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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Jan 15. 2024

이사

추억의 흔적을 남기고

이사를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18년 동안 살았던 곳을 정리하고 도시로 나왔다. 도심의 변두리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계약서를 쓰던 날, 부동산 사장님은 “6개월 만의 매매”라 하셨다. 사려는 사람이 나와서 다행이라 여기고 그분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촉박하게 이사날짜가 정해졌다. 묵었던 짐들을 단 열흘 만에 꺼내 정리하는 작업은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당근, 이별의 정거장

모조리 버려두고 가면 폐기물 수거비가 어마할 것 같았다. 낡은 좌탁과 수납장, 전자제품, 그리고 구석에 박혀 있던 물건들을 당근에 올렸다. 사용도 않던 당근 앱이 바빠졌다. 어떤 것은 싼 가격에, 어떤 것은 나눔으로 올렸다. 추억이 있는 물건들 중 이별하면서 뭉클했던 물건은 내가 유화를 배우며 처음으로 완성했던 모작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표구작품으로 만들어주신 내 그림을 누가 관심이나 가지려나 싶었지만, 버리기는 싫어 당근에 올렸더니 7초 만에 당근이 울렸다.

그분의 처음 반응도 감사했지만 실물로 받으니 더 예쁘다며 커피쿠폰까지 보내주셨다.

첫 유화작품

이별하는 것들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누군가의 손에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귀찮았지만(물건을 올리면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예약 중이라는 문구로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채팅에 답하고 물건거래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가격조정에 대응하는 일이 어찌 간단하다 하겠는가)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공간이 남긴 추억

이삿짐을 서비스 업체에 맡기고 공간을 둘러보며 이 공간에 가득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세월만큼 낡은 종이장판의 흔적조차 왠지 뭉클했다. 행거를 치우자 드러난 벽면을 보고 빵 웃음이 터졌다.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편에게 싫은 말 못 하고 벽화로 남겼던 서른 즈음의 내가 귀엽다.


새집, 채울 것들이 많다

급히 이사를 해서 새집에 부족한 것들이 많다. 아직 정리도 다 못했는데 추가할 시공이 있어 3일을 집을 비워야 했다. 강제적으로 가족여행을 왔다. 피곤함이 누적된 상태라 여행조차 설렘 없이 떠나왔지만 바다를 보니 마음이 안온해진다. 잠시 한숨 돌린다. 이제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엮어가야 한다. 채우는 것들이 행복한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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