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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것들의 구원자, 못난이 빵

"버려지는 것들을 기다린다니 너무 재밌지 않아?"

by 정채린

세상의 한켠에서 버려진 것들이,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가 자투리 식빵을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모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쓰지 않는 테두리 식빵을 가져오는 건데, 엄청나게 많은 양을 가져왔다가, 다음 날 어디론가 다시 가져간다.

그 많은 자투리 식빵을 어디로 가져가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자투리 식빵을 보면 못난이빵이 떠오른다.

어릴 때 엄마와 같이 뺑집에 가서 내가 못난이빵을 고르면, 엄마는 남은 빵들을 모아 뭉쳐 파는 거라며 사지 말라고 했었다.

엄마는 ‘남고, 버려진 것들’이 딸의 입으로 들어가는 게 못마땅했을테지만.

나는 종종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빵집에서 못난이빵을 골랐다.


겉면이 부서질 듯 아슬아슬하고, 씹을수록 안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재미가 좋았다.

때로는 밤, 때로는 건포도. 고소하게 튀어나오는 견과류나

씹히는 순간 입안을 기분 좋게 채워주는 시나몬도 좋았고, 빵에 들어있는 건포도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못난이빵에서는 건포도까지 좋아졌다.


홈베이킹을 시작하면서는 못난이빵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초보 홈베이커의 냉동고에는 실패한 빵들이 쌓인다.

과발효된 빵, 너무 퍽퍽하게 구운 실패작들, 지나치게 남은 식빵의 테두리까지도 모두 못난이빵의 좋은 재료가 된다.

남은 걸 모아 다시 맛있게 만들면 실패한 하루도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였던 것처럼 위로받는다.


버려질 뻔한 것들이 가장 맛있어질 때,

삶은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못난이빵을 굽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작이라도, 내겐 소중한 재료니까.


딱딱하고, 구겨진 식빵 조각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달콤함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나는 여태 많이 봐왔다.

버터와 계란, 우유와 설탕, 시나몬과 건포도, 크랜베리, 가끔은 블루베리.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지는 속재료들. 밤이 들어갈 때도 있고, 견과류가 들어가서 고소한 식감이 돌 때도 있다.

냉동고에 쿠키 반죽이 있는 날에는 작게 잘라 겉에 붙이기도 한다.

쿠키 반죽을 붙이면 소보루처럼 달콤하고, 스콘처럼 파스스 부서지는 식감이 더해진다.


집에서 만들 때마다 달라지듯, 사서 먹는 못난이빵도 빵집마다 다르다.

어디는 소보루가 주인공처럼 듬뿍 묻어 있어 겉이 바삭하고 달콤하고,

어떤 빵집은 쫀득한 식빵 조각이 그대로 살아 있어 씹을 때마다 사연을 들려주는 듯하다.

어떤 레시피는 커스터드 크림을 넣고, 또 다른 곳에서는 시나몬을 아낌없이 뿌린다.

그래서 못난이빵은 한 가지 맛이 아니다. 정해진 모양도 없고, 틀에 맞춰 구워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나는 좋았다. 매번 다르고, 조금씩 서툴고.

꼭 사람 같지 않나.

저마다 다른 개성들, 부족함을 채우려 구워지고 또 구워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맛과 모양으로 결국에는 맛있어지고야 마는 인생들.


마치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소소한 기쁨, 예상 못한 따뜻함처럼 못난이빵은 제각각 맛있다.


맛없는 삶은 없다, 아직 덜 구워졌을 뿐.


못난이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재료, 실패한 반죽, 지나치게 구워진 식빵이 시작점이 된다.

그러니 못난이빵을 굽는다는 건, 어쩌면 ‘다시 보기’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한 번은 끝난 것처럼 보였던 것을 다시 꺼내어, 손으로 부수고 섞고 뭉쳐서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일.

단점이라 여겼던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결국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그러니까 못난이빵은 늘 두 번째 기회를 이야기한다.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자투리 식빵 같다고 느낀다.

어딘가 어설프고, 계획대로 되지 않고, 제때 사용되지 못한 날들. 버터처럼 매끄럽지 않고, 잘 구워진 바게트처럼 당당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나를 다시 뭉쳐 굽는 순간들이 있다.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책을 읽을 때, 조용한 부엌에서 손으로 반죽을 만질 때,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을 받을 때. 그런 순간에 나는 조금은 못난이빵 같아진다.

정해진 틀 없이도 맛있는, 누군가는 몰라봐도 누군가는 분명히 알아주는 그런 존재.


안간힘을 내어도 구겨지는 날들이 있다.

조심해도 다치고, 바스러지는 일들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못난이빵을 생각한다.

“괜찮아, 그렇게 구겨져도 맛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못나도 괜찮다고, 부스러져도 사랑스럽다고, 버려질 뻔한 나도, 다시 굽히면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내 삶의 오븐 속에 또 하루를 넣는다.



못난이 빵 레시피 (2인분)

- 재료

자투리 식빵 100g (약 3~4장 분량)

달걀 1개

버터 25g

설탕 15g (약 1큰술)

우유 40ml (약 3큰술)

시나몬가루 약간

바닐라 익스트랙 약간

건포도, 건블루베리, 건크랜베리, 땅콩, 호두등 견과류 조금

- 만드는 방법

식빵은 한입 크기로 깍둑썰기 또는 손으로 찢어 준비합니다.

봉지에 녹인 버터, 설탕, 달걀을 넣고 손으로 주물러가며 잘 풀어 줍니다.

우유, 소금, 시나몬가루, 바닐라 익스트랙, 견과류나 건과일을 넣고 봉지를 또 한 번 흔듭니다.

식빵 조각을 넣고 흔들어가며 골고루 버무립니다.

반죽을 숟가락으로 적당한 크기로 뭉쳐 종이 호일에 올립니다.

170℃로 예열한 에어프라이어에서 10~15분간 노릇하게 구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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