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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원 Feb 16. 2020

너와 나의 셈법은 다르다

사랑과 존중으로 맞춰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말을 맞아 모처럼 아이들과 온전한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온 6살 첫째 유주는 나를 깨우며 자신이 생각한 순서대로 여러가지 놀이들을 함께 하자고 졸랐다. 평일에는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어서 항상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정을 주말에 정해놓는다. 유주는 이렇게 주말에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을 약속받으면 주중에 매일 밤 주말까지 몇 밤을 더 자야 하는지 세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평소에 충분히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아이들이 아빠와 노는 시간을 매일 기다린다는 것이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렸을 때 형하고는 자주 놀았던 기억이 많지만 아빠하고 놀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특히 지금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인 5살 때부터 국민학교 시절을 포함하여 아빠와 놀았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기사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위중한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들이 환자들로부터 들었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7가지’에 대해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것’ 이었다고 한다. 한 공간 안에 함께 있다고 해서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다. 서로 공감하고 상호작용하며 같은 활동을 할 때 진정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가족들과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였다.



  유주와 함께 노는 이 시간은 나에게도 그 의미가 크다. 나는 함께 놀면서 내 자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현재 아이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아이가 어떨 때 행복해하고 어떤 상황에서 감정의 변화가 생기는지 느낄 수 있다. 요즘 유주는 욕심부리지 않는 것, 양보하는 것,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은 유주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유주는 평소에도 가끔씩 갖고 놀던 플라스틱으로 된 아주 작은 강아지 인형들을 오늘도 가지고 있었다. 그 장난감은 편의점에서 알모양으로 된 ‘킨더조이’라는 초콜릿에 포함된 것으로 몇가지 종류 중 하나의 장난감이 그 제품안에 들어있다. 유주는 킨더조이에서 똑같은 강아지 인형을 두개나 얻었던 것이다. 나의 고정관념으로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을 또 하나 갖게 되면 그게 그렇게 기쁨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유주는 쌍둥이 강아지라고 좋아했고, 심지어는 똑같은 게 100개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유주는 종종 자기 장난감을 남동생 건휘(4세)에게 빌려주곤 하는데, 오늘은 손에 들고 있는 강아지 인형 두개 중 하나를 빌려주었다. 이렇게 끝났으면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을테지만 유주는 건휘에게 다른 장난감 하나를 빌려달라고 요구했고, 타협이 통하지 않는 건휘는 누나의 제안을 즉시 거절했다.



  그 이후부터 유주는 집요하게 건휘를 쫓아다니면서 다른 장난감 하나를 요구했는데, 6살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건휘는 장난감을 3개 갖고 있고(유주가 하나 빌려주기 전에 이미 다른 장난감 두 개를 갖고 있었다) 자기는 하나만 갖고 있으니까 건휘가 욕심쟁이라는 것이다. 상황을 처음부터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본다면 누나가 동생의 장난감을 억지로 뺏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결국 유주는 건휘에게 자기가 빌려준 강아지 인행을 도로 달라고 했는데, 건휘는 절대 주려고 하지 않았다. 유주한테 이미 똑같은 게 네 손에 있으니 건휘 좀 갖고 놀게 해주자라고 하는 말은 전혀 설득이 되질 않았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강아지 인형이지만 유주한테는 쌍둥이 강아지 중 다른 하나인 것이다. 두 아이 중 하나를 울리거나 둘 다 울려야 끝날 것 같은 상황에서 절충안으로 킨더조이를 하나 더 사주겠다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어른과 아이의 입장 차이는 계속해서 드러나는 것 같다. 어른의 논리로 아이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타협을 봐야 하는데, 자꾸 내 입장에서만 아이들을 설득시키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외출해서 점심을 함께 먹고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며 노는 시간을 가졌다. 한참을 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간식을 사주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는데, 당시 우리 가족 모두는 킨더조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간식을 골랐고, 거기에 몇 개를 더해서 먹을 걸 산 후에 편의점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도중에 유주는 킨더조이가 갑자기 생각난 것 같았다. 유주는 작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킨더조이 사준다고 했었는데...” 라고 이야기했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상황에서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져 파문이 이는 것같은 그 순간, 우리 어른들은 또 어른의 논리대로 아이를 설득하려고 했다. “너가 킨더조이말고 다른 거 골랐잖아” 에서부터 “이거 샀으니까 다음에 사자”, “이미 다른 거 샀으니까 안돼” 까지. 하지만 아이는 아이의 논리대로 “아까 약속했잖아!” 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른의 입장이라면 가령, 갤럭시S를 사러 왔다가 갤럭시 노트나 아이폰을 사면 기존에 갤럭시S를 사려고 했던 마음을 접을 수가 있는데, 아이한테 그 두개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결국 우리는 가는 길에 다른 편의점에서 킨더조이를 사주었다. 대신에 초콜릿은 나중에 먹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자기 나름의 확고한 기준과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다. 앞으로 더 복잡하고 많은 것들을 배워가겠지만 자기가 믿는 신념이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억압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가치들 역시 (인내라든가 절제 등등) 때가 되면 잘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부모로써 아이가 올바른 인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크게 생겼다. 나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부모 역시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어른과 아이의 셈법이 다르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맞춰 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어른이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를 기다려주고 허용하고 믿어주는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유주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똑같은 강아지 인형을 쌍둥이 개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동생에게 자기 물건을 빌려주는 양보하는 마음, 동생도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가 해준대로 똑같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약속했으면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보면서, 비록 내가 오늘 자세히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존엄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써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루였다.





Photo by Liane Metz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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