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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학교

학기말

먼지만 쌓여있다

by 꿈꾸는 momo

학기말이다. 반쯤 잘려나가 연필로 숭숭 구멍을 낸 지우개가 몇 개씩 돌아다니고 그걸 주울 생각을 아무도 않는 학기말. 먹다 남은 우유 서너 개쯤, 모른 척 우유통에 담겨있는 학기말. 너덜너덜해진 이름표만큼 내 감정도 그렇다. 사물함 밑으로 빗자루를 넣으니 수학 시간에 안 보이던 큐브조각 몇 개와 수많은 색연필들이 검은 먼지 덩이 사이에서 뒹굴고 있다. 그래, 이제 묵었던 먼지도 떨어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구나.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무기력하게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와 산만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와 한글을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 그리고 산만한 아이를 좋아하는 더 산만한 아이. 아이들은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왔다 갔다.


걷는 걸음도 뛰는 듯한 게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쩜 다 늙어 기운이 모자란 노인처럼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웃을 수가 없다.

부의 양극화, 그리고 교육의 양극화.

자기 물건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먼지 구덩이 속에 뒹굴게 만드는 녀석들의 미래가 나는 무척이나 숨 막힌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 학년을 올려 보내는 마음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과연 누가 이런 곳에 끝까지 남아있으려 할까. 그리고 누가 그것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나는 도망치듯 내 짐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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