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젊은 친구들,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저도 오래 살겁니다.

by 서규원

세상엔 많은 동호회가 있고, 관심 분야에 따라 흥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일 기회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모임들 가운데서 개인과 집단의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며 가능성 있는 모임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무지한 사람을 깨우쳐 주고, 길 잃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기도 하며, 슬픈 사람에게 위로를, 울적한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글과 생각을 함께 보고 들으면서 더 깊은 사귐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책은 우리의 친구이자 스승이며,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책을 통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게 해 줄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물리 과외를 해주게 되는데, 두 사람은 너무 마음이 잘 맞아서 물리 뿐 아니라 철학과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철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며 인간의 삶을 생각하는 학문이다 보니 철학 전공자들이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친구는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모임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도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임은 꽤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이 모임을 통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평생 연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를 사귀게 되었고, 그의 첫 아내도 이 모임에서 만났다. 그들은 이 모임에서 많은 책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함께 하였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수록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올림피아 아카데미’였다. 아인슈타인이 아직 유명해지기 전에 만들어진 이 모임은 아인슈타인이 유명해진 후에도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학술모임이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올림피아 아카데미 - 3명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올림피아 아카데미에 비견할 만한 독서모임이 있었으니, 바로 청장관 이덕무와 그의 동무들로 이루어진 ‘백탑 독서모임’ (내가 이름 붙여 봤다) 이라 할 수 있겠다. 모임의 수준과 규모를 따지기보다 그 모임에서 맺어진 인연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독서모임과 충분히 견줄 만 하다고 말하고 싶다. 책 [책만 보는 바보]에서 소개하는 이덕무와 그 벗들은 시대적으로 주목받을 수 없는 신분의 제약을 가진 비주류 양반들이었다. 이덕무는 서자 출신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고, 신분상 양반이긴 하지만 매우 가난하여 끼니를 연명하는 것도 힘든 처지였다. 게다가 양반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도, 장사를 할 수도 없어 가족들을 돌볼 능력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겨우 연명하다가 너무 견디기 힘들면 애지중지 종이가 닳도록 읽었던 책을 팔아 양식을 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였고, 자기 능력으로는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기가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였기에 그가 느꼈을 안타까움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려온다. 그는 삶의 고통을 책을 읽으며 달래었고, 다행히도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벗들은 다양한 면들이 있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친구도 있었고, 서자 출신이 아니어서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이도 있었으며, 무예를 익히는 데 더 뛰어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책을 계기로 서로 연결되었고 훗날까지도 마음을 깊이 나누는 친구들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없었고, 오히려 편견 없이 서로를 바라봐주는 깊은 유대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특히 당시 지배계층에서 갖고 있는 낡은 사상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실학이라고 배우고 있는 학문은 이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점점 더 발전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실용적인 학문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는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과 같은 훌륭한 스승들이 있어서 사대부 중심의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 담헌 홍대용 선생은 우리나라의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과학사에 남긴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보여준 그의 행동들에서 아인슈타인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려서부터 숫자에 밝았던 그는 혼천의(시계)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였고, 백탑의 제자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세상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으며, 수학과 과학을 통해 제자들에게 새로운 더 큰 세상을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수준급의 거문고 연주 실력을 갖고 있었다. 과학자이면서 예술가이기도 한 점이 아인슈타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백탑의 제자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도 담헌 선생의 힘이 컸을 것이라는 게 이덕무의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에 합류하여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도 담헌 선생은 자신의 중국인 친구들을 선뜻 소개해주었다. 이덕무는 평소에 담헌 선생을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을 통해서 느끼는 따뜻함 만큼이나 스승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얼마나 따뜻했을까. 늦은 나이에 만난 스승의 존재가 이덕무에게 참으로 소중했을 것 같아 내 마음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담헌 선생도 아인슈타인처럼 과학연구를 하다가 거문고를 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가난도 그들이 관직에 나아갈 길을 얻으며 조금씩 형편이 나아졌다. 특히나 서자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가기에 많은 제약이 따랐던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은 같은 시기에 나랏일을 하면서 때로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들은 관직에 올라서도 우정이 변치 않았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에 각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친구들은 모두 역사에 굵직한 획을 하나씩 그었다. 나는 그들이 독서모임을 통해 사귀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행운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그들이 살던 시대의 중국은 한족이 아닌 만주족에 의해 다스려지던 청나라 시대였다. 사대부 사상이 여전히 강했지만 명나라 시대에 비하면 약해진 면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서출인 그들도 관직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덕무의 아버지는 그가 관직에 나아갔을 때 감격하면서 밝은 세상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제약은 있었지만 관직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양반 출신들이었다. 만약 평민으로 태어났다면, 그들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왕이 정조로 바뀌면서 그들에게도 극적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정조는 느리긴 했어도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하나씩 개혁을 이뤄가고 있었고 핵심 개혁세력으로 자기 사람들로 이뤄진 새로운 조직을 갖추었는데 그게 규장각 멤버들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나는 이들이 오랫동안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통해 배우고 꾸준히 책을 읽음으로써 실력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리고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끈끈하게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우정은 책으로 시작했고 책이 우정을 깊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은 책을 접하기가 매우 쉬운 시대다. 그리고 당시는 종이가 매우 귀해서 글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반면 지금의 우리는 얼마든지 마음껏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 또한 지금이 훨씬 많은 기회가 있고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형편도 지금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엿보며 나는 더 많은 욕심이 난다.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더 오랫동안 글로, 대화로 소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세워갔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 함께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당부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자신과 성향이 매우 닮았고 말하는 방식 또한 닮은 박제가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덕담을 하였다.


슬기로운 젊은이여, 부디 오래오래 사시게


이 말 뒤에 연암 선생이 하지 않은 말을 내 나름대로 상상해보면, 이렇다.


(나도 오래오래 살테니, 우리 계속 좋은 만남을 가져보세)



오랫동안 슬기로운(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과(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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