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크게 슬퍼할 수도 있다

by 서규원

나는 만 36세이고, 나 스스로는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며(실제로도 젊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내가 예전과 다르다고(나이가 들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전에는 좋아하고 즐기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느껴질 때다. 예를 들어, 전에는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타던 놀이기구들이 더 이상 내 마음을 들뜨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던가 최근에는 즐겨하던 모바일 게임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고 느낄 때가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나이가 들었나 하고 생각했는데, 곧 그건 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그저 취향이 변했을 뿐이며, 다른 활동들로 이전에 누렸던 즐거움을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은 아마도 새로이 변화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때 느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직 젊은 나에게는 약간 서글픈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30년은 나이가 들었다는(늙었다는) 느낌 없이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는 노화의 개념을 다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조지 베일런트의 책 [행복의 조건]에서는 나이가 드는 것을 행복이라는 대명제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어린이들은 가짜 말만 타도 좋아한다.)


덴마크 계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성인의 발달 단계를 ‘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 ‘친밀감 대 소외’ ‘생산성 대 정체’ ‘통합 대 절망’이라는 네 단계로 표현하였다. 기존의 아동 성장에 대한 단계 뿐 아니라 성인도 성장과정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성인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사회적 지평이 확장된다고 한다. (87p) [행복의 조건]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는 에릭슨의 단계라는 용어 대신 로버트 해빙허스트의 ‘발달과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행복한 삶에 이르는 여섯 가지 연속적 발달 과업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 순서대로 나열하면, 1)정체성 2)친밀감 3)직업적 안정 4)생산성 5)의미의 수호자 6)통합 이라는 과업들이다. 저자는 청소년기에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위의 여섯 가지 발달과업을 이룬 사람이 행복한 노년을 보내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위의 발달과업이 이뤄지게 되는 시기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각 발달과업들이 성취된 시기는 달랐지만 행복한 노년을 보낸 사람들의 삶에는 위의 발달과업들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세 종류의 그룹(하버드 졸업생 집단, 이너시티 집단, 터먼 여성 집단)으로부터 총 814명의 삶을 전향적으로 연구하여 행복한 삶이란 어떤 특징을 갖는지 객관적이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위의 연구대상자들이 모든 인류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전적, 환경적 영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만한 행복의 조건을 제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많은 연구대상자들의 인생 가운데 저자 역시 성공적인 노화의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이라 인정했던 마크 아우렐리우스 스톤 (마크 스톤) 교수의 예를 통해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27p) 그는 하버드 졸업생 집단에 속해 있으며, ‘의미의 수호자로 산 건전한 보수주의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스톤의 어머니에 의하면 그는 어릴 때 매우 온순했으며 영리한 아이였다. 그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재학시절에도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타고난 지적 재능은 모든 연구대상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이었으며, 건강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침착성과 금욕주의는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그의 미래의 성공을 예견하는 강력한 지표가 되었다. 그는 전세계가 전쟁에 휩싸였을 때, 해군에 입대하여 2년간 복무하였고 (정체성), 1960년대에는 아이비리그를 떠나 미시시피 주에 흑인들이 주로 다니는 대학에서 6개월 동안 물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직업적 안정). 55세의 그에 대해 면담원은 ’고립된 과학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 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친밀감). 그는 교수생활동안 생산적인 성과들을 꾸준히 내왔다 (생산성).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은 후에 노벨상 수상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그는 70대에도 무보수로 명예교수직으로 일했고, 75세에도 여전히 새로운 논문을 썼다. 그의 이러한 연구에 대한 열정과 후학 양성을 위한 노력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귀감이 되고 있다. (의미의 수호자)


내가 그의 삶에서 더욱 주목하여 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결혼 생활이다. 그의 70대는 아픈 아내를 보살피느라 큰 희생이 따랐다. 이 때 그는 저자로부터 두 가지 다른 질문을 받는데, 같은 대답을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은퇴하고 나서 특히 나빠진 점은 무엇인가?‘ 였고, 두 번째 질문은 ’은퇴하고 나서 가장 힘겹게 여겨지는 일은 무엇인가?‘ 였다. 이 질문들에 대한 그의 대답은 바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 이었다. 75세에도 여전히 새로운 논문을 쓰는 사람이 한 대답이라고 믿어지기 힘든 말이었다. 그는 이제 진정 나이가 든 것이었나. 그에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힘들겠지만 그는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의미한 새로운 것은 아내의 상태가 점점 위중해지는 것이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가장 힘들고 나빠진 점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방점을 찍는다.


'인생의 가장 불행한 시기는 언제였는가?'


그는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한 마디 대답에서 그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는 이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느낄 수 있다. 아내가 바로 그의 가장 큰 행복의 이유였던 것이다. 그는 이 대답에 덧붙여 자기 자신을 정말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지는 않으며, 단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 대답으로부터 그는 마지막 과업인 통합을 이룰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를 통해 인간은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나의 인생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발달과업을 이루었으며, 이뤄가고 있고, 앞으로 이루게 될 것인가. 여섯 가지 발달과업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다. 나는 정말 내 정체성을 찾았으며, 그대로 살고 있는가 생각하면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다. 정체성은 머리에서 맴도는데,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인데 이것이 그냥 나의 주장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심히 무겁고 두려운 마음을 같이 갖게 된다. 인생 잘 살아야겠다. 그리고 내가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제자 이다. 써놓고 보니 진짜 인생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또 든다. 친밀감에 대해 생각해보니 내 인간관계는 참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자주 상처를 주고 실망시키고 하지 않았던가. 타인을 향해 그래도 좀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적 안정은 현재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사실 안정적이지는 않다. 생산성도 그동안 고민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다. 의미의 수호자? 나는 지금 삶의 여러 의미들 가운데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의 조건]은 삶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 책이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해야겠다. 분명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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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고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 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기 '실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룹의 11번째 책 [행복의 조건] 서평입니다. 더 많은 서평은 더불어배우다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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