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기
우리의 첫 프로젝트는 '가족'이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을 대면하지 못한 채 전화상담으로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반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한부모나 다문화 가족은, 어른들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주변을 보는 시각이 넓어지면서 주위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느낀 아이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엄마, 이혼이 뭐야? 아이의 질문에 당황해서 답을 못했다는 어머니. 아이의 엄마가 한국사람이 아니라서 교육을 걱정하는 아버지. 엄마는 죽었다고 알고 있는 한 아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다른 친구와 달라 보이는 우리 가족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야 했다. 엄마가 베트남에서 왔다는 사실이 때론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야 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음을 응원해 줄 수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곁을 지키고 함께 하는 가족이 있음에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먼저, ‘가족 백과사전’이라는 그림책을 선택했다. 연예인 신애라 씨가 번역한 책으로 유명하다. 참으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가족은 구성원의 형태뿐 아니라, 사는 모습도 다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와 주변의 이야기들도 함께 엮어간다. 엄마, 아빠 이야기만 나오면 살짝 주눅이 들어 고개를 떨군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눈을 마주친다. 그래, 괜찮아. 너희 잘못이 아니야. 우리는 눈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이야기의 힘이 필요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그림책을 골랐다. 황선미 작가의 동화책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서 원작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나온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어려워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대부분 진지하게 참여하였다. 족제비에 빙의되어 장난을 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너무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가족은 구성원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과 신뢰로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사랑을 가족으로부터 누린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 것이다. 사랑을 받으면서도 힘을 얻지만, 사랑을 주면서도 힘을 얻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짧은 편지도 써보았다. 그리고 책 속 장면들 중 기억에 남는 것으로 작은 액세서리도 만들어 보았다. 중요한 장면 몇 컷을 출력하여 일의 차례에 따라 열거해보고 짧게 요약하는 활동도 하였는데, 우리 반 아이들 수준에는 조금 힘든 과제이기도 했지만 두 세명을 제외하고는 잘 소화해 내었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나니 아이들의 ‘쓰기’ 실력이 한 계단 올라간 것 같다. 2주가 걸린 수업을 마치고 한 아이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수업이 끝이 났다. 너무 아쉽다. 잎싹이 죽는 장면이 기억난다. 하늘을 보고 있는 게 너무 슬펐다. 다음에 또 이런 수업이 있을까.
‘가족’이라는 주제의 통합교과와 국어교과를 통합하여 재구성한 수업이었다. 교과서의 흐름 그대로를 따라가면 아이들이 온전히 감동하는 경험을 했을까 싶다. 아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읽고 물음에 답하면서 인물의 마음이나 일의 순서를 알아보고 넘어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