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학교

선생님, 안 힘드세요?

by 꿈꾸는 momo

점심시간, 우연찮게 홀로 내 앞에 앉은 금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안 힘드세요?"

울 뻔했다. 치부를 들킨 것 같았다. 누구보다 조숙하고 예민한 금이는 불편했던 거다. 내가 불편해하는 남자아이들을 누구보다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는 챘지만 금이에게서 직접 듣는 느낌은 달랐다. 그리고 미안했다. 일 년 내내 그걸 참아준 게. 올해 첫날, 같은 반이 된 A 때문에 반을 바꿔달라 난리를 쳤던 아이다. 반이 발표 나고 나서 학부모가 찾아와 금이가 쓴 편지를 보여주며 긴급회의까지 했었다. 전례 없는 요구는 성사되지 않고 그 짐이 오롯이 나에게 넘어왔지만, 금이는 다행히 A와 그럭저럭 무탈하게 지냈다. A에 맞먹는 B, C, D, E까지 가세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금이가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가끔 독기가 가득 서려있다.


"선생님은 왜 화를 안 내세요?"

선생님의 무능을 탓하는 것인가 하고 아이의 질문을 계속 머릿속에서 굴렸지만, 아이의 눈빛은 진심 나를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불편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고, 교실 내 자리를 이동시켜 분리를 하고, 남겨서 성찰지를 쓰고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다짐을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녀석들의 행동을 떠올리며 나는 영혼 없이 말을 뱉었다.

'화를 안 내어서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만...'

'화를 냈으면 녀석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까...'

'결국 내 무능인 거 같아...'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작년 한 해는 힐링 같은 해였는데, 그래서 내가 처음에 너무 맘을 놓았던 건가. 철없는 녀석들을 통제하고자 온갖 방법으로 머리를 굴리며 하루하루 버티다시피 하고 있는 나를 아이는 읽었던 거다. 비단 금이뿐이랴. 온몸으로 애쓰는 내가 안쓰러워서 그래도 착하게 따라와 주는 남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방학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그냥 놓고 싶었지만 끈질기게 전략을 짜 움직였던 2학기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그만큼 분주했다. 뭔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는데 조용히 속앓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없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번 한 해는 아픈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이걸 넘어서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겠다.


일주일만큼은 모든 아이들의 마음이 새털같이 가볍게 풀어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디어를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