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살아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수술후 회복하는 동안 아이들을 떼어 놓아야했다. 첫째는 지인의 집에, 쌍둥이들은 친정에 맡기기로 했다. 쌍둥이들도 잠시 서로 다른 곳에 나눠 맡기는 건 어떨까도 고민했지만 친정엄마가 완강히 반대하셨다. 힘들어도 같이 키워야 한다며... 그렇게 10개월 쌍둥이들은 친정에 맡겨졌다. 친정에 외할머니께서 동거하시니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모유를 먹던 아이들은 젖병을 빨았고 한 녀석은 할머니, 한 녀석은 왕할머니 등이 요람이 되었다. 한 달만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다.
"절대 무거운 거 들면 안 됩니다. 아기는 아빠에게 맡기세요." 주치의는 퇴원을 하는 내게 신신당부하듯 말씀하셨다. 그것은 둥이들을 곧장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폐 조직 한 점 정도 떼내는 수술이라 알고 계시는 어른들께는 뭐라 말을 해야 하나.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당장, 너무 아팠다. 퇴원 후 나는 번데기처럼 드러누워 꼼짝없이 수일을 보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한달이 지나고야 남편과 함께 친정을 향했다. 감기를 조심해야 해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잦은 기침으로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기억할까. 걱정과 그리움이 섞여 마음이 어지러웠다.
업혀있던 아이들을 내리며 포대기를 푸는 친정엄마와 외할머니의 손끝에 반가움이 일었다. 아이들은 개구리처럼 폴짝이며 기어와 한 달만에 마스크를 끼고 나타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한 아이가 울면서 내 무릎으로 기어와 손을 뻗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팔을 뻗어보았지만 내 입에선 '악' 하는 소리가 먼저 나왔다. 등뒤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놀란 친정엄마는 아이를 덥썩 안아 자리에서 멀어졌다. 모두 눈이 발개져 있었다. "오래 있으면 아이들이 힘들겠다. 걱정말고 얼른 가서 쉬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둥이들은 다시 할머니들 등에 업혀 차에 타는 나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묵직한 것이 목구멍으로 계속 밀려 나왔다. 아이들의 입가와 발목에 번진 아토피에 미안하다가, 조금도 쉴 틈 없을 친정 엄마와 외할머니께 미안하다가, 그래도 이렇게 살아지며 지나가는 시간에 감사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을 당하니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시간에 적응하고 있었다.
손 잡아준 이들 덕분에
엄마와 외할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눈 앞이 캄캄하다.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첫째를 챙겨주신 선배부부는 아이를 위해 삶의 패턴까지 바꿔주셨다.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은 낭패감이 들었던 순간에 결코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둥이들의 첫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케잌을 두 개 사서 친정으로 보내준 진이 언니, 내가 먹을만한 것들을 챙겨와 한걸음에 달려오는 영아 언니, 바쁜 일상들을 쪼개어 나를 찾아오는 걸음들과 안부들에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 마음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혼자일 수 없었던 존재였다. 나를 둘러싼 사물들과 사람들, 그 총체적인 에너지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 뿐.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석 달만에 완전체가 되었다. 둥이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 걸음마를 뗐고 혼자 젖병을 들고 먹었다. 첫째는 어제도 바로 내 곁에 있었던 아이처럼 웃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한 그날 밤, 아이 셋은 한방에서 뒹굴다 잠이 들었다. 잠든 셋을 지켜보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