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현 Aug 22. 2016

맛집과 단골집

P2P 금융에서의 고객 커뮤니케이션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닭볶음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이른바 유명 ‘맛집’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들었고, 주소는 블로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이 대게 그렇듯,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식당을 찾아갔다. 맛집이므로, 식당 밖에서 어느 정도 기다릴 각오는 했지만, 식당에 주차장이 없고 식당을 찾아가는 시간만큼 주차장을 찾아 헤맬 것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수시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7월 말, 에어컨 실외기 열풍이 쏟아지는 식당 밖 골목에서 20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식욕은 증발해버렸다.


식당 안도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닦지 않은 테이블 위에 반만 채워진 물통과 씻었는지도 알 수 없는 파란색 컵이 뒤집힌 채 올려졌고, 물수건은 없다고 했다. 좁은 가게 안에 테이블마다 올려진 닭볶음탕은 테이블 위에서 다시 20분간 조리되어야 했다. 수십 개의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닭볶음탕 수증기로 실내는 사우나와 다름없었다. 음식이고 뭐고 어서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었다. 공깃밥도 시켰는데 공깃밥은 없다고 했다. 그럼 닭볶음탕은 뭐랑 먹냐고 했더니, 떡 사리를 추가해서 먹으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곳의 음식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상품은 상품 자체로만 판매될 수 없기 때문에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벤치에 앉아서 먹어도 될까. 안 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좀 그렇다.

‘하겐다즈’와 '쿠팡'을 생각해보자. 고급 레스토랑의 디저트로 자주 이용되는 '하겐다즈'는, 동시에 동네 편의점에서도 판매될 만큼 접근성이 높다. 하지만 꼭 별도의 냉동고에서 판매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냉동고 문을 여닫을 때 아이스크림이 녹아 질이 떨어지는 것을 줄였고, 덕분에 아이스크림에 첨가되는 방부제를 과감하게 뺄 수 있었다. 이는 상품 자체의 고급화는 이를 전달하는 과정의 고급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쿠팡'은 좀 더 눈에 띈다. 쿠팡을 포함한 소셜커머스는 한때 변별력 없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거품이 빠지고, 사양 서비스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요즘 '쿠팡'이 핫하다. 그 핵심에는 오히려 배송에 있었다. 쿠팡은 고객 불만의 40% 이상이 기술적 문제가 아닌 배송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 해결책으로 당일 '직접' 배송하는 로켓 배송을 선보였다. IT업체의 성공 요인이 오프라인(배송)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3년 470억 원대였던 매출은, 2014년 3,400억 원대로 급성장했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 역시, 로켓 배송을 실시한 두 달 후였다.

'쿠팡'도, '하겐다즈'도 상품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지금의 P2P 금융을 '맛집’에 비유하자면

새로운 상품을 찾는 마음은 현재의 아쉬움일 것이다. 저금리 시대에 예·적금 이율은 물가상승률도 따라잡기 버겁지만, 대출 이자율은 여전히 살인적이다. 이런 배경에서 P2P 금융이 등장하고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은 필연이다. 여기까지는 맛집과 같다. 하지만 P2P 금융은 맛집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다. 금융 상품은 한 번 맛보고 별로라고 해서 돌아서기란 어렵다. 금융상품은 계약된 기간만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객에게 맛집보다는 단골집에 가까운 맛과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해야 한다. 좋은 상품이어야 하고 이용하는 고객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일부러 손님에게 욕을 한다는 맛집에, 한 번은 재미로 가볼 수 있지만 욕먹기를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부터는 '맛집'이 '단골집'이 되는 과정

좋은 상품을 만들고 팔며 상식적인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쉬워 보이는 이 일을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 좋은 것을 만드는 일이 먼저,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중에서 서비스는 얼마나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그것만으로 가장 쉽고 정확하게 서비스의 점수를 평가받을 수 있고, 들은 내용을 실천하면 서비스의 질은 자연히 나아진다.


어니스트펀드 커뮤니케이션팀은 고객으로부터 유입된 문의, 불만, 요청을 주 단위로 정제하여 팀원 전체에 공유한다. 고객의 말을 듣는 선에서 아쉬울 때는 자주 질문한다. 그러면 고객들은 어떤 게 좋고, 왜 좋고, 다른 업체도 이용 중인데 이렇게 하는데 좋더라고 알려준다. 마음껏 이야기하고 메모하고 통화를 종료하면 30분도 넘고 한 시간을 넘는다. 팀 이름을 CS라고 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우리는 고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은 우리를 만나고 싶다며 멀리서 설명회나 박람회에 찾아오시기도 한다. 이미 투자하고 있고 자주 통화를 했지만, 멀리서 시간을 들여 설명을 듣고 간다. 좋다고 힘내라고 음료수도 주고 그냥 간다. 날이 더우면 더운데 고생이 많다고 카카오톡으로 인사를 건네시기도 하고, 어니스트펀드 이용하려고 카카오톡을 설치했다며 이모티콘으로 채팅창을 도배하시기도 한다. 대학교 신입생인데 열심히 공부해서 어니스트펀드에 취업하고 싶다는 데이터 과학자 꿈나무도 있고, 실제로 방문해서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 물어보고 가는 대학생도 있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가 고객 문의에 답변할 때와는 별개로, 뭔가를 남기고 기억된다.

그것은 아마 받은 믿음 혹은 기대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