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풍경을 보며 내 삶의 풍경을 생각하다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 지난주 검사 결과를 보러 다시 서울행이다. 아픈 세 아이를 두고 가는 맘이 편치는 않았지만 맡길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자.
라디오에서는 Adele의 make you feel my love가 흘러나온다. 날씨와 참 잘 어울린다. 이렇게 살랑살랑 간지럽고 말랑말랑 부드러운 사랑고백이라니... 그러나 스무 살 같은 낭만에 젖기에는 밤잠을 설친 눈이 계속 무겁다. 그러나 잠은 들지 않는다.
봄이 날개를 달았나 보다. 산야에 봄기운이 넘실거린다. 고작 12색 크레파스를 쓰던 시절부터 각인된 연두색과 초록색은 단 한 가지인데 자연은 수없는 연두와 초록의 물결로 화려하다. 선명한 초록, 밝은 초록, 연한 초록, 진한 초록, 탁한 초록, 흐린 초록, 어두운 초록... 고목이나 바위에 낀 이끼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흰 초록(whitish green)도 있다지. 보태어, 잎들의 질감이 주는 다양한 느낌들이 내가 아는 초록의 영역을 넓혀준다. 폭신폭신한 초록, 까슬까슬한 초록, 부들부들한 초록... 오가는 내내 내 마음을 위로한 초록의 풍경. 연두와 초록의 잎들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은 햇살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흐린 날의 채도가 조금은 맘을 차분하게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삶의 빛깔도 시시각각 달라지며 어떤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겠지.
폐기능 54%, 폐 CT 이상소견 없음.
4시간을 걸려 올라가 2시간을 기다리고 5분 진료를 보고 나왔다. 진료실을 나오니 열차 출발 시간 20분을 남기고 있었다. 혹시나 그 다음 열차를 알아보니 좌석이 매진이다. 이 열차를 타지 못하면 꽤나 고생을 할 것 같았다. 뛰었다. 수술 후 처음으로 그렇게 뛴 것 같다. 병원 문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마음까지 재촉하며 역에 도착했다. 급히 차를 몰아주시는 기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승강장까지 뛰어가니 출발 4분 전이다. 아슬한 긴장감을 깨고 목표 달성의 쾌감을 맛보는 순간이다. 턱까지 차오른 숨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팔딱거리지는 심장과 가쁜 호흡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통증은요?
아, 그건 평생 간다고 봐야죠. 운동을 하면 폐기능이 개선될 여지는 있는데 이대로 쭉 갈 가능성이 높아요. 등산 같은 걸 해 보세요.
진료실에서 들었던 말들을 되새기며 내 맘에 정리해둔다. 새로이 내 삶의 풍경이 될 말들... 흐린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빨리 어둠이 짙어진다. 풍경들도 어둠 속에 갇힌다. 전화가 온다.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첫째, 둘째가 열이 다시 오르고 자신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다. 네 남자가 아프다니! 4월의 풍경을 이렇게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가. 이제 그만, 슈퍼엄마로 변신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아마 다음 검진을 위해 이 차를 탈 때는 창 밖의 풍경도 다른 빛깔로 변신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