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선으로, 시선집
새 학기의 교실은 들뜬 긴장감이 일렁인다. 교사와 학생 사이는 물론이고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관찰과 묘한 신경전도 펼쳐진다. 2020. 5월. 아이들과의 대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체 인원의 1/2 등교에다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때문인지 더욱 서먹서먹한 분위기. 몸으로 부대끼는 놀이와 모둠활동이면 단번에 친해질 아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뚝뚝 떨어져 앉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향적인 아이들 가운데는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도록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고 있는 아이도 있다. 아이의 마음을 글로 읽으면서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점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은 "책"이었다.
대면 수업의 첫 프로젝트. "시와 친해지고, 친구와 친해지고" 란 주제로 시작했다. 글밥이 적은, 시라면 2학년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읽을 것 같았다(독서량이 많지 않고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 다수인 학급이었다). 한글이 늦어 읽기가 완전하지 않은 아이도 2-3명 있는 터였다. 먼저 교과서에 나온 시들을 한 번 훑고(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만 골라)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아이들이 직접 쓴 시들도 읽어주었다. 이렇게 여러 시들을 읽어주며 시를 느끼게 하는 활동을 "시 맛보기"라 불렀다.
처음에는 읽어주는 시를 눈으로 따라 읽으며, 그다음은 한 줄 평 정도로 자기 느낌을 썼다.
'어? 시가 어렵지 않네?! 재미있다. 나랑 비슷한 경험인데?'
아이들은 아이들의 눈높이로 쓴 시나, 또래 아이들 시를 들으며 눈빛이 달라진다.
시에 대한 감각이 생겨날 무렵, "같은 책으로 같이 읽기" 활동을 했다. "온 작품 읽기(신수경 외/ 북멘토)"라는 책에 소개된 "글자 동물원(이안/문학동네)"이라는 시집을 28권 준비했다.
1차시 수업에는 교실에서 같은 시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눴고, 등교하지 않는 날(전체 인원의 1/2 등교로, 일주일에 2번 등교하던 상황), 과제로 나머지를 읽기로 했다.
읽은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2편 골라 자기만의 시선집(글쓴이가 다른 시들을 엮어놓은 시집)을 꾸며보는 활동을 하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는 등교하는 날 발표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고른 시를 살펴보며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시를 뽑아보기도 했다.
"나도 그 시가 맘에 들었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고른 시와 같은 시를 발표하면 뭐가 그리 좋은지 반달눈이 되어 웃었다.
아이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보고, 써보고, 발표하면서 시를 좀 더 깊이 만났다. 앞으로 만나는 시들 중 마음에 드는 시는 자신의 시선집에 채워 보기로 하고.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시들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마늘 묵찌빠
-이안-
마늘은묵
묵을넣고
묵을찧자
묵을넣고
묵을빻자
쿵콩쿵콩
묵을찧자
에효매워
묵을빻자
글썽글썽
찧자빻자
쿵콩쿵콩
찌로ㅎ을
찧자찧자
쿵콩쿵콩
빠로ㅎ을
빻자빻자
쿵콩쿵콩
찌빠만세!
말놀이가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많이 선택한 "마늘묵찌빠"는 읽으면서 다같이 흥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 시 하나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