니는 마당에 핀 봉숭아 꽃과 잎을 뜯어 돌판에 찧고 백반을 섞어 우리들 손톱에 올려주곤 하셨다. 그러곤 학종이 만한 비닐을 손가락 끝에 감싸고는 명주실로 돌돌 말아 떨어지지 않게 싸매 주셨다. 그 작업이 끝날 때 즈음이면 해는 저물고 마당에 어둠이 깔리면 어느새 까만 밤에 별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꽁꽁 묶은 실 때문에 저릿저릿해져 있는 손가락을 느끼며 실을 풀고 나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은 첫마디까지 바알갛게 물이 들어 있곤 했다.


그곳이 참 좋았었는데 무슨 일로 외할머니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하셨다. 마산, 바다 냄새가 나는 어시장 안의 2층 건어물 가게가 외갓집이 되었다. 지난번보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시외버스를 타면 멀미를 했다. 좁은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엄마 꽁무니를 따라 바쁘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길을 접어든다. 물기와 악취가 섞인 길바닥을 보며 걷는 것은 차멀미를 다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지만 그래도 외갓집에 도착하면 싹 괜찮아졌다. 건어물들의 짭조름한 냄새가 오히려 침샘을 자극했다. 평소에 절대 못 먹는 도톰한 쥐포와 오징어를 턱이 아프도록 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쥐포를 세어 넣고 포장하는 일도 거들곤 하였다.


마지막 외갓집은 방이 세 칸인 마산 외곽의 주택이었다. 해가 드는 창이 가려지고 외부로 다니는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에 노출된 집이었다. 외할머니 말로는 그 많던 재산을 자식들 빚 정리에 다 썼다는데 나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단지 '노름'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유독 넌더리가 난다 하시니 자식 중 누군가 애를 많이 태웠구나 싶을 뿐이다. 그래도 외갓집은 항상 따뜻했다. 우리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빼꼼히 열어둔 문과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 그리고 외할머니의 반가운 목소리와 얼굴. 하지만 언제나 묵묵히 미소만 지으시고 우릴 지켜보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시고 난 후부터는 외갓집이 많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세간살이는 낡아지고 버리지 못한 물건들은 쌓여갔다. 결국 피곤한 얼굴로 딸의 집으로 들어온 외할머니의 얼굴은 예전보다 많이 주름지고 까매지셨다. 나의 엄마 집으로 들어오신 외할머니는 몇 달을 한 방에서 잠만 주무시는 듯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빌리면 혼자 지내며 선잠만 자던 잠을 포식을 했다고 하셨다. 키가 작아진 듯한 외할머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의 따뜻한 말들과 품이 여전해서인지 엄마 집은 전보다 더 밝아졌다. 떠나고 오는 손에게 앞서 친절하고 반가운 얼굴로 서 계시니 발길 하는 이들이 모두 더 좋아했다.


친정에 가는 길은 꼭 외갓집에 가는 것 같다. 하긴, 아들 녀석들에게 그 집은 외갓집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마냥 놀아주고 웃어주는 이는 외할머니보다 나의 외할머니시다. 딸 한 명 없는 날 측은하게 생각하시다가도 귀띔으로 꼭 해 주시는 말이 있다.


그리 애를 태워도 뒤돌아선 뒤통수가 예뻐 보이더라. 내 눈에는...


멀리 있는 두 딸들이 자주 내려와 보고 가지만 가까이 있으면서도 발걸음 없는 두 아들이 더 맘 가는 외할머니다. 그리 애를 태워도 예뻐 보이더라 하시는 외할머니는 정말로 아들을 사랑했나 싶다. 사랑스럽기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구나 싶다. 그렇게 사랑할 줄 아시니, 그 마음 그대로 온전히 따뜻하구나 싶다.


내 키가 많이 작아진 날에, 나도 누군가를 반길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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