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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학교

9.4 공교육 멈춤의 날

우리가 추모할 것

by 꿈꾸는 momo

밤늦게 전화벨이 울렸다. 준이 엄마였다. 이 시간밖에 통화할 수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한다 했다. 오늘 학원에서 같은 반 아이에게 준이가 당한 이야기를 하시며 몇 개월간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교문 앞으로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갈 생각이라고, 그전에 나한테 알리는 게 도리란 생각에 전화를 하셨다는 거다. 일단 내일 학교에 가서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고 상황을 정리한 후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 했다. 어른들의 감정싸움이 될 수도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렸다. 밤새 신경이 쓰여 잠을 설쳤다.

다음날 나는 이 사건에 관련된 아이들을 하나씩 불렀다. 서로 조금씩 다른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건을 차근차근 정리해 갔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을 한 곳에 앉혀 놓고 함께 문제 상황을 찾았다. 그리고 얽힌 오해와 감정을 말하고 사과했다. 아이들은 웃으며 돌아갔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는 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가해자가 된 별이의 어머니께 이 상황에 대해 알려야 했다. 이미 별이는 준이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불편해한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별이를 고발하는 아이들이 찾아오고 별이 또한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신의 억울한 일을 토로하러 내 곁에 온다. 나는 수첩을 펼쳐 별이가 했던 문제행동의 날짜와 횟수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지도방향과 어머니께 드릴 협조사항을 꼼꼼히 기록했다. 소통에 소극적이던 어머니와의 통화경험에 긴장이 앞섰다. “여보세요.”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애써 더 경쾌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지금 별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상당히 놀라신 듯했다. 쳐져 있던 목소리가 긴장이 되고 말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어떡하죠 하고 걱정의 말을 이어가다가도 불쑥불쑥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괴롭힘을 당하고 온다는 하소연을 했고 아이 키우는 부모들끼리 이렇게 예민하게 해야 하나 격앙되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어머니의 감정을 받아주되, 초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기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머니의 감정과 시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거다. 한 시간쯤의 통화가 끝나고 녹초가 된 걸 보면 말이다. 별이 어머니와의 대화가 무사히 끝났지만 아직 준이 어머니와의 통화가 남아있었다. 다행히 좀 더 지켜보며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기다려주기로 하고 끝났지만 갈수록 아이들과 학부모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힘들다.



얼마 전 이 글을 쓰면서 어려웠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갈등이 없는 교실은 없지만 이 갈등의 골이 학부모까지 연결될 때 교사가 겪는 심리적인 파동은 크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도 큰 사건이 되기도 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관계에서 생기는 일이다 보니, 서로의 성향과 대응방식에 따라서도 문제해결이 달라진다.


학부모 민원이 없을 수는 없다. 이걸 다 차단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이 민원을 처리하는 창구가 따로 없고 곧바로 교사에게 연결된다는 게 문제다. 교사의 일이라는 게 '서류'가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것이기에 민원으로 인해 받은 심리적 압박이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에 분리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쳐야 할 '내용'을 가르치며, 그것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사'만큼 중요한 교재는 또 어디 있던가. 3월 초에 결정된 학급구성원에 대해 오롯이 담임교사의 역량과 책임으로 1년을 버텨가야 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구조적 결함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다. 그 과정을 겪어낸 시간과 경험과 힘이 부족한 '저경력 교사'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없었던 학교의 구조를 들여봐 달라는 말이다. 여전히 내 몫도 제대로 쳐내지 못해서 헉헉 거리며 버티는 선배교사로서 미안한 마음과 통탄한 마음이 든다.


서이초 교사의 49재 앞두고 추모집회에 대한 교사들의 목소리도 다양하다. 그것에 대응하는 교육부의 강경대응에 대한 반응도. 분열과 반목의 조장이 아니라 정말로 공교육이 회복되는 데 마음이 합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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