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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모기가 바꿔놓은 이 세상

by 서규원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생태계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준 종을 고르라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호모 사피엔스를 고를 것이다. 지금의 지구는 인간의 활동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인간활동의 영향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얼마 후면 지구상에서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지난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런 인간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괴롭혀 온 생명체가 있으니 그 이름은 ‘모기’이다. 괴롭혀 온 정도가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붙인 잔혹한 학살자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이다. 티모시 C. 와인가드의 책 [모기]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를 죽게 한 개체로 모기를 꼽았다. 모기가 사람에게 옮기는 질병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황열과 기생충에 의해 발병하는 말라리아가 있다.



tanguy-sauvin-luPOnViYl7I-unsplash.jpg 모기는 물가에 주로 서식한다. Photo by Tanguy Sauvin on Unsplash



모기가 옮기는 질병들에 의하여 죽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인류 역사상 큼직한 사건들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끼친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세계사에 기록된 위대한 정복자들의 이야기의 숨은 주역이 모기일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해 볼 수가 없었다. 역사상 존재했던 대 제국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 때 모기는 일관되게 자기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신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고,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모기에게 당하면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정복자들이 전쟁을 하면서 모기에게 반복적으로 당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그들은 습지에서 서식하는 모기가 주는 공포를 알고 있었을텐데 전쟁을 하면 어김없이 습지 주변에 머무는 과오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것이었다. 모기는 자기들을 깨우는 침입자들에게 어떠한 관용도 베풀지 않았으며 매번 그 땅의 수호자처럼 쳐들어오는 침입자들을 격퇴시켰다.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없지만, 만약 여러 정복 전쟁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모기의 공격이 없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기는 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로마 사람들은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브라카다브라’ 라고 쓰인 부적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아람말로 ‘말하는대로 되리라’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로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초반 ‘시간탐험대’라는 이름으로 MBC에서 방영된 일본 애니매이션에도 등장하는 말이다(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돈데크만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흔히 마술사가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말로 그 애니매이션에 나오는 악당 마법사 압둘라가 자주하는 대사이기도 했다. 또한 부유한 사람들은 모기가 서식하는 낮은 물가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지기 위해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부자들은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모기는 인간의 주거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리고 모기들은 다민족국가에서 항상 말썽이 되는 인종차별을 심화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01.jpg?type=w1200 아브라카다브라는 압둘라의 대사



하나의 민족으로 오랜 시간동안 국가를 유지한 우리 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안될지 몰라도 여러 민족이 한국가를 이루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인종차별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종차별 현상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시점으로 시계를 돌려봐야 한다.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이 대륙의 주인은 노르디족이 이주해 온 원주민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모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었고, 모기가 옮기는 질병들에 대한 면역체계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추운 지역에서 이주해왔기 때문에 모기를 옮기지 않았고, 가축을 기르지도 않아서 모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옮겨 온 모기로 인해 그들은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들은 정복자들과 모기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고, 한 문헌에 따르면 95% 가량 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 정복자들은 원래 그 대륙은 비어있는 대륙이었다고 거짓보고를 했고 자기들의 침략행위를 축소하기 위해 원주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는 거짓말도 했다.



모기에 대한 방어체계가 없던 것과 인종차별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정복자들의 지배를 당한 원주민들은 대부분 노예가 되었는데, 모기가 옮기는 열병으로 인해 자주 아팠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주인들은 원주민들을 게으르고 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굳어진 생각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복자들은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이주시켰다. 흑인들은 모기에 대한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던 터라 일을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로 인해 흑인 노예들의 몸값은 계속 상승했다. 당시에는 노예거래가 모든 제국들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행위였는데, 상황이 변해서 노예거래가 불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점차 노동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발생했는데, 이 문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바로 백인 주인들이 흑인 노예 여성을 범하고 그 사이에서 자녀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되었고 노예를 사기 위해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갖고 있던 견고한 방어체계가 다른 인종과의 결합으로 인해 희석이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흑인 노예들은 모기에 대항할 힘을 잃었고 그들도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흑인들은 게으르고 악하다는 굴레를 씌워버렸다. 모기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되자 예전처럼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역사에 모기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책은 모기를 중심으로 인류의 굵직한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나는 세계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많이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관심이 생겼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를 너무 고정된 관점으로만 배워왔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일어난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깨닫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한가지 꼽으라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고정된 하나의 시선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보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일한 사건들도 관점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통찰들도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의 변화를 통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도 찾을 수 있으며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관점과 새로운 통찰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강력추천도서 - 모기



참고. 티모시 C. 와인가드 [모기]




#모기 #세계사 #인종차별 #티모시 C. 와인가드


Photo by Adolfo Féli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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