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목사 사모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날 본모습은 솔직히 좀 소름 돋았다.
초인종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귀찮음과 곤란함이라는 감정이 한 치의 여과도 없이 묻어났다. 첫 번째 초인종에 이모는 응답하지 않았고, 나는 차가운 문 앞에서 한 시간을 오롯이 견뎠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조용해야 할 집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두 번째 초인종을 누른 후, 다시 세 번째 초인종을 누르고서야 겨우 그 집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내가 이모에게 원하는 건 그냥 엄마의 연락처 하나였다. 작년에 집을 나간 엄마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는 열아홉 살짜리의 바람은, 신의 사랑을 전파한다는 어른에게는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하는 듯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자리에 이모부인 목사님도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서재와 거실을 오가며 나를 보았을 텐데도, 그 어떤 갈증의 기색이나 안부도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 경건한 공간의 일부처럼 침묵했다. 그러나 이모부는 몇 년 뒤 췌장암 선고 몇 개월 만에 급하게 생을 마감했으므로, 이제 와 그 방관의 죄를 묻고 싶지는 않다. 이미 육신과 함께 그 침묵도 소멸했을 터이니.
이모의 집은 내가 명절 때마다 엄마와 함께 즐겁게 드나들었던 익숙한 집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거대한 사막 그 자체였다. 이모는 엄마에게 연락하고 싶다는 나에게 일단 기다리라고 말했고 나는 거실 구석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불조차 켜지 않은 거실에 곧 버려질 쓰레기봉투처럼 놓여 있던 나와 달리 미리 약속되어 있던 손님들이 오자 이모의 안면 근육은 기계처럼 자애로운 모드로 재설정되었다.
"어머 집사님들 날도 더운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주님 안에서 환영해요"
이모의 목소리는 방금 전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던 그 서늘함을 완전히 감추고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이내 얼음 달랑거리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리고 진한 커피 향과 달콤한 과일 냄새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손님들 앞에는 시원한 유리잔이랑 정갈하게 깎은 사과 접시가 놓였다.
"사모님은 어쩜 솜씨도 이렇게 좋으세요"
"아니에요, 다 주님의 은혜죠"
오글거리는 대화들이 오가는 풍경이었지만 그 주님의 은혜 나눔 목록에 나는 없었다. 이모는 나에게 물 한 잔조차 건네지 않았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손님들의 잔을 수시로 채워주면서도, 어두운 구석에 앉은 나에게는 시선 한 자락 주지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의도였다.
‘너는 이곳에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무언의 칼날로 계속해서 찌르는 것이었다. 성도들에게는 정결하고 믿음 깊은 성녀처럼 굴면서, 혈육인 조카에게는 물 한 모금 허락하지 않는 그 이중성은 너무나 투박하고 노골적이어서 차라리 헛웃음이 나왔다. 이모에게 손님들은 가면을 써야 할 관객이었고, 나는 가면을 쓸 가치조차 없는 불청객에 불과했다.
자기들끼리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소음 속에서 나는 점차 투명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차라리 투명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사라질 수 없어서 더 안타까운, 그야말로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거대한 오답이었다. 아마 그때 느낀 스스로의 거추장스러움은, 내가 닦아야할 거실 바닥의 얼룩이었더라도 덜 민망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그렇게 네 시간을 버텼다. 어릴때부터 내 꿈은 문지방이었다. 종종 집안의 거대한 폭력을 피하고 싶을때 사람이 아닌 그냥 그 자리에 항상 있어도 누군가 내쫒아내지 않는 문지방이 되고 싶었는데, 그날은 문지방조차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투명해지고 싶었다. 필연적으로 찾지 못하는 존재가 되면 아무도 나에게 거기 왜 있느냐고 네 자리는 그곳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시간이 흘러 거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하늘이 붉게 타오르며, 창문에 비친 이모와 손님들의 즐거운 모습이 거울처럼 나를 조롱할 때쯤 이모는 마지못해 엄마의 번호가 적힌 종이 쪼가리 하나를 내밀었다. 진작 줄 수도 있었을 그 종이를 네 시간이나 품고 있었던 것은 그녀만의 은밀한 괴롭힘 방식이었으리라. 어쨌든 나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그 기만적인 성역을 뒤로하고 사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혼 후 다시 엄마와 생을 공유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월은 풍경을 바꾸었으나 인간의 본성이라는 궤적은 결코 수정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우리 모녀는 이사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는데, 마침 이모가 다시 한번 자애로운 제안의 탈을 쓰고 우리 삶에 개입해 왔다.
이모의 두 딸은 그 어미의 행보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15년 전 큰딸이 결혼하며 엄마와 동생을 집 밖으로 밀어냈던 역사는, 이제 작은딸의 결혼과 함께 반복되었다. 신혼살림을 차려야 한다는 명분 하에 이모는 다시 한번 딸들에 의해 거처에서 쫓겨날 신세가 된 것이다. 그때 이모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모와 엄마, 그리고 나, 세 여자가 함께 살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그녀가 베푼 뜻밖의 친절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갈 곳이 마땅찮던 차에 찾아온 구원이라 믿었기에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이모는 특유의 그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불쌍히 여기고 어여삐 하라고 말씀하시더구나.” 20년 전 그 메마른 거실에서 나를 외면했던 신이 드디어 응답한 것이라 착각하며, 이모가 내어준 생색이라는 이름의 성찬을 기꺼이 받아먹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주일 만에 뒤집혔다. 이모는 돌연 혼자 살 집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통보해 왔다.
그녀는 자비로운 사모님 이미지를 충분히 소비한 뒤 배부른 돼지처럼 뒤돌아버렸다. 인간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은 틀리지 않았다. 20년 전, 갈증에 목이 타던 조카를 앞에 두고 집사들에게 사과를 깎아주던 그 잔인한 배타성은 늙지 않았다. 오히려 신의 목소리를 빌려 타인의 희망을 제물로 삼는 기교만이 노련해졌을 뿐이다. 이모에게 우리 모녀는 여전히 가면을 쓸 가치조차 없는 불청객이자, 자신의 고결함을 돋보이게 할 비루한 배경에 불과했다.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성역이라 믿었던 그곳은 처음부터 단 한 방울의 물도 허락되지 않은, 기만으로 쌓아 올린 신기루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