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짭짤함과 씁쓸함 사이에서 밀가루에게 답을 묻다.
이혼하고 나서 엄마 집에 얹혀 살게 된 건 좀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나는 진짜 갈 데가 없었다.
서울시 여성센터 같은 데서, 열 명이 한 집 쓰는 데서 살았을테다.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겠지.
그런데 엄마 집에 얹혀 사는 것도 그렇게 녹록하진 않았다.
일곱 살 이후로 엄마랑 한 집에서 살아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결혼 전까지 아빠 집에 얹혀 살았고, 엄마는 연락은 됐지만, 다른 곳에 살았다. 같은 서울이지만 자주 만나지 않는. 멀고도 가까운.
엄마는, 내가 한 푼도 없이 쫓기듯 이혼한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자신에게 얹혀 사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솔직히, 여기서 내가 드는 돈이라봐야 전기세 조금. 가끔 안 해놓은 설거지를 엄마가 대신하는 거, 그 정도였는데.
나는 엄마 눈치 보느라, 엄마 나간 시간에는 보일러 꺼버리고, 차가운 방 안에서 전기장판으로 몸을 데웠다. 기름값보다 전기료가 싸니까.
그런데도 엄마는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냥, 이혼한 딸을 매일 본다는 그 자체가 엄마에겐 짐이었겠지.
내 인생 실패 말고, 엄마 자신의 실패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정작 나는 울지 않았다.
난 너무 좋았다. 그 지옥 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내가 먹는 건 내가 챙긴다고 해도, 엄마는 밥 한 그릇, 과일 하나 사오는 것도 없이, 다 아빠네 집으로 들고 갔다. 나는 그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아픈 아빠를 돌보고 있었다. 아빠가 있는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해결하고, 여기서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 집은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잠만 자는 창고 같은 곳이었다.
나는 알레르기가 심했다. 사과를 싫어하고, 딸기는 좋아하고, 수박과 오이는 만지기만 해도 알레르기로 붉은 반점이 생긴다. 땅콩과 호두에도 알레르기가 있다. 매운 건 정말 좋아하지만, 해산물은 못 먹는다.
엄마는 내 식성을 전혀 몰랐다.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자기가 뭘 사와도 내가 안 먹고 썩히니까, 엄마는 점점 아무것도 사오지 않게 됐다.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문제지를 내지 않는 방식이었다.
문제를 내지 않으니까,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같이 산 지 1년 반쯤 됐을 때, 엄마가 겨우 알아낸 건 하나였다. 내가 빵을 좋아한다는 것.
이모는 샌드위치 가게를 한다. 이모네 집에서 남은 샌드위치를 가져오는 날이면, 나는 항상 하나를 달라고 해서 다 먹었다.
엄마는 평소 내 방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빵 하나를 건넸다.
올리브 치아바타였다.
나는 올리브를 싫어한다.
치아바타도 좋아하지 않는다.
치아바타는 빵계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단아 같았다.
질기고, 크러스트 없는 껍질은 심심하고,
겉은 건조한데 속은 부풀어 있는 척하면서 비어 있다.
씹을수록 쫀득하다기보다는, 그냥 무심하게 심심했다.
거기에 블랙올리브가 가득 박혀 있었다.
블랙올리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호했겠지만,
나에겐 묘한 쿰쿰함과 짭짤함 뒤에 오는 씁쓸함이, 입 안 가득 번져서 다른 모든 맛을 앗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엄마가 "이거 맛있더라." 하며 건넨 빵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날은 겨울이 막 끝나가던 날이라 바깥은 아직도 꽤 추웠다.
따뜻한 빵에는 마치 엄마의 온기가 스며든 것 같았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가 한 입 먹고 정말 맛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미 저녁식사를 끝마친 상태였고,
"배불러서 나중에 먹을게"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 빵은 냉장고 속에 들어간 채 잊혀졌다.
일주일쯤 지나, 곰팡이가 핀 올리브 치아바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엄마가 알까 봐 무서워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내 방 쓰레기통에 버렸다.
문제를 내지 않으니,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이 시험이 끝나기는 할까? 아니 시험이 시작되기나 할까?
오해와 이해는, 설명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엄마가 왜 집을 떠났는지 몰랐다. 엄마는, 내가 왜 이혼했는지 몰랐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묻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그 빵을 먹지 않았는지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설명 받지 못한 아이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설명 받지 못한 관계는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오해도 이해도 할 수 없는 관계에는 어떤 문제를 던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