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늦은 등교 개학으로 치면 아이들을 만난 지 고작 한 달 남짓인데(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일주일에 두 번 등교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학교를 온 것인데) 목이 쉬는가 했더니 입 안이 헐기 시작했다. 한두 군데 생긴 염증이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사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될, 딱 좋은 핑곗거리가 있는 셈이다.
거. 리. 두. 기.
아이들이 어울려 놀기 전에 미리 아이들 사이를 떼놓고 마스크 착용을 제대로 안 하냐고 아이를 호되게 꾸짖는 일(범생이들은 마스크도 잘하고 있다)은
거리두기의 핑계로 적절히 문제행동을 예방하거나 수정하는데 딱 좋지 않는가.
어쨌든, 아이들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있다. 낯선 저 경계 너머의 파도가 나를 덮칠까 하는. 그 기세에 먼저 위축되어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책의 경계를 이용해 그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한 작가의 그림책에서처럼 나는 파도가 보이는 경계를 기웃거리고 있다.
선생님 우리 아빠는 2주에 한 번씩 오는데요. 그때마다 피자를 먹어요. 저는 피자 먹는 게 제일 좋아요.
엄마 얼굴도 기억 못 하는 A. 아직도 방황하는 아버지, 고모네 집에서 사는 A의 손톱은 하도 물어뜯어 울퉁불퉁하다.
항암치료 5차.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칼이 다 빠진 B의 엄마를 잠시 뵈었다. 뼈 전이까지 되었다는 B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신다. 잠시 내 손에 있던 것을 쥐어주고 나서도 한참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우두커니 섰다. 안아 드리고 싶었는데.
나는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동생들 때문에 맨날 혼나요.
가족의 생활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활동시간, C는 아빠를 다른 공간에 그려 넣고 동생들이 보는 TV를 같이 보고 있는 자기를 그렸다. 엄마는 언제나 셋을 돌보느라 바쁘게 서있단다. 부정적인 감정표현이 일상적인 C는 치료적 차원에서의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던 아이 D에게는 조용히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고 작은 목소리의 답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업하는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한 적도, 주어진 과제를 제때 한 적도 없다.
이 곳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곳인가. 오늘만 해도 이렇게 수많은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찌르고 간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계속 보이고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될 거리를 좁히게 된다. 구내염이 낫지를 않는다.
아이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적당한 거리에 의해 통제되었던 아이의 불편한 감정들이 쉽게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정을 다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의 일로 학부모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이야기하게 될 때, 아이를 도우려고 하는 말들이 오해를 사거나 불편한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그 파도를 안다. 나를 덮쳐 버릴 수도 있는 그 피곤함과 불편함을 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으로 경계를 바라본다. 이미 그 경계를 넘어 파도를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파도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구내염도 얼른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