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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학교

책임 있는 자유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

by 꿈꾸는 momo

폐쇄적인 성격이 강한 교사 집단의 우울감이 교실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 같다. 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교육계를 바라보며 자칫 우리의 외침이 감정에 치우친 자기 방어가 되지 않길 우려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들에 대한 본질을,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이 본질을 위한 구조적 결함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음악시간, 리코더 2중주를 연습하기 위해서 계이름을 알려주고 임시표의 운지법을 가르쳤다. 나의 시범연주를 듣고 두 마디씩 따라 연주해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지시를 따를 줄 안다. 하지만 지시를 벗어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리코더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바른 자세와 텅잉 주법, 운지법, 리듬, 계이름을 익혀야 한다. 피곤한 것이다. 배우는 것에 흥미가 없다. 애당초 해보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3명 정도의 아이들이 삑삑, 소음을 내며 '리코더로 놀고' 있다. 지적하는 순간만 움찔하다가 그 행동은 반복된다. 22명이 지시를 따르지만 3명의 방해는 연주를 망친다. '함께'있는 공간에서 소수의 자유행동은 모두에게 불편함을 준다. 중요한 건 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낄낄거리는 마음'이 더 많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행동에 지적당한 아이는 리코더 구멍에 연필을 꽂아 넣으며 책상에 엎드린다. 교과서 끝을 말아 구기고 조금씩 뜯어내는 아이도 보인다.


"동물이 react 한다면, 인간은 act 한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행동의 특징은 어떤 목적을 향해 'act'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제자 폴 엉거 교수가 설명한 말이다. 자기 생존과 보호, 이익을 위해 반응하는 'react'가 아니라 사고를 거쳐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act'라고 한다는 것이다.

교육 잡지에 나온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수십 년간 옳다고 생각하는 규범, 법, 도덕, 가치를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외부의 규율이 아닌,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행동하는 경향이 많아진 시대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였다. 개인적인 안정과 행복이 중요한 세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교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체의 화합과 이익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우선시 된다.

"하기 싫어요." "어려워요." "저 친구가 이랬어요." 이런 아이들이 많을수록 모둠 협력수업은 제한된다. 모둠 협력과제를 하게 되면 공동의 성취감보다는 갈등감이 고조되기에 나는 수업방식을 매번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수업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교실의 학습분위기에 따라 수업방식은 의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자신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목표의식과 가치를 되새기게끔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 내면을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도록 도우는 일이 교사 혼자만의 역량으로 부족하기에 학교 기관이, 사회 기관이 협력하고 지원해야 하는 필요를 다시 한번 되짚게 된다. 사회 전체가 이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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