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계절

스러지는 것들과 자라는 것들

by 꿈꾸는 momo

첫째의 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둘이서만 공연을 보러 나섰다. 잔뜩 흐리고 차가운 날씨 탓인지, 선물로 산 장난감 때문인지 아이가 안 가겠다고 변덕을 부린 뒤였다. 당일 예매취소는 불가했고, 누군가에게 얼른 양도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안 되었다. 결국 우리는 예매를 하던 처음 마음과는 다른 마음으로 차를 탔다. 공연은 의외로 좋았다. 우리는 자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공연이 끝난 시간이 5시쯤 되었나.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이 공원을 비췰 때, 우리는 잠깐 걸었다. 바람이 제법 찼다. 희뿌연 억새들이 바람을 타고 나부대었다. 아마도 이 바람결을 따라 꽃씨들이 흩어지겠지. 억새들은 생명을 흩뿌리며 마지막 삶을 바람에 맡긴다. 겨울이 오니 곧 땅에 스러질 것이다.


지난여름에 짝을 찾지 못한 매미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난감 태엽이 고장 난 것처럼 뒤집어져 얼마간을 빙빙 돌며 마지막 울음을 짜내던 매미가 너무 안쓰러워 한참을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랜 기간을 기다려 성충이 된 찬란한 여름, 폭포수처럼 강렬하게 울어대었을 그것이 구애의 결실을 얻지 못한 채 스러지다니, 너무 슬펐다. 벚나무 잎이 노랗게 떨어지는 가을의 길목이었다.


스러져가는 것들이 보이는 어느 계절의 마지막과 시작은 그래서 언제나 숙연해진다. 바람이 달라진 틈에 몸이 휘청거리는 것도 이런 마음 때문일까.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온다. 회갈색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가로수들 틈에서 이른 저녁노을을 위로 삼아 도로를 달린다. 곧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는다. 아이는 따뜻한 차 안 공기에 잠이 든다. 사물의 색이 사라지고 형태만 희미하게 보인다. 눈이 침침해져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인다. 점점 자라는 아이와 점점 흐릿해져 가는 나, 그렇게 또 다른 계절이 오고 있다. 낯선 시골길을 달리는데 논두렁에서 지푸라기와 검불들을 태우는 냄새가 가득이다. 곡식을 털어주고 남은 저것들의 마지막도 저렇게 사라진다. 그 냄새가 정겹고 편안해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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