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식

선물

by 꿈꾸는 momo

엄마의 가게는 조촐한 뜨개방이 아니었다. 화장품, 액세서리, 학용품, 선물용품. 없는 게 없는 잡화점이었다. 경쟁가게가 생기기 전까지 엄마의 가게는 손님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한 가요계의 혁명은 십 대들의 가슴을 두드리며 지갑을 열게 했다. 유명가수의 음반과 브로마이드, 히트곡메들리를 모은 테이프는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공테잎(카세트테이프)에 원하는 가요를 녹음시키던 아날로그 감성은 때로 천마리의 종이학이나 별을 접는 정성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전달되기도 하고, 자신의 소원을 담아내기도 했다. 아빠는 표구에 쓰이는 유리판의 자투리로 육면체의 유리 상자를 만들었는데 공장에서 찍어낸 비싼 유리병보다 값싸고 커서 가난한 십 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알록달록한 것들은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서 더욱 빛났다. 그때 십 대들의 꿈은 알록달록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가능하던 시대였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 브로마이드로 방을 도매하고,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 할 때도 나는 '케니 지(Kenny G)'와 '유키 구라모토(くらもとゆうき)'의 연주 음악을 더 많이 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음반에서 "피가 모자라, 배고파."같은 가사가 들린다며 사탄 숭배자라는 뉴스가 난무할 때도, 그건 내게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난 당시 유행한 펜팔(pen pal)에 심취하여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 중 나와 같은 반, 같은 번호에게 편지를 쓰며 답장오기를 기다리거나 교실 우체통에 넣을 장난편지를 기획하는 아이였다. 늘 엎드려 뭔가를 끄적이거나 조용히 놀아서 그런지, 엄마는 내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엄마의 관심은 오빠에게만 유독 진한 것 같았다. 오빠는 늘 모든 경험의 첫 주자였다. 그게 나에게까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마는 엄마로서 처음 겪는 일을 오빠를 통해 시도한 후 다음의 적용여부를 따진 것 같았다. 돌사진도, 유치원도, 아이템플 학습지도 오빠만 하고 끝났다. 엄마는 '굳이' 나에게까지 돈을 들이지 않았다. 어쨌든 엄마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에게 더 먼저, 더 많이 주는 것 같았다. 엄마가 되어보니 더 먼저, 더 많이 줄 수밖에 없는 발달 상태라 일어나는 당연한 과정인데도 어린 눈에는 결과물만 보이니까 말이다.


"엄마는 오빠를 더 사랑한다. 나한테는 계란 프라이 한 개만 주는데 오빠는 항상 두 개다. 오빠는 공부를 더 잘하니까, 더 좋아한다. 엄마는 여자니까 남자인 오빠만 편애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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