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by 꿈꾸는 momo

컴퓨터를 켰다. 습관처럼 로그인 비번을 눌렀다. PC 점검 프로그램이 뜨면서 윈도우 비번을 다시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그 창이 여태껏 보던 창과 달라 생소해서 그런지 몰라도 잠시 멈칫했다. 내가 아는 비번을 눌렀다. 패스워드를 재입력하십시오. 3회 모두 틀렸다. 완벽하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나는 한참 커서가 깜빡이는 창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뇌의 신경에 과부하가 걸린 걸까, 아니면 뇌세포의 퇴행일까. 일시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는 겪어본 사람이면 안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기억.


어머니 성함이 뭐지?


그때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 누군가 엄마 이름을 물었다. 엄마 이름. 나는 당장 말할 것처럼 미소로 시작해 입을 열었지만 그게 다였다. 갑자기 엄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 이름이...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한 걸 보면 내겐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엄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지. 엄마에게 미안했고 죄스러웠다.


교대 시절, 피아노 테스트 시간. 외웠던 악보를 교수님 앞에서 연주해야 했다. 몸이 기억할 만큼 많이 연습하지 못했던 게 나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어쩜 그리 깡그리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외우던 선율들이 건반 앞에서 하얗게 날아가 버리더라. 건반에 양손을 올린 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하얀 기억들이 하나 둘 있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는 그런 특별한 기억의 기억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하얗게 잊어버리니... 언젠가 모든 게 하얗게 되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다. 사는 것에 더욱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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