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오버를 처음 알게 된 건 10년 전쯤이었다.
그때 나는 빵 굽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결혼하면서 오븐을 들였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과정 아닐까싶다.
하지만 빵이라는 녀석, 사 먹을 때는 몰랐지만 직접 굽기엔 쉽지 않았다.
손목과 쫀득한 빵결을 맞바꾸는 느낌이랄까.
한 번 만들고 나면 뿌듯함과 함께 어깨의 뻐근함이 따라왔다.
그럼에도 자꾸 굽고 싶어지는 게 홈베이커의 열정으로 아마 일주일에 한 번은 빵을 구웠던 것 같다.
그때,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팝오버를 발견했다.
손목을 잃어가던 홈베이커에게는 인생의 발견이었다.
마치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받은 인류처럼, 내 머릿속엔 환호가 일었다.
반죽을 하지 않아도 완성되는 빵이라니!
너무 매력적인 이야기 아닌가.
실행력 하나는 자신 있었던 나는, 레시피를 발견한 그날 바로 팝오버를 구웠다.
마침 머핀 틀이 있었으니까.
계란, 밀가루, 우유, 베이킹소다를 넣고, 오븐을 예열하고, 기름을 데워 반죽을 붓는 과정까지 놀랄 만큼 수월했다.
게다가 설명이란 게, 겉은 파삭! 안은 쫄깃! 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 마음은 팝오버처럼 부풀어 올라, 오븐을 열기도 전에 하늘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계란과 베이킹소다의 힘으로 부풀어 오르는 팝오버는, 오븐 온도와 시간, 그리고 틀의 온도가 성공의 열쇠라고 했다.
쉬운 빵이라고 해도 나는 실패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팝오버에, 손목만 빼고 거의 모든 걸 바쳤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오븐 창 너머로 쉐프 모자처럼 부풀어 오른 팝오버를 봤을 때,
주방 가득 퍼지는 고소한 향은 그야말로 축제 같았다.
조심조심 틀을 꺼내, 완성된 팝오버를 접시에 담고, 고소한 우유와 잼까지 곁들였다.
새로 태어난 생명을 맞이하듯 팝오버를 조심스럽게 반으로 찢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식빵 껍질 맛. 그날 찾아본 팝오버 사진에는 전부 잼이나 크림, 그레이비 소스가 곁들여 있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밍밍하고 별 맛이 없으니까.
실망과 슬픔이 뒤섞인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어쨌든, 내가 만든 것이니 그날 아침과 점심은 팝오버로 때웠다. 다행히도 6개만 구운 것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그 주에 나는 바로 반죽기를 샀다.
그리고 식빵을 주구장창 굽기 시작했다.
식빵 만들기에 어느 정도 손이 익을 즈음, 또 하나의 빵을 알게 되었다.
브리오슈.
브리오슈는 빵계의 여왕이다.
들어 올리면 묵직한 무게에 놀라고, 손끝으로 살짝 눌렀다 놓으면 부드러운 탄력이 살아 돌아온다.
표면은 바삭하게 갈라지고, 속은 구름처럼 포근해 결결이 찢어지다 못해 빛이 난다.
속살을 입에 넣으면, 진한 버터향과 함께 쫄깃하다가, 어느 순간 입안에서 녹아버린다.
그야말로 프랑스 귀족들의 달콤한 권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귀여운 외모 뒤에는 극악무도한 성격이 숨어 있다.
브리오슈가 인간이었다면 고급 카페에서만 사람을 만나고, 대화는 라틴어로 했을 것이다.
브리오슈에 듬뿍 들어가는 버터는 글루텐 조직을 유연하게 만든다. 글루텐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계란과 수분이 잔뜩 들어 있어, 반죽은 물처럼 흐른다.
조금이라도 손 온도가 높은 사람이 만지면 반죽은 손에 들러붙고, 제 모양을 갖추기 어렵다.
그 귀족 같은 반죽을 덧가루를 뿌려가며 간신히 다룬 뒤에도, 냉장 숙성이라는 번거로움이 기다린다.
마치 "마사지 다 했으니까 이제 팩할게요"라고 투덜대는 듯이.
냉장고에 넣어 식히고, 2차 발효하고, 성형하고, 3차 발효를 거쳐야 비로소 오븐에 들어간다.
맞다. 제빵초보인 나는 브리오슈 굽기에 완전히 실패했다.
너무 슬펐던 나머지, 한동안 식빵조차 굽지 못했다.
빵은 먹기만 했고, 오븐을 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싸이월드에 글을 쓰고,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을 올리며 살았다.
내 팝오버들은 쉽고 빠르지만, 딱 그만큼만 맛있었다.
내 글들도 쉽고 빠르지만, 딱 그만큼만 읽혔다.
나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브리오슈를 구우려 했고, 장렬히 실패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성적 좀 좋았다고, 공부도 없이 글을 쓰겠다며 노트에 끄적였던 것처럼.
결국 알게 됐다.
브리오슈는, 식빵 몇 번 구운 홈베이커에게 자신의 촉촉한 살결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좋은 글 역시, 공부 없이 쓸 수 없다는 걸.
나는 이제 다시 브리오슈 같은 글을 쓰려고 한다.
쉴 틈 없이 읽고, 쓰고, 공부할 것이다.
잘 구워진 브리오슈의 황금빛 껍질, 머핀의 포슬함, 크루아상의 층상구조를 절묘하게 섞은 듯한
부드럽고 달콤한 글.
한 번 읽으면 또 읽고 싶어지는 문장.
어느 날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
부드러운 빵처럼 일상의 피로를 달래고, 새벽 감성으로 속삭이는 글로, 작은 언어의 축제를 열고 싶다.
내 글의 단단함과 이야기의 유혹이 교차하는 지점.
그곳에, 내 글의 영혼이 자리잡기를.
-브런치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