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제출할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선생님, 시간 되실 때 전화 한 통 부탁드려요.
영민이 어머니였다. 무슨 일일까. 미선은 근래 영민이의 학교생활을 돌려 감기 하듯 떠올렸다. 며칠 전 복도 청소가 제대로 안 되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일까. 미선은 한숨을 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선생님.”
통화연결음이 오래지 않아 영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영민이가 얼마 전에 현수라는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연락을 드려요. 학원에서 그 친구가 영민이를 이유 없이 툭툭치고 가나 봐요. 처음엔 실수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어제는 집에 와서 울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것 같다고요. 학교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는데 학원에서만 그런가 봐요. 저희 신랑이 학원시간에 맞춰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고 하는 걸 제가 말렸어요. 먼저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요.”
“아, 그래요? 학교에서는 없는 일이라 저도 놀랐네요. 자리도 떨어져 있고, 친한 무리도 아닌데... 얼마나 자주 그런 건가요?”
“처음엔 실수로 부딪힌 줄 알았대요. 부딪히고도 사과 없이 지나가서 좀 기분이 나빴다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넘어갔다더라고요. 그런데 어제는 고의로 하는 게 느껴지더래요. 제가 애가 하나뿐이라 그런지 몰라도 잘못도 없는데 당하는 건 너무 예민해지네요. 현수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요?”
“아, 어머니. 현수는..."
미선은 현수를 떠올리며 말을 하려다 이내 아차 싶었다. 더 큰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작년 한 해 뼈저리게 겪은 탓이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어머니. 내일 현수와 영민이 불러 한 번 이야기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네. 부탁드려요.”
살짝 감정이 격해진 영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선도 불편해져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다행히 영민 어머니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미선은 오자마자 영민을 먼저 불렀다. 어제 어머니와 통화한 대로였다.
"현수야, 잠깐 나와볼래?"
미선은 교실에 있는 현수를 불러 연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앉아 있던 영민의 표정에 긴장이 살짝 감돌았다.
"현수야, 학원에서 영민이랑 부딪힌 적 있어?"
미선이 물었다. 현수의 눈빛이 번쩍였다.
"글쎄요? 전 기억도 안 나는데요?"
"그래? 영민이는 현수가 두 번이나 치고 간 것 때문에 속상했나 본데, 현수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네. 영민아, 다음부터는 불편한 감정이 들면 그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말해야 한다. 일단, 영민이가 무엇 때문에 불편했는지 현수에게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직접 한번 이야기해 볼까?"
영민은 긴장된 얼굴로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가 지나가는데 네가 내 어깨를 툭 치고 가서 아프고 기분이 나빴어."
현수는 입을 비뚜룸하게 내밀더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영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과해 줘."
현수는 대답이 없었다.
"현수,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고 느꼈을 땐, 사과하는 거야."
미선은 답답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이게 불편한데요? 제가 불편하다고 하면 선생님은 사과하실 거예요?"
영민은 다짜고짜 미선을 향해 쏘아붙였다.
"뭐?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미선은 현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부딪혀서 아프고 기분 나쁘다고 하는데 미안하단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미선의 말에 현수는 영민을 보여 말했다.
"미안해. 됐지?"
1교시가 시작되기 5분 정도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긴 어렵다고 판단한 미선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됐다. 다음부턴 서로 조심하도록 하자. 같은 일이 없도록 말이야. 둘 다 교실로 가."
두 아이가 나간 연구실에서 미선은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멍하니 숨을 쉬었다. 그러곤 얼음 정수기에서 얼음물을 내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연구실을 나오니 복도 저 끝에서부터 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의 시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전조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