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잇다
밥상을 차리다
요리는 물론, 음식을 차리는 것조차 버거웠던 순간에는 식자재 또한 낯설었다. 오이, 당근, 양파, 마늘, 모든 것이 그저 문자와 이미지일 뿐이었다. 누가 해준 음식을 먹거나 사 먹었다. 내 영역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사서 먹는 반찬은 그 양이 많지도 않지만 한두 번 젓가락질이 오가다 다시 냉장고로 들어갔다. 그렇게 냉장고로 들어간 반찬은 결국 며칠 뒤에 음식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냉장고는 음식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먹을 수 없게 될 때까지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이 미련한 행동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박한 요리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요리할 만큼 컨디션도 좋아진 게 분명했다. 내 영역의 부활과 동시에 요리의 과정이 제법 신선하고 즐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식자재들의 신선함과 인사하는 순간이 기분 좋았다. 계란말이를 하기 위해 깨뜨린 알들 위에 살짝 소금을 뿌렸다. 친정에서 공수해 온 신선한 알들이다. 탱글탱글함이 살아있어 잘 풀리지 않는다. 이제 끝물인 오이는 모양이 외틀어지고 작다. 하지만 밭에서 갓 따온 오이의 달콤함과 아삭함은 더위에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송당 송당 썰어 양념에 절여주면 여름내 나의 입을 즐겁게 해 주는 오이소박이가 완성된다. 보통의 양파보다 더 달콤한 자주 양파를 채 썰어 물에 담가 두면 아린 맛이 빠져 아이들도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자줏빛이 층층이 어우러진 양파의 속살이 매혹적이다. 참 소박한 밥상이다. 하지만 이 단출한 집밥이 사 먹는 음식보다 따뜻한 이유는 식자재를 준비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엄마, 계란말이 더 먹고 싶어요! 맛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찬가게에서 사 온 계란말이가 훨씬 더 예쁜데도 아이들은 내가 해 주는 걸 더 잘 먹었다. 알의 신선함 때문인지, 조심스럽게 지단을 굴리는 나의 정성 때문인지 언제나 일찍 동이 난다. 미각의 만족과 감사의 말, 다음에 대한 약속이 오가며 밥상은 더 풍성해진다. 밥은 서로를 이어주는 마력의 매개물이다.
나를 키워 준 밥상
밥벌이를 위해 아버지는 가축을 키우셨고 어머니는 옷을 지으셨다. 이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를 그때는 몰랐다. 가게를 하던 어머니는 언제나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셨다. 내가 아침에 잠에서 깰 즈음이면 어머니는 나갈 채비를 끝낸 후였다. 어떨 땐 어머니 얼굴을 못 보고 학교를 가기도 했다. 부엌에는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감자볶음이나 계란 프라이, 분홍 소시지나 어묵 조림 같은 반찬 한 가지와 김치 정도였다. 그날 아침상에 오른 반찬은 어김없이 도시락 반찬이기도 했다.
나에게 집밥이란,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밥' 정도였다. 아니, 밥은 꼭 집에서 먹는 건 줄 알았다. 외식할 만한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시골의 정서가 그랬다. 그런데도 참 희한한 게, 집밥을 떠올리면 식어 있는 반찬들로 혼자 먹던 밥 말고 온 가족이 함께 먹던 밥상이 그려진다. 대부분 저녁 시간이었던 것 같다. 늦은 저녁이지만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요리를 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참 좋았다. 집에 어머니가 같이 있다는 것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치 캔 하나 툭 털어 넣고 두부를 잔뜩 올린 김치찌개, 돼지기름에 익은 양파 가득한 두루치기 한 접시 같은 소박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앉은 밥상은 늘 화기애애했다. 우리는 밥공기와 냄비 바닥이 다 보일 때까지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은 양념에 밥을 싹싹 비벼 깨끗하게 밥공기를 비워 내기까지 서로의 하루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나중에 4층 집을 지어 같이 살자 하던 나의 말에 정말 그리도 될 것처럼 각자 집의 구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 아버지의 미소를 기억한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쌍둥이를 맡기고 폐암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날 부모님은 그리도 우셨다. 나의 검진 결과 앞에서도 놀란 내색 없으시던 두 분이셨다. "내가 네 엄마를 고생시켜서 그런 거야. 너를 뱃속에 가지고 있을 때." 아버지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먹여서 그런 거야. 제대로 된 밥상이나 차려 줘 봤어야지." 어머니가 울먹이시며 말씀하셨다. 두 분의 고해성사 같은 말에 화를 내듯 나왔지만 자식의 아픔마저 떠안으시려는 두 분 때문에 내내 마음이 아렸다. 나를 키운 밥상은 따뜻했고 소중했다고, 언젠가 꼭 따뜻한 밥상으로 보답하리라.
밥은 마음을 잇는다
부모님들은 학교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제일 궁금하시겠지만 아이들은 식단표를 제일 궁금해한다. 알림판에 식단표가 붙어 있지 않으면 언제 나오냐고 성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식단표는 붙인 지 얼마지 않아 너덜거린다. 오늘은 아이들이 건의했던 ‘마라탕’이 나오는 날이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그것이 수용되었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은 행복하다. 행복함으로 묶인 아이들의 점심식사는 얼마나 맛나겠는가! 그 밥이 또 한 뼘 아이들을 자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