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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신뢰해야 할까

신뢰받는 사람이 되려면

by 서규원

독일의 심리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신뢰는 기대치에 대한 확신이다“라고 정의했다.
흔히 신뢰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아는 친밀한 사이에서의 신뢰, 즉 개인적 신뢰를 떠올리기가 쉽다. Bruno Mars의 “Count on me” 라는 곡은 친구 사이에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노래하고 있다.


“Count on me”
If you ever find yourself stuck in the middle of the sea, I'll sail the world to find you
If you ever find yourself lost in the dark and you can't see, I'll be the light to guide you
(중략)
You can count on me like 1 2 3 I'll be there
And I know when I need it I can count on you like 4 3 2 And you'll be there
Cause that's what friends are supposed to do


노래 가사처럼 신뢰하는 친구라면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곳이 바다 한 가운데 표류된 상황이라도 온 세계를 항해해 찾아갈 것이다.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있다면 역시 빛을 비춰주면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나에게 똑같이 할 것이다.




내 경우에도 신뢰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인간관계는 바로 친구다. 친구는 ‘오래 두고 사귄 벗’을 의미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과거의 신뢰 관계는 이렇게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내가 신뢰하는 대상은 곧 내가 아주 잘 아는 대상이었다. 이렇게 친밀한 사이에서나 어울릴 법한 단어가 공동체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일반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고(일반적 신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정한 규칙과 제도에 대해서도 신뢰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기계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이첼 보츠만의 책 ‘신뢰 이동‘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신뢰할 대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우리가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도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신뢰의 핵심개념을 살펴보도록 하자.

(신뢰에 대한 수백 가지 정의는 하나의 단순한 개념.으로 수렴된다. 신뢰는 결과에 대한, 그러니까 주어진 상황이 얼마나 잘 풀릴지에 대한 평가다.) —> 핵심 개념 45p

신뢰에는 반드시 대상에 대한 평가가 따른다. 오래 전 과거에는 잘 알고 있는 개인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였다면,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생활 범위가 넓어지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더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였고 그런 경우에는 적절한 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런 제도를 기반으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는 사건들이 터졌고,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따를지 몰라도 속으로는 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2016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4개 제도에 대한 미국 시민의 신뢰도는 평균 32퍼센트에 불과했다. 모든 분야에서 50% 미만의 신뢰도를 보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78p) 이런 현상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에서 30년 넘는 기간동안 실시한 전문 직업군에 대한 신뢰도도 과거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사회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제도적 장치들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제도들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고쳐나가더라도 결국에는 이것들을 통제하는 세력의 뜻이 그 안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앙통제식 신뢰관계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들이 등장하였다. 과거의 개인적 신뢰를 바탕으로한 지역적 신뢰는 공동체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그 후에 등장한 제도적 신뢰는 부작용이 심했다. 새로운 형태의 신뢰 관계는 중앙통제로부터 자유로우며, 신뢰할 대상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해도 플랫폼으로부터 확인 가능한 정보를 통해 그 대상에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분산적 신뢰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간섭도 하지 않으며, 이용자들 간 관계 형성 기회만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용자들 모두가 상호 평가를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공개된다. 이런 평가 결과는 플랫폼 이용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와 연결된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정한 규정을 지키지 않는 이용자들은 별도의 제약을 받을 수 있어 이용자 스스로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완전한 것은 없기 때문에 신뢰에 타격을 주는 문제들이 발생되었고, 플랫폼 운영자는 단순한 관찰자에서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리자의 역할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모든 플랫폼들도 특정인(운영진)의 의도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애초에 제도, 플랫폼 등은 한 개인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 탄생되었다. 그리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완벽한 도구들은 이 세상에 없기에 제도나 플랫폼에 완전히 의존하여 신뢰할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러면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즉 신뢰성은 무엇인가.

신뢰성의 세 가지 특징은 동일하다 능력있는 사람인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정직한 사람인가? 197p

능력있는 사람은 기대치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믿을 만한 사람은 약속된 사항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정직한 사람은 그 목적에 거짓이 없고 투명한 사람이다. 위의 세가지를 기준으로 신뢰성의 핵심 요소로 실력, 성실, 정직을 꼽고 싶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실력을 키우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삶을 대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때도 위의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실력과 성실함과 정직함이 아닌 외모나 배경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판과 같은 잘못된 신뢰신호를 따르게 되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에어비앤비, 우버 서비스의 경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거래를 하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와 판단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서비스 제공자의 정보를 조회하고, 이용 후기들을 읽어보면서 이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고 한다. 과거에 이용한 사람들의 평이 좋으면 잘못 선택할 가능성을 줄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도 언제나 불운은 존재하기에 때로는 직감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선택은 항상 어려우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따른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플랫폼 운영자에게 있는지 이용자에게 있는지 아니면 감시를 해야할 관계 당국에 있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현재 상황에서 플랫폼을 통한 자율적 신뢰관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이런 흐름은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보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전자화폐가 이미 10여년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얼마나 세계적인 흐름에 둔감하고 느린 삶을 살았던가)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웃나라들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처럼 느껴진다. 미래에는 우리가 신뢰할 대상을 선택하는 것을 상당 부분 로봇이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준비가 부족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정보의 거래를 매일 인터넷을 통해 하는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부와 재물의 거래가 매일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블록체인 기술은 수정되지 않는 거래 기록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특징이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전망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 결국에는 변화의 흐름을 먼저 감지하고, 미리 준비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로봇과 블록체인 기술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발생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준비를 해야 하며, 그 준비는 바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준비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포함된다.

만약 변화된 세상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며 그것이 내가 올바르게 선택한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결정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신뢰할 대상을 선택할 때(모든 결정의 순간이 해당된다)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며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한 자산인 신뢰를 지키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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