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였고, 가능하다면 쓰기보다는 읽는 인생을 택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애플시드》의 작가이자 애리조나 주립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인 맷 벨(Matt Bell)은 자신의 저서 《퇴고의 힘》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가능하다면 쓰기보다는 읽는 인생을 택했을 것'이라고.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매우 사소한 일이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강렬한 끌림도, 어떤 운명적인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3년 전, 일반인을 위한 그림책 강좌에 우연히 신청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강좌에서 만난 선생님은 내 인생의 가장 강렬한 인연이 되었다.
사실 창작이란 내 삶에 항상 있어 왔던 공기 같은 것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려왔고, 관련 직업을 거쳐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정착했으니까. 상업 디자이너는 정해진 틀 안에서 창작하고, 비상업 디자이너는 그 틀을 자신이 정한 후에 창작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나는 항상 재능의 벽을 느껴왔다. 세상에 꺼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데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마치 제2외국어로 말하는 것과 같았다. 어릴 때부터 해왔고 전공까지 했으나, 모국어가 아닌 이미지라는 외국어를 사용한 의사소통은 나에게 언제나 한계를 느끼게 했다.
그림책과 아동문학을 배우면서 언어로써 창작하는 것은 마치 고국에 돌아와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하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미술로 이야기했던 내가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면, 문학으로 이야기하는 지금은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자유롭다.
물론 더닝크루거 효과로 잘 알려진 무지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 현재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아직 부족한 실력과 공부로 인해 한계를 마주치지 못했다는 반증일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내가 자유롭게 만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마음껏 행복해하고 싶다.
이 즐거움의 기억이 우매함의 봉우리를 지나 절망의 계곡에서 깨달음의 오르막에 오를 때의 추진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이유는 쓰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일주일에 두 번 에세이를 연재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는 몰랐지만 그건 나에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저울이 있다면 나는 예술성에 많은 추를 올려놓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빵세이를 45편에서 마무리한 것도 그 이유였다. 정통 수필의 문법을 익히지 못한 채로 경수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수준에 매달려 있는 것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나는 내 꿈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까지 꺼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내가 무얼 말해도, 어떤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해도 나를 믿어줄 테니까. 혹시 속으로 조금은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에 대한 애정을 발휘해 의욕을 꺽을 수 있는 말을 내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다르다. 나는 대중이 무심함을 변명으로 내세우며 들이미는 창날의 끝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내 꿈은 내 일기장에 쓰겠다. 내가 꿈을 잊거나 의지가 약해질까봐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나에게 매일 말하고 있으므로. 매일 생각하고, 매일 공부하고, 매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누구보다 사람을 무서워한다. 어디에서든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해 말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것은 잊히는 것이다. 내 이야기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앞으로 500년 정도는 회자되는 문학의 역사로서 남기를 원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가장 작은 이야기를 하겠다. 인간의 미시적 역사가 가장 거시적인 것이 되기를 꿈꾼다.
해당 글은 01화 1. 소설 기초 글쓰기 의 과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