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들숨과 날숨.
가슴 깊이 호흡을 할 때 갈비뼈가 켕기는 순간에 다다르면 다시 숨을 내쉰다. 내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긴장을 내려놓고 가슴을 지나 척추 마디마디에 에너지를 보내며 미간과 정수리까지 열어줍니다.
어떤 몽환적인 선율과 함께 요가 강사의 담백하고 차분한 멘트가 진행된다. 왜 난 요가 강사의 멘트를 듣고 있으면 닭가슴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한 숨에 뱉는 말이 너무 길다 보니 침이 마를 정도로 퍽퍽해진 소리를 뱉어내서 그럴지도... 일정한 톤으로 유지되던 소리는 문장의 끝에서 바닥 깊숙이 떨어진다. 툭 하고 긴장된 근육을 이완하듯. 난생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는 이 분위기가 우스울 만큼 낯설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해야 요가 강사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보다 말이 빠르거나 말이 느려도, 또는 일상의 언어나 말투라면 그런 느낌이 사라질 것 같다. 이런 시답잖은 생각까지 하고 있다니, 이제 살만한 가 보다. 내가. 요가강사가 입고 있는 옷이 이쁘다. 루스한 검은색 티셔츠와 화려하지만 타이트한 레깅스... 마르고 키가 커야 어울리겠지?
마약성 진통제를 매일 먹고 자야 잠이라도 잘 수 있던 때를 지나, 슬슬 일상을 살아낼 힘이 생겨날 즈음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낮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오후에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아도 아들 셋 육아는 힘에 부쳤다. 수술한 지 6개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가슴 통증과 등 통증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이렇게 아프노라고 어디 계속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총을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왼쪽 가슴에 뻥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생각, 날개가 생긴다면 이렇게 아플까, 등에서 뻗어 나온 날개의 무게를 느끼며 잠깐 날아오르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지속되는 통증은 어깨와 목, 정수리까지 올라가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두통이다. 또 잠을 설친다. 지친 말투로 남편을 건드린다. 남편은 함께 피곤해지고 예민해진다. 아이들의 필요에 반응이 느려진다. 표정도 체력도 말도 지쳐있다. 누구 하나 울기 시작하면 남편은 귀를 막는다. 아, 이건 아니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먼저 제대로 건강해야겠다고, 좀 더 좋아져야 한다고,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이 행복하겠다 싶었다. 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남아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조금은 씩씩해진 걸음과 말투로 새로 생긴 헬스장을 찾았다. 10회에 45만 원. 에라 모르겠다. 6년째 육아휴직 중인 나에게 과분한 액수지만 단번에 질러버렸다. 운동화도 하나 샀다.
내가 생각해도 옆에 붙어선 강사는 전혀 무리된 움직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은 반복되는 몇 가지의 움직임에도 한계라 느껴질 만큼 힘들었다. 그렇게 움직인 날 밤에는 끙끙 앓으며 잤다. 투자한 돈이 아까울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으나 내 근육은 터질 듯 아프고 뜨거워졌다. 맞다. 혼자라면 포기했다. 옆에서 구령을 넣고 지켜봐 주며 교정해주는 트레이너가 있으니 가능한 거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하던 고비를 넘기고 점점 근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통증도 어느새 줄어들었다. 눈이 좀 더 말똥 해졌고 말에 힘이 생긴 것 같다. 퇴근 후 남편의 표정이 편안한 걸 보면 확실히 내가 좀 더 활기차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10회 수업을 근근이 해내고 집 앞에 있는 요가수업을 끊었다. 전에 비하면 오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이다. 피곤하고 지쳐있던 내게 새로운 시간의 도화선이 되게 해 준 처음의 것도 아깝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생각하게 되는 아줌마로 돌아왔다.
어쩌면 '고비'를 넘겨 단단해진 근력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이렇게 '고비'를 넘겨야 단단해지는 건가.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남은 '고비' 앞에 좀 더 용기를 내 본다. 이렇게, 나는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운동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