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일찍 끝난 오늘,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도저히 집에 그냥 들어가긴 아쉬운 날씨라 바람이나 쐴 겸 해서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평일 낮 한강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잔디 위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모두 웃고 있었고 덩달아 내 마음조차 행복해졌다.
그런데 신나서 한참을 걷다가 공원 한쪽에서 한 무리를 발견했다. 다리 밑 그늘에 모여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이었다. 무슨 재미있는 얘기라도 하나 궁금해 근처 벤치에 슬쩍 앉아서 들어보았지만, 할아버지들은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바둑판에 바둑알을 올려놓을 뿐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한강에 갈 때마다 다리 밑 할아버지들의 모임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곳에 모인 할아버지들은 아침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앉아 바둑을 두신다. 헤어질 땐 ‘내일 또 봐’ 같은 인사도 나누지 않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신다.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바둑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일상이 심심해서 어쩔 수 없이 한강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마실 나온 수많은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리, 할아버지들에게 한강은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한 때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켰을 주역들이, 이제는 한강의 기적은 어디 가고 한강에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머무른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젊은 날을 뒤로하고 이제는 직업도 갈 곳도 없다. 생각해보면 고령화는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데 현재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껏해야 테이블 위에 바둑판을 설치하고 바둑알을 둔 것이 노인을 위한 문화 복지의 전부였다. 일자리가 없어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즐길 거리도 할 거리도 찾지 못한 노인들이 한강과 같은 공원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은퇴 후 20년을 넘게 살고 있다. 20년은 참 긴 시간이다.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는 20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노인을 위한 문화센터를 확충하여 저렴하게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층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이처럼 노인 복지를 지금보다 확대해 여생을 보람차게 보내며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노인 문제는 지금 당장 우리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사안이 아니다. 노인의 현재는 청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금은 청년인 우리들도 머지않은 미래에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강이 아닌 직장으로, 문화센터로 자유롭게 모셔다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