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어쩌다, 느닷없이, 기대 없이 만나는 그런 날도 있다

by 꿈꾸는 momo

엄마, 이게 꿈은 아니지요?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기대한 걸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식목일마다 가족행사를 한다. 원래는 유실수 묘목을 가져와 어린이집 공터에 같이 심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가족 나들이로 대체해서 인근 수목원으로 가기로 했단다. 아이 셋을 챙겨야 할 아침에 도시락 준비도 부담이었지만 며칠 째 수술 후유증으로 계속되는 통증에 나들이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에 어린 동생들 때문에 어린이집 행사에 전혀 참여를 못했던 터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조금 애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와 함께 간다는 말에 아이는 얼마나 들떴던지 평소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김밥을 살까 했다가 왠지 내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새벽부터 부랴부랴 도시락을 준비했다. 이쁘게 만들어 올리는 어떤 엄마들의 도시락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박한 도시락이었지만 내 딴에는 정성 들여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대충 모양만 내고 얼른 아이와 함께 집결장소로 향했다. 아이는 그저 기분이 좋아 덩실거렸다.

시작은 좋았는데, 점심 식사 시간 전 30분 정도 수목원을 거닐었나, 아이가 지친 기색이다. 배도 아프단다. 피곤하단다. 친구들과 어울릴 생각도 않고 내 손만 붙들고 다니더니 결국은 도시락을 꺼내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먹은 것도 잘못됐는지 화장실도 들락날락한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서야 했다. 다행히 친정집 근처라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데리러 와 주셨다. 아이는 축 늘어져서는 한 숨 자고야 정신을 차렸다. 기회를 만들어 나들이를 할 때마다 이런다. 어쩌겠나. 원래 뭔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그 기분 때문에 그 날이 좋았다가도 정작 그 날이 닥치면 설렁 넘어가버리기도 하지. 방학도, 생일도, 공휴일도... 아이의 많은 시간이 기대와 기다림에서 실망과 아쉬움으로 널을 타며 채워질지도...


늦은 오후, 아이는 자기가 아기 때 할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산책길을 가잖다. 아기 때라지만 고작 한 해 전 동생들 때문에 자주 맡겨지던 다섯 살 때를 말하는 것이다. 두통이 있어 좀 쉬고 싶다는 내게, 엄마도 운동이 좀 필요하다며 손을 잡아끈다.

못 이긴 척 따라간 어느 동산이었다. 작은 동네 어귀가 한눈에 보이는 곳. 사찰 주변으로 작은 쉼터가 생겼는데 나는 처음 발길 하는 곳이다. 짧지만 제법 가파른 오름길에 숨이 차 올랐다. 마침,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흔들려 꽃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막 피어난 조팝나무 꽃향기가 숨을 한 번 더 들이마시게 했다. 대나무 밭에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어른거린 걸 빼면 바람소리만 가볍게 일렁이는 조용한 곳. 따뜻한 햇살이 온몸으로 들어와 내 몸이 소독되는 느낌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어때요? 오기를 잘했지요? 멋지지 않아요? 꽃도 있고, 쉴 수도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다음에 또 한 번 와보자요.


그래, 그러자.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공간을 공개하듯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의 미소를 눈에 담아본다. 기대 없이 나선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아이의 꽃 같은 말이 어느 멋진 날을 만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